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름 위에 앉으신 인자

 

본문: 요한계시록 1413-14

또 내가 들으니 하늘에서 음성이 나서 이르되 기록하라 자금 이후로 주 안에서 죽는 자들은 복이 있도다 하시매 성령이 이르시되 그러하다 그들이 수고를 그치고 쉬리니 이는 그들의 행한 일이 따름이라 하시더라 또 내가 보니 흰 구름이 있고 구름 위에 인자 같은 이가 앉으셨는데 그 머리에는 금 면류관이 있고 그 손에는 예리한 낫을 가졌더라” (요한계시록 14:13-14)

 

본문은 앞서 등장한 세 천사의 경고 이후에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들에게 주시는 위로의 말씀과 최종 심판의 장면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우리는 먼저 주 안에서 죽는 자들은 복이 있도다라는 놀라운 선언을 마주하게 됩니다. 이것은 단순한 위로의 말이 아니라, 하나님의 음성이며, 성령께서 친히 그러하다고 응답하시는 보증된 진리입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은 죽음을 두려움으로 여깁니다. 그러나 성경은 주 안에서 죽는 자들에 대하여 복되다고 선언합니다.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본문은 분명하게 말합니다. 그들이 수고를 그치고 쉬게 되기 때문이라고 말입니다. 여기서 수고라는 단어는 헬라어로 *코포스(kopos)*인데, 이는 단순한 노동을 넘어, 땀 흘리고 고통을 겪으며 참고 견디는 삶 전체를 의미합니다. 곧 이 땅에서 믿음을 지키며 겪은 고난과 핍박, 헌신과 인내의 수고가 이제는 끝나고, 참된 안식에 들어간다는 의미입니다.

 

자금 이후로 주 안에서 죽는 자들은 복이 있다는 이 말씀이 가리키는 시점에 대해 학자들 간에는 다양한 해석이 있습니다. 어떤 이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 이후부터, 또 어떤 이들은 성도들이 죽는 순간부터, 또는 마지막 심판 이후의 시점으로 보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 모든 해석의 중심에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주 안에 있는 자들의 죽음은 결코 끝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주 안에 있는 자들은 죽음을 통해 이 세상의 고난과 슬픔을 마치고, 하나님이 예비하신 안식에 들어가는 복된 존재가 된다는 사실입니다.

 

이 복은 아무에게나 주어지는 복이 아닙니다. ‘주 안에서죽는 자들에게 주어지는 복입니다. 여기서 주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따르며, 끝까지 신실하게 그분께 속하여 살다가 생을 마감한 자들을 가리킵니다. 그러므로 주 안에서 죽는다는 것은 단지 교회 다니다가 죽는다는 의미가 아니라, 삶 전체가 주님께 속하여 있었고, 그분을 위하여 살아왔던 자들의 마지막을 의미합니다.

 

본문은 또한 이렇게 말합니다. 이는 그들의 행한 일이 따름이라.” 이 말은 죽은 자의 수고와 헌신, 눈물과 인내가 결코 헛되지 않다는 선언입니다. 히브리서 610절도 이렇게 말씀합니다. 하나님은 불의하지 아니하사 너희 행위와 그의 이름을 위하여 나타낸 사랑을 잊지 아니하시느니라.” 하나님은 당신을 위해 수고한 자들의 삶을 잊지 않으시며, 그들의 행한 모든 선한 일이 그들에게 상급으로 돌아갈 것을 약속하십니다.

 

이제 우리는 14절로 넘어가 흰 구름 위에 앉으신 인자를 목도하게 됩니다. 요한은 말합니다. 내가 보니 흰 구름이 있고 구름 위에 인자 같은 이가 앉으셨는데 여기서 인자 같은 이는 바로 재림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킵니다. 구약 다니엘서 713절의 예언에서부터 이 인자는 하늘의 권세를 가지고 오시는 심판자요, 영원한 통치자이십니다. 마태복음 2430절에서도 예수님은 그 때에 인자의 징조가 하늘에서 보이겠고그들이 인자가 권능과 큰 영광으로 하늘 구름을 타고 오는 것을 보리라고 하셨습니다.

 

구름 위에 앉으셨다는 표현은 예수님의 영광과 권능을 상징합니다. 구름은 하나님의 임재와 권위를 나타내는 상징이며, 구약에서 하나님의 임재는 종종 구름 속에 나타났습니다. 예수님께서 변화산에서 구름 가운데서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셨던 것도 그 맥락과 같습니다. 그리고 그 머리에는 금 면류관이 있고라고 하였는데, 이 면류관은 단순한 장식이 아니라, 그분이 사망과 죄, 사탄을 이기시고 승리하신 왕이심을 선언하는 표식입니다.

 

또한, 그 손에는 예리한 낫을 가졌더라는 표현은 종말의 추수를 상징합니다. 이는 요엘서 313절에 나오는 낫을 대라 곡식이 익었도다 와서 밟을지어다 포도주 틀이 가득히 차고그들의 악이 큼이로다라는 심판의 이미지와 연결됩니다. 예수님은 초림 때에는 구원의 씨를 뿌리기 위해 오셨지만, 재림 때에는 그 씨앗이 맺은 열매를 거두기 위해, 곧 세상에 대한 심판을 위해 오십니다. 마태복음 13장에서 예수님은 비유로 말씀하셨습니다. 추수하는 자는 천사들이요, 곡식은 천국의 아들들이며, 가라지는 악한 자의 아들들이라.” 추수의 날이 이르렀을 때, 알곡은 하나님의 곳간에 들여지고, 가라지는 불에 던져진다고 하셨습니다.

 

본문은 우리에게 두 가지 분명한 삶의 태도를 요구합니다. 하나는 주 안에서 죽는 자가 되라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추수 때 거두실 알곡이 되라는 것입니다. 이 두 가지는 다르게 들릴지 몰라도, 결국 같은 진리를 향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의 삶이 날마다 주님께 속한 자로 살아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언제 부르심을 받을지 모르며, 언제 주님께서 다시 오실지도 모릅니다. 그러므로 지금 이 순간 주님 안에 거하며, 주의 말씀을 따라 살아가고,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으며, 믿음을 지키는 삶이 가장 중요한 것입니다.

 

주 안에서 죽는 자는 복이 있습니다. 그 이유는 고난에서 해방되고, 참된 안식을 누리며, 주를 위한 수고가 결코 헛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주님은 반드시 오셔서 그 백성들을 추수하실 것입니다. 그날, 우리가 주님의 곡간에 들여질 알곡이 되기 위해 오늘을 믿음으로 살아야 할 줄로 믿습니다.

 

바벨론은 무너지고, 짐승의 표를 받은 자들은 영원한 고통을 당하지만, 주 안에서 죽는 자들은 복을 받고, 구름 위에 앉으신 인자는 다시 오십니다. 그 진리의 날을 바라보며, 끝까지 믿음을 지키고,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아가는 복된 성도들이 다 되시기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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