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계시록 1815-16

"바벨론으로 말미암아 치부한 이 상품의 상인들이 그의 고통을 무서워하여 멀리 서서 울고 애통하여 이르되, 화 있도다 화 있도다 큰 성이여 세마포 옷과 자주 옷과 붉은 옷을 입고 금과 보석과 진주로 꾸민 것인데" (18:15-16)

 

본문은 큰 성 바벨론의 멸망 앞에 서서 울고 애통하는 자들의 모습을 그리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들의 애통은 단순한 슬픔이나 안타까움이 아니라, 자신들의 이익이 사라짐에 대한 통탄입니다. 이는 단지 고대 로마의 상인들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주는 경고이며, 물질주의에 깊이 잠식된 현대 사회를 향한 하나님의 심판 선언이라 할 수 있습니다.

 

사도 요한은 성령 안에서 환상을 보고, 무너진 바벨론을 바라보며 통곡하는 상인들의 장면을 기록합니다. 이 상인들은 바벨론으로 말미암아 큰 부를 얻었던 자들입니다. 바벨론은 화려함과 부, 권력과 쾌락의 중심지였습니다. 그러나 이제 그 도시는 하나님의 심판으로 무너졌고, 상인들은 멀리서 그 멸망의 현장을 바라보며 울고 있습니다. 왜 멀리서일까요? 두려움 때문입니다. 바벨론이 받은 심판이 자신들에게도 임할까 두려워하며, 가까이 가지도 못하고 그저 애통할 뿐입니다.

 

본문 15절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바벨론으로 말미암아 치부한 이 상품의 상인들이 그의 고통을 무서워하여 멀리 서서 울고 애통하여.” 이 구절은 바벨론이라는 도성이 단지 정치적 권력의 상징이 아니라, 상업과 이익의 중심지였음을 보여줍니다. 상인들은 바벨론과의 거래로 부를 축적했고, 화려한 교역과 소비로 삶의 터전을 이루었습니다. 하지만 바벨론의 멸망과 함께 그들의 모든 부와 기대는 한순간에 무너지고 말았습니다.

 

이것은 단지 한 도시의 몰락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경고하시는 것은 세속적인 가치관의 붕괴입니다. 바벨론은 우상숭배의 본거지였으며, 물질과 탐욕이 신격화된 곳이었습니다. 사람들은 돈을 벌기 위해 바벨론과 손잡았고, 성결보다는 이익을 우선시했습니다. 하나님보다 물질을 더 사랑한 도시, 그 도시는 결코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본문 16절은 이렇게 이어집니다. 이르되 화 있도다 화 있도다 큰 성이여 세마포 옷과 자주 옷과 붉은 옷을 입고 금과 보석과 진주로 꾸민 것인데.” 여기서 세마포’, ‘자주 옷’, ‘붉은 옷’, 그리고 금과 보석과 진주는 모두 극심한 사치를 상징합니다. 로마의 귀족들과 귀부인들이 입었던 의복이었고, 화려함과 권력의 상징이었습니다. 이들은 외형적으로는 왕족과 같은 권위를 드러내었지만, 내면은 부패와 죄악으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이 장면은 마치 오늘날의 소비주의 사회를 떠올리게 합니다. 브랜드로 자신을 포장하고, 명품으로 자존심을 세우며, 외모와 재산으로 인간의 가치를 결정하려는 풍조가 너무나도 일반화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 외적 화려함 뒤에 감추어진 교만과 음행, 우상숭배와 불의함을 반드시 심판하십니다. 그들의 세마포는 더 이상 경건의 상징이 아닙니다. 그것은 화려한 포장이며, 결국 그들의 죄악을 가리는 가면일 뿐입니다.

 

이 애통하는 상인들의 모습 속에서 우리는 거짓된 슬픔이라는 것을 발견합니다. 그들은 바벨론이 무너졌기에 울지만, 하나님 앞에 죄를 지었기에 울지는 않습니다. 자신의 이익이 사라졌기 때문에 통곡하지,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졌기 때문에 애통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회개의 눈물이 아니라, 손해에 대한 후회의 눈물입니다. 하나님은 이런 거짓 애통을 받지 않으십니다.

 

이 말씀은 우리에게 중요한 질문을 던집니다. “너는 무엇을 사랑하고 있는가?”라는 질문에 우리는 바벨론의 부와 향락을 사랑하고 있지는 않은가요? 우리가 진심으로 애통해 할 대상은 무엇인가요? 우리가 잃어버린 물질입니까, 아니면 하나님과의 관계입니까?

 

예수님께서는 마태복음 621절에서 말씀하셨습니다. 네 보물 있는 그 곳에는 네 마음도 있느니라.” 우리의 마음이 어디에 있는지를 돌아보아야 할 때입니다. 우리는 진정 하늘에 보화를 쌓고 있습니까? 아니면 세상 바벨론의 상품 목록을 따라 살고 있지는 않습니까?

 

요한은 바벨론이 하루 만에무너졌다고 반복하여 기록합니다. 순식간에, 예고 없이, 철저하게. 이것은 하나님의 심판이 결코 느슨하거나 지연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죄는 쌓이고 쌓이다가 하나님의 시간에, 하나님의 방식으로 무너지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때가 오면 아무도 그것을 막을 수 없습니다.

 

우리는 오늘 이 말씀 앞에서 결단해야 합니다. 바벨론을 따를 것인가, 아니면 어린양을 따를 것인가? 사치와 이익과 성공이라는 이름의 바벨론은 오늘도 우리를 유혹합니다. 그러나 그 끝은 멸망입니다. 반면에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길은 좁고 험할 수 있으나, 그 길 끝에는 새 예루살렘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상인들이 울고 애통한 것은 바벨론의 화려함이 무너졌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진정한 성도는 바벨론의 멸망 속에서 하나님의 의로우심을 찬양할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세상의 가치에 연연하지 않고, 하나님의 공의와 은혜를 바라보는 자들입니다.

 

화 있도다, 화 있도다 큰 성이여라는 말씀이 우리 귀에 들릴 그날, 우리는 슬픔이 아닌 감사와 소망으로 주님 앞에 서야 합니다. 오늘도 주님 앞에서 우리의 삶의 가치를 재정립하시고, 바벨론이 아닌 새 예루살렘을 바라보며 살아가는 믿음의 자녀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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