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사와 연기로 가득한 성전의 의미
본문: 요한계시록 15장 7-8절
“네 생물 중 하나가 영원토록 살아 계신 하나님의 진노를 가득 담은 금 대접 일곱을 일곱 천사에게 주니, 하나님의 영광과 권능으로 말미암아 성전이 연기로 가득 차서 일곱 천사의 일곱 재앙이 마치기까지는 성전에 능히 들어갈 자가 없더라.” (요한계시록 15:7-8)
본문은 하나님의 마지막 심판이 곧 임박했음을 알리는 매우 상징적이고도 경외스러운 장면입니다. 하늘의 성전에서 일곱 천사가 금 대접을 받게 되는 장면은 하나님의 진노가 얼마나 신성하고 위엄 있으며, 동시에 거룩한 섭리 아래 집행되는가를 선명히 보여줍니다.
먼저, **금 대접을 일곱 천사에게 건네는 존재는 ‘네 생물 중 하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요한계시록 4장에서 처음 언급된 이 네 생물은 각각 사자, 황소, 사람, 독수리의 형상을 하고 있습니다. 이는 단순한 상징이 아니라, 하나님의 보좌를 둘러싼 피조계 전체를 대표하는 존재들이며, 그 특성은 힘, 끈기, 지혜, 민첩함을 상징합니다. 다시 말해 이 네 생물은 자연계와 피조세계의 가장 강력하고 고귀한 면모를 집약적으로 표현한 존재들입니다.
이 네 생물 중 하나가 하나님의 진노가 가득한 금 대접을 일곱 천사에게 건넨다는 것은, 하나님의 심판이 자연을 통해서 이 땅에 임한다는 상징입니다. 하나님은 자연을 창조하셨을 뿐 아니라, 그 자연계 전체를 통치하시고, 섭리로 다스리시는 주권자이십니다. 시편 19편 1절은 “하늘이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하고 궁창이 그 손으로 하신 일을 나타내는도다”라고 고백하며, 또한 로마서 11장 36절에서도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가나니 그에게 영광이 세세에 있을지어다 아멘”이라 선언합니다.
따라서 우리는 자연과 피조물들이 하나님의 심판의 도구로 사용된다는 사실을 통해, 이 우주 만물 전체가 하나님의 명령에 복종하며, 그분의 목적에 따라 움직인다는 신성한 진리를 발견하게 됩니다. 땅과 바다, 하늘과 별들, 물과 불, 바람과 짐승들까지도 하나님의 뜻에 따라 사용되며, 그것은 심판의 날에도 예외가 아닙니다.
그 심판의 준비가 마무리되었을 때, 사도 요한은 또 하나의 놀라운 장면을 보게 됩니다. 바로 하나님의 영광과 권능으로 성전이 연기로 가득 차서 아무도 성전에 들어갈 수 없었다는 것입니다. 이 장면은 구약 성경의 여러 곳에서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모습입니다. 대표적으로 출애굽기 40장 34-35절에 보면, 하나님의 영광이 성막에 충만하였을 때 모세조차도 그곳에 들어갈 수 없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또한 열왕기상 8장 10-11절에서는 솔로몬이 성전을 봉헌할 때, 여호와의 영광이 구름 가운데 충만하게 임재하자 제사장들마저 그 자리에 설 수 없었다고 말합니다.
그렇다면 이 ‘연기’는 무엇을 상징합니까? 그것은 하나님의 영광의 임재이며, 동시에 그분의 거룩함과 공의가 충만하게 나타나는 상태입니다. 인간은 이 하나님의 영광 앞에 감히 가까이 갈 수 없으며, 그분의 거룩하심 앞에 서기에는 너무도 연약한 존재입니다. 이 장면은 또한 신약에서 히브리서 기자가 “거룩함이 없이는 아무도 주를 보지 못하리라”(히 12:14)고 한 말씀과도 깊이 연관되어 있습니다.
더 나아가 이 ‘성전에 들어갈 자가 없었다’는 표현은 단순히 경외감의 표현이 아니라, 세 가지 중요한 신학적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첫째로, 하나님의 계획과 목적은 감추어진 신비이며, 인간의 이해로 다가설 수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모든 역사는 그분의 주권적 섭리 속에서 이루어지며, 그 뜻은 때로는 감추어지고, 드러날 때까지 기다려야 합니다. 이사야 55장 8-9절에서 하나님은 “내 생각은 너희의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의 길과 다르다”고 하셨습니다.
둘째로, 하나님의 거룩함은 인간의 의로나 노력으로는 감히 가까이 갈 수 없는 절대적인 영역이라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은 너무도 거룩하시며, 우리는 그분의 보혈 없이는 결코 그 앞에 설 수 없는 존재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날마다 자신을 돌아보며, 말씀 앞에서 겸손하게 자신을 낮추고 회개의 삶을 살아가야 하겠습니다.
셋째로, 하나님의 심판이 시작되면, 그 누구도 그것을 막을 수 없다는 절대적인 선언입니다. 어떤 중보도, 어떤 기도도, 어떤 접근도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이 완전히 이루어지기까지는 이를 멈출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는 인류 역사 속에서 하나님의 심판이 피할 수 없는 현실임을 경고하는 동시에, 지금 이 시간이 얼마나 중요한 은혜의 때인지를 일깨워줍니다.
이 말씀은 우리로 하여금 깊은 경외와 동시에 복음의 사명을 다시금 되새기게 합니다. 지금은 은혜의 날이요, 구원의 때입니다. 오늘 우리는 하나님의 진노가 쏟아지기 전에 회개하고 돌아서야 하며, 이 구원의 복음을 아직 모르는 이웃에게 전해야 할 사명을 가지고 있습니다. 고린도후서 6장 2절에서 바울은 “보라 지금은 은혜 받을 만한 때요 보라 지금은 구원의 날이로다”라고 권면하고 있으며, 디모데후서 4장 2절에서도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말씀을 전파하라”고 명령하고 있습니다.
또한 우리 자신도 거룩한 삶으로 준비되어야 합니다. 야고보서 1장 27절은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정결하고 더러움이 없는 경건은 곧 고아와 과부를 그 환난 중에 돌보고 또 자기를 지켜 세상에 물들지 아니하는 그것이니라”고 말씀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거룩한 삶, 성결한 언어, 정직한 행실로 하나님의 사람답게 살아야 합니다.
본문은 우리로 하여금 심판의 실재를 기억하게 하고, 동시에 그 심판을 앞두고 우리에게 주어진 복음의 사명을 확인하게 합니다. 하나님의 진노의 날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날이 오기 전에 우리는 거룩한 복음의 통로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우리의 모든 삶이 하나님 앞에 드려진 제사와 같기를 바라며, 이 시대에 하나님의 임재를 증거하고, 거룩과 경건함으로 타인에게 모범이 되는 복된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