요한계시록 18장 17-19절
그러한 부가 한 시간에 망하였도다 모든 선장과 각처를 다니는 선객들과 선원들과 바다에서 일하는 자들이 멀리 서서 그가 불타는 연기를 보고 외쳐 이르되 이 큰 성과 같은 성이 어디 있느냐 하며 티끌을 자기 머리에 뿌리고 울며 애통하여 외쳐 이르되 화 있도다 화 있도다 이 큰 성이여 바다에서 배 부리는 모든 자들이 너의 보배로운 상품으로 치부하였더니 한 시간에 망하였도다
요한계시록 18장은 큰 성 바벨론의 멸망을 중심으로 세 부류의 사람들이 애통하는 모습을 그리고 있습니다. 첫째는 땅의 왕들이었고, 둘째는 상품을 사고파는 상인들이었으며, 셋째는 오늘 본문에 나오는 바다에서 일하는 자들, 즉 선장과 선원들과 해상 무역업자들이었습니다.
“모든 선장과 각처에 여행하는 선객들과 선원들과 바다에서 일을 하는 자들이 멀리 서서 그 불타는 연기를 보고 외쳐 이르되 이 큰 성과 같은 성이 어디 있느냐 하고” (요한계시록 18:17-18)
이 말씀은 단순히 바다를 항해하던 이들의 감정적 탄식을 넘어서, 바벨론이라는 도시가 세계 무역의 중심이었고, 그들에게 경제적 의존의 대상이었음을 보여줍니다. 그들은 바벨론으로 인해 큰 이익을 얻었고, 그 도시가 멸망하자 그들의 삶도 무너지는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특히 이들의 탄식은 물질적 손실에 대한 절망이었습니다. 19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티끌을 자기 머리에 뿌리고 울며 애통하여 외쳐 이르되 화 있도다 화 있도다 이 큰 성이여 바다에서 배를 가진 모든 자가 너의 보배로운 상품으로 치부하였더니 한 시간에 망하였도다.”
여기서 우리는 구약의 선지자 에스겔이 예언한 **두로(Tyre)**의 멸망 예언이 배경이 되고 있음을 보게 됩니다. 에스겔 27장에서도 두로의 멸망 앞에 상인들과 선장들이 티끌을 머리에 뿌리며 애통하고, 그 손실을 한탄하는 장면이 묘사되어 있습니다. 이는 곧 계시록에서 말하는 바벨론의 멸망이 단지 역사 속 도시의 붕괴가 아니라, 모든 세속적인 물질 문명의 몰락을 뜻한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줍니다.
바다에서 일하는 이들의 애통은 매우 격렬하고도 감상적입니다. 그러나 이 애통의 본질은 철저히 자기 중심적이며, 영적 통회나 회개와는 거리가 먼 감정입니다. 그들은 바벨론의 죄악에 대해 슬퍼하지 않았고, 하나님의 심판에 대해 경외함을 갖지도 않았습니다. 오히려 자신들이 더 이상 부유할 수 없다는 현실, 거대한 시장의 붕괴에 슬퍼했을 뿐입니다.
이는 오늘날에도 적용할 수 있는 중요한 교훈을 줍니다. 인간은 물질의 풍요와 편리를 제공하는 대상에 쉽게 마음을 빼앗깁니다. 하나님을 경외하기보다 돈과 성공, 화려함을 중심에 두는 경향은 고대 로마나 오늘날이나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바와 같이,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자기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마태복음 16:26)
이들은 "이 큰 성과 같은 성이 어디 있느냐"(18절)라고 외쳤습니다. 그들에게 바벨론은 무역의 중심이자 생존의 기반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 성을 단 “한 시간에” 무너뜨리셨습니다. 이는 세상의 화려함과 권세가 얼마나 허망하고 일순간에 사라질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말씀입니다.
우리 삶의 기초는 어디에 세워져 있습니까? 혹시 우리도 모르게 바벨론처럼 화려하지만 속은 썩어버린 가치들 위에 삶을 세워가고 있지는 않습니까? 하나님께서 주시는 이 말씀은 단지 역사적 회상이나 예언적 예고가 아닙니다. 그것은 오늘 우리 각자의 삶을 돌아보게 하는 영적 거울입니다. 우리는 바다에서 일하는 자들의 눈물에서, 물질주의와 세속적 성공을 좇는 이들의 허망한 종말을 보아야 합니다.
그들의 애통은 진정한 회개가 아닙니다. 그것은 오히려 자기연민에 빠진 감상적 슬픔입니다. 세상의 것들이 무너질 때 우리도 함께 무너지지 않으려면, 우리는 오직 그리스도 위에 우리의 삶을 세워야 합니다. 예수님은 변하지 않으시고, 그분의 말씀은 영원히 서기 때문입니다.
바벨론의 멸망은 세상 끝날에 임할 하나님의 심판을 예표합니다. 그 심판 앞에서 울며 통곡할 것인가, 아니면 구원의 반석 위에서 영원한 소망을 붙들 것인가는 지금 우리가 어떤 삶을 살아가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바다에서 일하는 자들의 애통이 우리의 모습이 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세상의 무너짐을 보고 함께 울기보다는, 그 무너짐 속에서도 하나님의 심판이 의로움을 찬양하며, 하나님의 나라를 소망하는 믿음의 눈을 가질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