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라 4장 17–22절

17 왕이 방백 르훔과 서기관 심새와 사마리아에 거주하는 그들 동관들과 강 건너편 다른 땅 백성에게 조서를 내리니 일렀으되 너희는 평안할지어다

18 너희가 올린 글을 내 앞에서 낭독시키고

19 명령하여 살펴보니 과연 이 성읍이 예로부터 왕들을 거역하며 그 중에서 항상 패역하고 반역하는 일을 행하였으며

20 옛적에는 예루살렘을 다스리는 큰 군왕들이 있어서 강 건너편 모든 땅이 그들에게 조공과 관세와 통행세를 다 바쳤도다

21 이제 너희는 명령을 전하여 그 사람들에게 공사를 그치게 하여 그 성을 건축하지 못하게 하고 내가 다시 조서 내리기를 기다리라

22 너희는 삼가서 이 일에 게으르지 말라 어찌하여 화를 더하여 왕들에게 손해가 되게 하랴 하였더라

하나님의 백성이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아갈 때, 그것을 반대하는 세상은 결코 가만히 있지 않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성전을 세우고자 하는 마음을 가질 때마다, 마귀는 끊임없이 방해하고 억압하며, 심지어 거짓과 왜곡된 권세를 동원하여 하나님의 일을 중단시키려 합니다. 본문 에스라 4장 17절부터 22절까지는 그러한 대적들의 고소가 실제로 세상의 권세자, 곧 아닥사스다 왕의 마음을 움직여 하나님의 백성의 회복운동에 큰 타격을 준 사건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17절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왕이 방백 르훔과 서기관 심새와 그들 동료 곧 사마리아에 사는 자들과 유브라데 강 건너편 다른 땅 백성에게 조서를 보내니 이러하니라.” 이 말씀은 하나님의 백성을 향한 고소가 단순한 민원 수준에서 끝난 것이 아니라, 바사의 황제에게까지 전달되어 공식적인 국왕의 조서로 이어졌다는 점을 보여줍니다. 대적들은 정치적 수완을 발휘하여 사마리아에서 예루살렘까지 확장되고 있는 유다인의 성전 건축을 반역과 모반으로 포장하였고, 아닥사스다 왕은 이에 현혹되어 성전 건축을 중단시키는 조서를 내립니다.


에스라 4장 19절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왕이 명령하여 살펴보매 실로 이 성읍이 예로부터 왕들을 거역하며 모반하며 그 중에서 항상 패역하는 일을 행하였으며 그 성읍이 무너진 것도 이 때문인 줄 알았으니.” 이 장면은 우리로 하여금 깊은 신앙적 고민을 하게 합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하나님의 뜻을 따라 회복을 시작했는데, 왜 하나님은 이를 허락하지 않으시고, 오히려 대적의 거짓 고소가 받아들여지도록 내버려두시는가? 우리는 역사 속에서 이런 모순과 부당함을 자주 경험합니다. 악한 자의 꾀가 통하고, 불의한 자의 입장이 정치적으로 승리하는 것처럼 보이는 현실 앞에 성도는 종종 혼란을 겪습니다.


그러나 여기서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진리는, 하나님은 모든 역사를 주관하신다는 사실입니다. 아무리 세상이 우리를 판단하고 억압할지라도, 하나님의 뜻은 결코 실패하지 않습니다. 로마서 12장 2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비록 아닥사스다 왕은 이방의 왕으로서 자기 나라의 안전과 이익만을 기준으로 판단하였지만, 하나님은 이러한 왕의 결정까지도 당신의 섭리 속에 두시고 일하십니다. 아닥사스다 왕이 언급한 “열왕”들(19절)은 단지 바사의 조상들뿐 아니라, 메대와 바벨론 왕조까지 포괄하는 개념이었습니다. 그는 스스로를 그 정통성 있는 제국의 계승자로 여기며, 권력의 지속을 위해 예루살렘을 의심하였던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아는 바, 진정한 큰 왕들은 다윗과 솔로몬입니다. 에스라 4장 20절은 말합니다. “옛적에는 예루살렘을 주재한 큰 군왕들이 있어서 유브라데 강 건너편 모든 땅을 다스리며 조공과 관세와 통행세를 그들에게 바쳤나이다.” 이 말씀은 당시 예루살렘이 강력한 권력을 가졌음을 인정한 기록이지만, 동시에 그것이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은 결과였음을 우리는 믿음의 눈으로 바라보아야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닥사스다 왕은 22절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이 일에 삼가서 왕들에게 손해가 되지 않게 하라. 어찌하여 화가 왕들에게 더하여 나게 하겠느냐?” 그의 판단 기준은 분명했습니다. 왕조의 손해 유무, 다시 말해, 하나님의 뜻이냐 아니냐가 아니라, 자신의 정치적 이익이냐 아니냐였습니다. 오늘날 세상 권세자들도 그러합니다. 이익이 되면 하나님을 말하고, 불이익이 되면 믿음을 외면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러한 세상의 부조리함 속에서도 여전히 당신의 뜻을 이루어가십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이 시대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따르고자 하면, 때로는 세상으로부터 오해를 받고, 억울한 누명을 쓰고, 불이익을 당할 수도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산상수훈에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라.” (마태복음 5:10) 대적들은 거짓으로 고소했고, 왕은 그 고소를 받아들여 성전 건축을 중단시켰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일은 결코 중단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계획은 사람의 손에 막히지 않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의 손은 멈추었지만, 하나님의 손은 멈추지 않으셨습니다. 우리는 에스라 5장과 6장에서 하나님의 예언자 학개와 스가랴를 통해 다시 성전 재건의 역사가 일어나는 것을 보게 됩니다.


히브리서 11장 7절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믿음으로 노아는 아직 보이지 않는 일에 경고하심을 받아 경외함으로 방주를 준비하여 … 세상을 정죄하고 믿음을 따르는 의의 상속자가 되었느니라.” 세상은 우리를 정죄하려 하지만, 하나님은 믿음을 따르는 자를 의롭다 하시고, 마침내 승리하게 하십니다.


오늘 우리가 직면한 세상의 판단은 끝이 아닙니다. 세상이 우리를 오해하고 불이익을 주고, 거짓과 불의가 승리하는 것처럼 보일지라도, 참된 재판장은 하나님이십니다. 우리는 그분 앞에 바로 서야 하며,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질 것을 믿고 포기하지 말아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후서 4장 8-9절에서 이렇게 고백합니다. “우리가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하며,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아니하며, 박해를 받아도 버림받지 아니하며, 거꾸러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아니하고.”


오늘도 하나님은 당신의 뜻을 이루십니다. 세상의 판결 속에서도 좌절하지 마십시오. 대적의 고소에 흔들리지 마십시오.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결코 흔들리지 않는 반석 위에 세워진 하나님의 백성입니다. 지금은 성전 건축이 막힌 것처럼 보여도, 하나님의 시간 속에 모든 것은 회복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따르며, 믿음의 눈을 들어 역사의 주인이 하나님이심을 바라보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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