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와 평강(에베소서1:1-2)

조회 수 1871 추천 수 0 2010.06.07 23:57:33

에베소서를 공부하는 것은 매우 유쾌한 일입니다. 바울의 많은 서신들이 있지만 에베소서는 로마서와 더불어 교리서로 분류된 것으로서 성경의 모든 교리들을 축소해 놓은 성경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구원에서부터 시작하여 그리스도인의 삶에 이르기까지 모든 부분에서 바울은 에베소에 있는 성도들에게 분명한 진리의 내용들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언제나 모든 서신들이 그러하듯이 바울은 먼저 에베소 성도들에게 축복의 말로 인사를 합니다. 그러나 그의 인사 안에는 많은 교리의 내용들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결코 형식적인 것이 아니며, 오히려 믿음의 사람들이 당연하게 취할 수 있는 자세들을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의 인사를 통하여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이 어떠한 모습으로 서 있어야 하는지를 생각할 수 있어야겠습니다.

1. 하나님의 뜻으로 말미암아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된 바울

오늘날 자신이 주님의 종이라고 말하는 많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이 문제에 대하여 분명하게 말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바울 자신이 사도가 된 것은 하나님의 뜻으로 말미암은 것이라고 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하면 자신을 부르시고 일꾼으로 삼으신 것은 자신의 의지나 계획에 의한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께서 이일을 맡기셨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오늘날 주님의 일꾼이 되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그들은 열심히 성경을 공부하고 부족하면 신학교에 들어가서 성경과 관련한 학문을 배움으로서 주님의 일꾼이 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아버지가 사역자이기 때문에 사역을 물려받는 방법도 있을 것입니다. 그 외에도 다양한 방법과 경로들을 통하여 주님의 종으로서의 삶을 사는 자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들은 그들에 대하여 진정한 주님의 종으로서의 삶을 인정할 수 없는 이유가 있습니다. 비록 그들이 탁월한 능력을 지니고 있는 자라고 할지라도 주님의 종이 되는 것은 분명한 자격을 필요로 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주님의 종이 되는 자격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바로 주님의 부르심이 있어야만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성경 안에서 이미 이러한 증거들을 많이 찾아 볼 수 있습니다. 갈대아 우리에 있었던 아브람을 주님께서 친히 찾아 가셔서 그를 부르셨습니다. 또한 광야에서 양을 치고 있었던 모세를 주님께서 직접 찾아가셔서 이스라엘을 구원할 지도자로 삼으셨습니다. 다윗은 어떻습니까? 그도 역시 사무엘 앞에 섰던 다른 형들과는 달리 양을 치고 있었을 때에 주님을 그를 불러 사무엘로 하여금 기름을 붓도록 하시고 그를 왕으로 삼으셨습니다.

신약 시대에도 이러한 경우들은 동일하게 나타납니다. 주님은 고기를 잡고 있었던 베드로를 직접 찾아가셔서 사람을 낚는 어부로 만드셨습니다. 요한 역시 그물을 깁고 있을 때에 주님은 그를 부르셨습니다. 에베소 성도들에게 편지를 쓰고 있는 바울의 경우는 어떻습니까? 그도 역시 다메섹(다마스커스)으로 가는 도중에 직가(곧은 길)라는 거리에서 주님을 만났고, 그분의 부르심을 경험했던 자입니다.

진정한 주님의 종이 되는 조건은 바로 그분의 부르심을 입은 것입니다. 부르심의 경험이 없다면 그는 진정한 주님의 종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물론 이것을 구원과 연관하여 설명할 수 없는 것입니다. 구원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개인의 구주로 영접했을 때에 얻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의 종, 즉 바울의 사도와 같은 직분을 가지고 주님의 일을 하기 위해서 우리는 반드시 주님의 부르심을 경험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현대인들 가운데 많은 이들이 주님을 위한 사역을 마치 직업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매우 많습니다. 우리는 객관적인 기준으로 볼 때 그 말이 틀렸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주님의 일을 함으로서 이 세상에서 일용할 양식을 포함한 모든 것들을 공급받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한 가지 생각을 해야 하는 것은 그 일이 자신의 의지로 결정할 수 없는 것이라는 점입니다.

부르심은 주님으로부터 오는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뜻 안에서 계획되어지고 부르심을 받은 자들은 그분의 뜻을 이루어 드리는 일을 하게 될 것입니다. 진정한 사역자라면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들을 위해 힘을 기울일 것이며, 자신의 영광을 위하지 않고 오직 주님께 영광을 돌려 드릴 것입니다. 기억하십시오. 주님의 일꾼은 주님의 뜻에 따라 그분의 부르심을 통하여 오는 것입니다.

2. 에베소에 있는 성도들

우리는 교회관을 설명함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두 가지 관점이 있다는 사실에 대하여 알 필요가 있습니다. 그것은 오늘날 그리스도를 믿는 모든 사람들이 하나의 교회를 형성하고 있다고 믿는 우주적인 교회관과 모든 지역교회가 독립적인 하나의 교회로 존재한다고 믿는 것입니다. 이 두 가지 주장들은 오늘날의 교회들을 매우 혼란스럽게 만들어 놓는 원인이 되기도 하는 논쟁거리 가운데 하나라고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카톨릭 교회와 그의 영향을 받은 대부분의 교회들은 우주적인 교회관을 믿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에큐메니칼 운동을 통하여 모든 교회가 하나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그들은 지금도 이 하나 되는 운동을 위하여 매우 힘쓰고 있습니다. 반면에 독립적인 지역교회를 주장하는 자들은 분리에 대한 교리를 상대적으로 매우 강조합니다. 그들은 다른 교회들과의 교제를 함에 있어서 매우 신중한 자세를 취합니다. 그것은 그들 스스로를 지키고자 하는 하나의 방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성경이 이 두가지의 모습들을 모두지지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 편에서 모든 성도들은 하나의 몸입니다. 그들은 장차 주님과 더불어 혼인을 하게 될 것입니다. 성경은 교회가 주님의 신부가 된다는 사실에 대하여 말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계21:9). 여기서 신부가 단수로 기록되었다는 점을 주의해서 보십시오. 만일 각 지역교회가 모두 개개의 몸이라면 당연히 신부들, 혹은 어린양의 아내들이라고 해야 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신부, 어린양의 아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교회의 운영에 있어서 그들이 결코 집단을 이루지 않았다는 점을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에베소에 있는 성도들은 그들 스스로 독립적인 교회를 형성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누구의 간섭도 받지 않았으며, 그들에게 주어진 은사에 따라서 독특한 교회를 형성해 갔습니다. 우리는 요한이 계시록을 쓰면서 일곱 교회를 소개하는 것을 봅니다(게2,3장). 그들의 교회는 결코 획일적이지 않았으며 교회마다 각기 다른 모습을 지니고 있음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그곳에서 교회의 다양성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오늘날의 교회는 지나치게 서로 닮아 있습니다. 그들은 서로 집단을 이루면서 자신들이 가진 독특함을 잃어가고 있습니다. 사람마다 그 몸이 다르고 성격이 다르듯이 교회들이 모두가 같을 수는 없습니다. 교회마다 특징이 있을 것이며, 당연히 교회는 그들의 특징적인 것들을 살릴 필요가 있습니다. 이것은 교회가 독립적인 형태를 가졌을 때 가능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바울이 말하고 있는 에베소에 있는 성도들이라는 말의 표현이 바로 이러한 두 가지 속성을 모두 표현하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현재 이 땅에서 내게 속한 교회를 돌아보고 어떻게 아름다운 교회를 세울 수 있는지를 발견할 수 있는 생각할 수 있어야 하며, 또한 장차 주님 앞에 서게 될 때에 이 땅의 모든 그리스도인이 장차 하나의 교회로서 주님의 신부로서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고 서로 귀하게 여길 수 있는 마음을 가질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3.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 있는 신실한 자들

신실함(faithful)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충성스러움을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것이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가치가 있다는 사실을 아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많은 실실한 자들이 있지만 그가 주님 안에서 그 일을 행하고 있지 않다면 그것은 전혀 의미가 없는 것입니다. 그의 열심은 장차 주님으로부터 어떠한 보상도 얻지 못하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많은 교회들은 교회에 처음 들어 온 사람들에게 예수님을 알기 전부터 열심히 하도록 권면합니다. 주일성수, 십일조, 구제, 봉사, 전도, 기도...그외에 다양한 것들을 하다보면 자연스럽게 예수 그리스도에 대하여 알게 될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속이는 자들의 대표적인 전략입니다. 제 아무리 열심을 낸다고 할지라도 그것이 주님으로부터 온 것이 아니라면 아무런 가치가 없는 것입니다.

신실함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행해졌을 때에 가치가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안에서 행한 것만이 보상을 받을 수 있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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