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계시록 9장 14-15절
“나팔을 가진 여섯째 천사에게 말하기를 큰 강 유브라데에 결박한 네 천사를 놓아 주라 하더라 하매, 네 천사가 놓였으니 그들은 그 년 월 일 시에 이르러 사람 삼분의 일을 죽이기로 준비된 자들이더라.” (요한계시록 9:14-15)
요한계시록은 우리에게 종말의 시기에 일어날 하나님의 역사와 영적 전쟁의 실상을 매우 상징적이고도 강렬하게 보여주는 말씀입니다. 오늘 본문은 여섯째 나팔 재앙이 시작되며 등장하는 **‘유브라데 강에 결박된 네 천사’**에 관한 기록입니다. 이들은 단순한 존재가 아니며, 하나님의 거룩한 섭리 속에서 정해진 때를 기다리며 대기하고 있던 자들입니다.
요한은 여섯째 천사가 나팔을 불었을 때, 하나님 앞 금단의 네 뿔에서 음성이 들려오고, 그 음성은 “유브라데 강에 결박된 네 천사를 놓아주라”는 명령을 내립니다. 그리고 15절은 이 네 천사가 정해진 시간에 맞추어 사람의 삼분의 일을 죽이기 위해 **“준비된 자들”**이라고 선언합니다. 여기서 우리는 두 가지 중요한 질문을 갖게 됩니다. 첫째, 이 네 천사의 정체는 누구인가? 둘째, 왜 하나님은 이들을 결박하시고 정해진 때에 풀어 놓으시는가?
먼저 이 네 천사의 정체에 대해 살펴보면, 학자들은 크게 두 가지 견해를 제시합니다. 첫째는, 이들이 사단에 속한 악한 천사들, 곧 타락한 영적 존재들이라는 견해입니다. 이 주장은 몇 가지 이유로 설득력을 갖습니다.
첫째로, 이 천사들이 ‘결박’되어 있었다는 표현입니다. 성경에서 하나님의 거룩한 천사들이 결박되어 있는 모습은 거의 등장하지 않으며, 결박은 보통 타락한 자들, 즉 사단과 그 졸개들에게 사용되는 표현입니다. 베드로후서 2장 4절은 “하나님이 범죄한 천사들을 용서하지 아니하시고 지옥에 던져 어두운 구덩이에 두어 심판 때까지 지키게 하셨으며”라고 말씀하고 있고, 유다서 6절에서도 “자기 지위를 지키지 아니하고 떠난 천사들을 큰 날의 심판까지 영원한 결박으로 흑암에 가두셨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둘째로, 이 네 천사들이 결박되어 있던 장소가 바로 **‘유브라데 강’**입니다. 유브라데 강은 성경에서 단순한 지리적 의미를 넘어서, 하나님 백성을 위협하는 이방의 적대 세력이 출발한 상징적 장소로 여겨졌습니다. 앗수르와 바벨론, 곧 북이스라엘과 유다를 멸망시킨 강대국들은 모두 이 강 너머에서 왔습니다. 따라서 유브라데 강은 곧 죄악과 심판, 멸망의 상징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 강에 결박된 네 천사는 하나님의 백성을 대적하는 악한 세력의 대표적 모습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둘째 견해는 이 네 천사가 요한계시록 7장 1-3절에 나오는 **“땅의 네 모퉁이에서 바람을 붙들고 있는 네 천사”**와 동일하다는 주장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명령을 받아 인 맞은 자들이 다 준비될 때까지 재앙을 유보하는 역할을 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하나님의 인치심을 받지 못한 자들을 향한 심판을 수행하는 천사로 역할이 바뀌었다고 보는 것입니다. 이 견해도 나름대로 의미가 있지만, 본문에서 ‘결박되었다가 풀려난다’는 표현과 사람들의 삼분의 일을 죽인다는 파괴적 역할을 감안하면, 앞서 말한 사단적 존재들이라는 해석이 더 본문의 맥락에 부합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 정체가 무엇이든 간에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서 그들을 특정한 시간에 풀어주셨다는 사실입니다. “그들은 그 년 월 일 시에 이르러 준비된 자들”이라고 말씀합니다. 이 얼마나 정교하고도 정해진 시간입니까? 이는 세상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이 하나님의 손 안에 있으며, 하나님의 철저한 섭리 가운데 있음을 보여줍니다. 악의 세력조차도 하나님의 허락 없이 움직일 수 없으며, 그들의 활동 시기조차 하나님의 정하신 때에 따라 움직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의 주권을 다시금 확인하게 됩니다. 우리의 삶, 이 세상의 역사, 심지어 악한 세력의 역사까지도 모두 하나님의 통제 아래에 있다는 사실은, 우리에게 두려움보다 오히려 큰 위로와 소망이 됩니다. 하나님은 아무것도 놓치지 않으시는 분이시며, 그분의 시간표는 결코 어긋나지 않습니다.
또한 이 심판은 성도들의 기도와 깊은 관련이 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앞선 요한계시록 6장 10절에서 순교자들의 부르짖음을 들으신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피에 응답하십니다. 그리고 금단 앞에서 드려지는 성도들의 기도가 하나님의 역사와 심판을 불러일으키는 도구가 됩니다. 그러므로 성도의 기도는 단지 개인의 소원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이 땅에 이루는 역사적 통로입니다. 우리가 드리는 눈물의 기도, 고난 중에 드리는 탄식의 기도가 결코 하늘에서 헛되이 흩어지지 않으며, 하나님은 그 모든 기도에 정확한 때에 응답하십니다.
우리는 이 말씀을 통해 두 가지 중요한 영적 교훈을 얻습니다.
첫째는, 하나님의 심판은 반드시 있고, 그것은 정해진 시간에 이뤄진다는 사실입니다. 이 땅의 악과 불의가 아무리 성행하고 하나님을 무시한다 할지라도, 하나님의 때는 반드시 오며, 그 심판은 지체되지 않습니다.
둘째는, 하나님의 백성은 그 심판 가운데서도 보호받는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백성을 결코 버리지 않으시며, 그들을 위하여 심판하십니다. 요한계시록 전체는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위로와 확신, 그리고 심판 가운데 임하는 하나님의 공의로운 보호하심을 선포합니다.
오늘도 우리는 세상의 혼란과 죄악 속에서 살아가며, 때로는 하나님의 침묵이 길게 느껴질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지금도 일하고 계시며, 당신의 때에 반드시 역사하십니다. 그분은 유브라데에 결박된 천사들조차도 통치하시는 분이시며, 세상의 종말을 향한 계획을 정확하게 진행하고 계십니다.
이 확신을 품고, 우리는 믿음의 기도를 계속해야 하며, 주의 뜻 가운데 인내하며 살아야 할 줄로 믿습니다. 때가 이르면 하나님께서 심판하실 것이고, 그날 성도들은 구원의 완성을 보게 될 것입니다. 이 믿음으로 오늘도 승리하며 살아가시는 복된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