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계시록 13장 3-4절
“그의 머리 하나가 상하여 죽게 된 것 같더니 그 치명상이 나으매 온 땅이 이상히 여겨 짐승을 따르고 용이 짐승에게 권세를 주므로 용에게 경배하며 짐승에게도 경배하여 이르되 누가 이 짐승과 같으냐 누가 능히 이와 더불어 싸우겠느냐 하더라”
1. 상한 머리의 상징과 그 의미
사도 요한은 환상 가운데 바다에서 올라온 짐승의 머리 하나가 상하여 죽게 된 것 같았으나 그 치명상이 나은 것을 봅니다. ‘상한 머리’는 단순한 부상이나 우연한 사건이 아니라, 사탄적 권세가 역사 속에서 결정적인 타격을 입은 사건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입니다.
이에 대해 다양한 해석이 존재합니다. 어떤 학자들은 이 ‘상한 머리’를 초대 교황 제도나 로마 제국의 특정 황제, 또는 고대의 ‘네로 황제 재등장설’과 연결시키기도 했습니다. 네로가 자살한 후에도 살아서 다시 나타날 것이라는 믿음은 당시 사람들에게 매우 널리 퍼진 전설이었고, 이는 짐승이 죽은 듯하나 살아나는 모습과도 연결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더 깊이 있고 신학적으로 일관된 해석은 이것을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역으로 인해 사탄이 결정적 패배를 입은 사건, 곧 창세기 3장 15절의 예언처럼 여자의 후손이 뱀의 머리를 상하게 한 것으로 이해하는 것입니다. 십자가는 사탄의 정수리를 꿰뚫는 하나님의 승리였고, 부활은 그 승리의 선포였습니다. 그러나 사탄은 완전히 멸망하지 않았기에, 그는 여전히 상처 입은 모습으로도 활동을 멈추지 않습니다. 이처럼 상처를 입고도 다시 살아난 듯 활동하는 짐승은 그리스도의 부활을 모방하여 사람들을 미혹합니다. 이는 사탄이 하나님을 흉내 내며 거짓 기적과 거짓 권세로 세상을 속이는 행태를 잘 보여줍니다.
2. 사람들의 숭배 – 거짓된 권위에 무릎 꿇는 세상
상처가 나은 짐승을 본 세상 사람들은 "온 땅이 이상히 여겨 짐승을 따르며"라고 말씀합니다. 이는 짐승의 ‘회복’ 자체가 마치 부활처럼 보였고, 그것이 사람들에게 경외감과 숭배심을 일으켰음을 보여줍니다. 이 모습은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을 흉내 낸 사탄의 영적 기만 행위입니다.
이어지는 4절은 그 숭배의 내용이 더 명확해집니다. “용이 짐승에게 권세를 주므로 용에게 경배하며 짐승에게도 경배하여 이르되 누가 이 짐승과 같으냐 누가 능히 이와 더불어 싸우겠느냐” 여기서 우리는 두 가지 중요한 숭배의 실체를 보게 됩니다.
첫째, 사람들이 사탄 자체를 경배합니다. 용에게 경배한다는 것은 이 세상의 권세를 주관하는 사탄의 존재를 인정하고 순종하는 자리에 서는 것을 의미합니다.
둘째, 짐승에게도 경배합니다. 즉, 사탄의 권세를 위임받은 세상 권력과 정치적·종교적 시스템을 절대시하며 그를 신처럼 높이는 것을 말합니다.
“누가 이 짐승과 같으냐”는 표현은 본래 하나님께만 드려야 할 찬양이었습니다. 출애굽기 15장 11절에서 모세는 “여호와여 신 중에 누구와 같으니이까?”라고 찬양하였습니다. 그러나 짐승을 향해 똑같이 말하는 이 장면은 하나님을 모독하고 그 자리를 가로채려는 사탄의 본심을 드러냅니다.
이것은 단지 고대 로마 시대의 일이 아닙니다. 오늘날에도 수많은 사람들이 세상의 정치적 권력, 경제적 시스템, 이념, 지도자, 또는 인기와 성공을 마치 신처럼 따르고 숭배합니다. 그들은 말합니다. “누가 이것을 이기겠는가?” “누가 이 체제에 반할 수 있겠는가?” 그러나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그 누구도 하나님과 같을 수 없고, 그 어떤 권세도 주님의 통치를 이길 수 없습니다.
3. 사탄의 목적 – 경배를 유도하고 성도를 공격함
사탄이 짐승을 회복시키고 그 권세를 강화시키는 목적은 분명합니다. 하나님께만 드려야 할 예배와 경배를 가로채기 위함입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 성도들을 미혹하고 무너뜨리는 것입니다. 이것은 단순한 정치적 혹은 경제적 문제가 아니라, 본질적으로 예배의 대상이 누구인가에 관한 영적 전쟁입니다.
이 짐승은 사람들의 경배를 받기 위해 스스로를 절대 권력처럼 보이게 만들며, 반대할 수 없는 존재로 포장합니다. 그러나 그 중심에는 거짓된 권위, 사탄의 거짓 기적, 그리고 영적 속임수가 도사리고 있습니다.
4. 성도의 대응 – 속지 말고 주님만 바라보라
우리는 이 시대 속에서 짐승이 던지는 환상과 이미지, 선전과 권세 앞에서 분별력을 잃지 말아야 합니다. 비록 짐승이 상처를 입었다가 살아난 듯한 기적을 행해도, 그는 여전히 사탄의 대리자일 뿐이며 하나님이 아닙니다. 우리의 신앙은 어떤 외적 능력에 근거하지 않습니다. 오직 말씀과 진리,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에 기초합니다.
우리가 주님의 길을 따를 때, 이 세상에서 환영받지 못할 수 있습니다. 오히려 핍박과 어려움이 찾아올 수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면류관을 네게 주리라” (요한계시록 2:10)
치명상을 입은 권세에 무릎 꿇지 말고, 십자가의 주를 따르라
사탄은 상처를 입은 채로도 여전히 활동합니다. 그리고 짐승이라는 도구를 통해 세상을 속이며 사람들을 예배의 자리에서 끌어내립니다. 그러나 우리는 속지 말아야 합니다. 겉으로 보기엔 강력하고 화려하고 대단해 보이지만, 그 실체는 사망과 멸망으로 향하는 헛된 길입니다.
진짜 승리는 짐승의 겉모습에 있지 않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 그 안에 참된 생명이 있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를 따르고, 진리를 지키며, 거짓 권세 앞에서 무릎 꿇지 않는 여자의 남은 자손, 하나님의 사람들이 되어야 합니다.
“주님만이 나의 왕이십니다. 나는 이 세상의 어떤 권세에도 무릎 꿇지 않고, 주님만을 예배하겠습니다.” 이 고백이 우리의 심령과 가정과 교회 위에 영원히 머물기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