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계시록 11장 10절

“땅에 거하는 자들이 그들의 죽음을 기뻐하고 즐거워하며 서로 예물을 보내리니 이는 이 두 선지자가 땅에 거하는 자들을 괴롭게 한 자들이기 때문이라” (요한계시록 11:10)

본문은 우리에게 참으로 충격적인 현실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것은 이 세상이 하나님의 말씀을 증거한 자들의 죽음을 기뻐하고 즐거워한다는 사실입니다. 이것은 단순한 시대적 현상이 아닙니다. 이는 세상이 본질적으로 하나님을 거스르고, 진리의 빛을 싫어하며, 의로움보다는 불의함을 즐기기 때문입니다.


본문에서 말하는 “땅에 거하는 자들”은 요한계시록 전반에서 반복해서 등장하는 표현으로, 단순히 지구상의 인간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이 세상의 가치관과 체계 안에 속하여 살아가는 불신자들, 곧 짐승을 경배하고 우상 숭배에 빠진 자들을 의미합니다. 이들은 하나님을 대적하며, 성도들을 핍박하고, 회개보다는 정죄와 조롱을 일삼는 자들입니다. 요한계시록 13장 8절은 분명히 말씀합니다. “죽임을 당한 어린 양의 생명책에 창세 이후로 이름이 기록되지 못한 자는 다 그 짐승에게 경배하리라.”


그런데 오늘 본문을 보면, 이 ‘땅에 거하는 자들’이 두 증인의 죽음을 보고 단순히 안도하는 것이 아니라, 기뻐하고, 즐거워하고, 심지어 서로 선물을 주고받으며 축제를 벌이고 있습니다. 이것은 단순한 감정의 표출이 아니라, 고대 근동 지역에서 전쟁에서의 승리나 큰 기쁨을 표현할 때 행하던 의례에 해당합니다. 느헤미야 8장 10절에서 율법을 듣고 회개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먹고 마시며 서로 예물을 보내자”고 말한 것처럼, 큰 기쁨을 나누는 표현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들이 무엇을 승리로 여깁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증거하던 두 증인의 죽음을 기쁨으로 받아들입니다. 왜일까요? 본문은 “이는 이 두 선지자가 땅에 거하는 자들을 괴롭게 한 자들이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이 괴로움은 단지 외적인 재앙이나 이적 때문만이 아닙니다. 두 증인이 선포했던 회개의 메시지, 진리의 말씀, 하나님에 대한 경고와 심판의 선언이 이들의 마음을 찌르고 양심을 건드렸기 때문입니다.


이 시대에도 동일한 일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세상은 교회가 진리를 선포할 때, 불편해하고 괴로워합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어둠을 사랑하고, 빛 가운데 나아오는 것을 두려워하기 때문입니다. 요한복음 3장 19절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그 정죄는 이것이니 곧 빛이 세상에 왔으되 사람들이 자기 행위가 악하므로 빛보다 어둠을 더 사랑한 것이니라.”


그래서 오늘도 진리의 말씀은 환영받지 못합니다. 성경적인 가치관은 낡았다고 조롱당하고, 도덕적 순결과 경건의 삶은 위선이라며 멸시받습니다. 참된 예배와 거룩함을 추구하는 성도들은 오히려 극단적인 자들로 비난받고, 죄를 죄라 말하는 설교자는 정죄적이라며 비판당합니다. 이것이 바로 두 증인의 죽음을 기뻐하는 세상의 모습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반드시 기억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빛과 어둠은 함께 할 수 없습니다. 선과 악은 함께 섞일 수 없습니다. 하나님과 우상을 겸하여 섬길 수 없습니다. 출애굽기 20장 3절에서 하나님께서는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너는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두지 말라.” 사도 바울도 로마서 13장 12절에서 “어둠의 일을 벗고 빛의 갑옷을 입자”고 외쳤고, 에베소서 5장 8절에서는 “너희가 전에는 어둠이더니 이제는 주 안에서 빛이라 빛의 자녀들처럼 행하라”고 권면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땅의 분위기에 휩쓸려서는 안 됩니다. 세상의 기뻐함이 곧 진리의 기준이 아닙니다. 세상이 증인의 죽음을 축제로 삼는다고 하여, 그것이 교회의 실패를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교회는 순교와 고난을 통해 더욱 정결해지고, 하나님의 뜻 안에서 반드시 다시 일어설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11장 11절 이하에서 보듯이, 사흘 반 후에 두 증인은 다시 살아나며, 그들을 조롱하던 세상은 오히려 큰 두려움에 사로잡히게 될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무엇을 기뻐합니까? 세상이 즐거워하는 것에 함께 웃고 있지는 않습니까? 혹시 두 증인의 죽음 앞에 웃고 있는 ‘땅에 거하는 자들’의 무리에 끼어 있지는 않습니까? 하나님은 우리에게 명확한 태도를 요구하십니다. “내가 차지도 아니하고 뜨겁지도 아니하도다… 네가 차든지 뜨겁든지 하기를 원하노라” (계 3:15)


그러므로 우리는 분명한 태도를 가져야 합니다. 세상의 어둠과 함께하지 말고, 하나님의 빛 가운데 거하며, 비록 핍박을 받을지라도 끝까지 진리의 편에 서는 증인의 삶을 살아야 하겠습니다. 우리의 사명은 사람의 기쁨을 얻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기쁨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전하는 말씀이 때로 사람들의 마음에 괴로움을 줄지라도, 그것이 그들의 회개와 생명으로 이어지기를 소망하며, 우리는 복음의 나팔을 멈추지 말아야 합니다.


그리고 언젠가 주님 앞에 섰을 때, 우리는 들을 것입니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잘하였도다.” 이 음성을 듣기까지, 우리는 두 증인처럼 굵은 베옷을 입고 세상 속에서 증언하며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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