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을 그에게 의로 인정하셨다 기록된 것은 아브라함만을 위한 것이 아니요, 이것을 의로 인정받을 우리도 위함이니 곧 예수 우리 주님을 죽은 자들로부터 일으켜 세우신 분을 믿는 자니라.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범죄로 인하여 넘겨지셨으며 우리의 칭의를 위하여 다시 일으켜지셨느니라."(로마서 4;23-25)
그리스도인은 가출옥자인가 아니면 완전 사면을 받은 자인가? 그리스도인에게 가출옥이라든가 사면이라는 말을 쓰는 것이 이상하게 들릴 수 있습니다. 저는 이 말이 본문을 이해하는데 상당히 중요하다고 생각됩니다. 죄수가 일단 사면을 받으면 그는 활동에 어떠한 제한이나 규제를 받지 않는 자유로운 사람이 됩니다. 그러나 어떤 사람이 가출옥이 되어 나올 경우 그는 법이 정하는 제한과 규제를 받게 됩니다. 그는 행동에 제약을 받기 때문에 어느 곳에 가고자 해도 자기 마음대로 갈 수가 없으며, 자기 마음대로 무엇을 결정하고 행동으로 옮길 수가 없습니다. 가출옥과 사면의 차이점을 포착할 수 있습니까? 그런데 수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자기들은 마치 가출옥 된 자처럼 말하며 행동하고 살아간다는 사실은 실로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그리스도 안에 사는 우리들은 하나님께서 가출옥시킨 것인가? 언제든지 다시 죄수로서 감옥에 다시 집어넣을 수 있다는 말인가? 오늘 이 문제에 대하여 사도 바울은 명백한 답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구하시기 위해 대속물이 되셨습니다.
우리는 가끔 어린 아이들이 유괴범에게 납치되었다는 소식을 듣습니다. 유괴범은 아이의 몸값을 요구해 오고 부모는 많은 돈을 들여서라도 아이를 데려오기 위해서 필사적입니다. 아마 이것은 동서를 막론하고 자행되고 있는 사건입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서 부모가 자식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서 돈으로 몸 값을 치룬 것보다 훨씬 더 큰 일을 하셨습니다.
즉 주님은 우리를 죄의 굴레에서 벗어나게 하시기 위해서 자신의 생명을 대속물로 내어 주셨던 것입니다(마가복음 10:45). 모든 인간들은 하나님으로부터 분리되어 생명을 잃어버린 상태에 놓여 있었습니다. 우리는 죄인이며 사탄의 포로가 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오셨고 우리를 구하시기 위해서 최고의 몸값인 그의 생명을 주셨습니다. 우리의 죄 값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 위에서 바치신 그의 생명으로 치러진 것입니다. 주님은 우리를 은이나 금으로 사신 것이 아니라 그의 피로 사신 것입니다(사도행전 20:28).
우리는 믿음이라는 영어에 대해 매우 혼란스러울 때가 많이 있습니다. 실제로 누군가에게로부터 당신은 믿음을 가지고 있습니까? 라는 질문을 받으면 "아멘"이라는 말로 답을 하지만 정작 확신이 없고 혼란스럽습니다. 우리는 믿음을 어떤 마력적인 것으로 이해할 때가 있습니다. 그래서 어떤 특별한 존재로 이해될 때가 많이 있고 눈에 드러나야 하는 존재로 이해될 때가 많이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면 믿음은 무엇입니까? 믿음은 단순히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이루신 구원에 대한 응답입니다. 우리가 일단 응답을 한 이후에는 하나님을 두려운 존재로 대하지 않게 됩니다. 하나님 자신이 우리의 죄 값을 지불하시고 우리의 죄를 용서해 주셨기 때문에 우리에게는 더 이상 죄가 없습니다. 도덕적, 종교적 의식과 행위를 가지고는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가질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그리스도께로 나온 후에는 형식에 매이지 않기를 원하고 계십니다. 그것들은 마귀의 자녀였을 때 흔히 쓰여졌던 방법이었으나 이제는 그것들이 소용없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완전히 용서함을 받았고 죄인이라는 이름도 더 이상 우리와는 관계가 없게 된 것입니다. 우리는 죄 값을 계속 지불함으로서 자유를 사는 "가출옥자"가 아닌 것입니다.
우리가 이제 더 한가지 짚고 넘어가야만 하는 부분은 부활에 관한 것입니다. 부활은 하나님께서 자기 아들이 십자가에서 행하신 역사를 완전히 만족케 하신 사건입니다. 우리는 주님이 십자가에서 큰 소리로 "다 이루었다"고 하신 것을 기억합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죽었고 몸은 무덤에 장사 지냈습니다. 그를 따르던 사람들은 절망했고 그것이 끝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무덤에서 살아 나셨습니다. 그리고 이 사건을 통해 하나님은 엄청난 선언을 하고 계십니다. 즉 그의 아들이 우리 죄에 대한 완전한 심판을 담당하셨고, 완전히 열납되었으며, 하나님의 율법이 완전하게 성취되었다는 것입니다. 만일 하나님이 예수님을 무덤에서 살리지 않으셨다면 우리 죄에 대한 심판을 담당하실 수 없다는 결론을 끌어낼 수 있을 것입니다. 주님은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아들의 사역을 완성시키시고, 완전한 속죄가 이루어졌다고 선언하고 계셨던 것입니다. 부활은 그런 의미에서 "우리를 의롭다 하시기 위해서 다시 살아나셨다"고 선포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의롭다 하심을 분명하게 보는 것은 부활에서입니다. 의롭다함은 십자가에서 이루셨습니다. 그러나 부활에서 그것이 충분하다는 것을 선언한 것입니다.
우리는 여기에서 또 하나의 깨달음을 얻을 수 있어야 합니다. 구원을 위해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 그 답은 유감스럽게도 "아무것도 없다"라는 대답입니다. 구원을 위한 모든 작업은 이미 2천년전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시고 부활하신 순간에 다 이루셨습니다. 이제 우리의 과제는 이미 의롭다 선언하신 주의 말씀(복음)을 받아들이고 믿고 의지하는 일 외에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래서 바울 사도도 "그런즉 자랑할 때가 어디뇨 있을 수가 없느니라 무슨 법으로냐 행위로냐 아니라 오직 믿음의 법으로니라"(로마서 3:27) 고 말한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은 우리들을 변화시키고 새로운 피조물이 되게 합니다. 우리는 마지막으로 종교 개혁자 마틴 루터가 말했듯이, 믿음은 "하나님의 은혜는 담대하고 살아있는 신뢰이며, 너무나도 확실하고 분명한 것이기 때문에 사람이 몇 천 번이라도 그것에 자기의 목숨을 걸 수 있을 정도"의 것이라는 사실을 음미해 봐야 할 것입니다. 당신은 주님의 은혜에 대하여 목숨이라도 아끼지 아니할 준비가 되어 있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