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계시록 7장 1-3절
“이 일 후에 내가 네 천사가 땅 네 모퉁이에 선 것을 보니 땅의 사방의 바람을 붙잡아 바람으로 하여금 땅이나 바다나 각종 나무에 불지 못하게 하더라. 또 보매 다른 천사가 살아 계신 하나님의 인을 가지고 해 돋는 데로부터 올라와서 땅과 바다를 해할 권세를 받은 네 천사를 향하여 큰 소리로 외쳐 이르되, 우리가 우리 하나님의 종들의 이마에 인치기까지 땅이나 바다나 나무나 해야지 말라 하더라.”
요한계시록 7장은 앞선 여섯 인의 재앙이 임한 직후, 일곱 번째 인이 열리기 전 하나님께서 한 가지 중요한 중간 계시를 보여주신 장면입니다. 무섭고 두려운 재앙이 이어지는 가운데, 하나님께서 친히 자기 백성들을 보호하시기 위해 중단시키신 장면입니다. 이 본문은 마지막 심판의 날에도 하나님은 자신의 백성을 결코 잊지 않으시고 인치심으로 보호하신다는 놀라운 위로와 희망의 메시지를 담고 있습니다.
사도 요한은 환상 가운데 네 천사가 땅 네 모퉁이에 서 있는 장면을 보게 됩니다. 이는 단순히 네 방향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전 세계, 온 세상을 포괄하는 상징적 표현입니다. 당시 고대인들은 땅을 평평하고 사각형으로 이해했기에 “네 모퉁이”라는 표현은 지구 전체, 즉 전 인류를 의미하는 말이었던 것입니다. 이 천사들이 땅의 사방 바람을 붙잡고 있다는 것은 하나님의 심판을 상징하는 자연적, 초자연적 재앙들을 일시적으로 멈추고 있는 상태를 말합니다. 구약 성경에서도 바람은 종종 하나님의 심판과 징계, 혹은 능력을 나타내는 수단으로 사용되었습니다. 예를 들어, 열왕기상 19장 11절에서 엘리야가 하나님의 임재를 체험할 때 강한 바람이 지나갔고, 시편 83편 13절에서는 바람이 겨와 같이 원수들을 흩어버리는 장면이 나옵니다. 또한 예레미야 49장 36절에서는 사방의 바람이 임하여 민족을 흩어버리는 재앙의 도구로 표현됩니다.
즉, 바람은 단지 자연적인 기상 현상이 아니라, 하나님의 주권 아래에 있으며, 때로는 심판의 도구로 사용된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심판은 무작위적이거나 무차별적이지 않고, 그분의 뜻과 때에 따라 철저히 통제되고 있습니다. 천사들이 바람을 붙잡고 있다는 것은 아직 심판이 시작되지 않았음을 의미하며, 곧 하나님께서 정하신 일이 먼저 이루어져야 함을 암시하는 장면입니다.
그렇다면 무엇을 기다리고 있는 것일까요? 바로 하나님의 종들, 즉 구속받은 백성들의 이마에 인치시는 일이 선행되어야 했던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과 섬세한 배려를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심판보다 먼저 구원의 방식을 준비하시며, 자기 백성들을 먼저 구별하여 보호하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의 인은 단순한 표식이 아닙니다. 구약 에스겔 9장 4절에서처럼, 멸망과 재앙이 임하기 전, 예루살렘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하며 슬퍼하고 회개하는 자들에게 표를 주셨던 것처럼, 요한계시록에서도 인치심은 하나님의 소유임을 확증하는 행위입니다.
2절에서 등장하는 또 다른 천사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인”을 가지고 “해 돋는 데로부터”, 즉 동방에서 올라옵니다. 동쪽은 성경에서 하나님의 영광이 임하시는 방향으로 자주 묘사됩니다. 에스겔 43장 4절에서는 하나님의 영광이 동쪽 문을 통해 성전에 임하였고, 마태복음 2장에서는 동방 박사들이 별을 따라 예수님을 찾아왔습니다. 동방은 빛이 시작되는 곳이며, 어두움 속에서 소망이 비추어지는 방향입니다. 이는 하나님의 인이 단순히 구별의 표만이 아니라, 생명과 희망, 빛의 징표라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하나님의 심판은 두렵지만, 그 심판 속에서도 하나님의 빛과 보호하심은 끊임없이 함께 한다는 사실은 우리에게 큰 위로가 됩니다.
또한, 이 천사가 “살아 계신 하나님”의 인을 가졌다고 명확히 밝힌 이유는, 로마 제국 아래에서 우상 숭배와 죽은 신들을 섬기던 세상 한가운데서 오직 하나님만이 살아 계시며 참된 주권자이심을 선포하기 위함입니다. 살아 계신 하나님은 지금도 일하시고, 지금도 말씀하시며, 지금도 우리와 함께하십니다. 히브리서 4장 12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활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판단하나니.” 하나님의 살아 계심은 단지 철학적인 진리가 아니라, 우리의 삶 속에 개입하시고 역사하시는 실제입니다.
이 살아 계신 하나님의 인은 하나님의 종들의 이마에 새겨집니다. 이마는 가장 잘 보이는 부위이며, 공개적으로 하나님의 백성임을 선언하는 것입니다. 이 인은 보호의 상징일 뿐 아니라, 소유의 표이며, 언약의 확증입니다. 에베소서 1장 13절에서도 이렇게 증언합니다. “그 안에서 너희도 진리의 말씀 곧 너희 구원의 복음을 듣고 그 안에서 또한 믿어 약속의 성령으로 인치심을 받았으니.” 성령의 임재는 하나님의 인치심이며, 우리가 하나님께 속하였음을 보증하시는 표입니다.
초대 교회 성도들은 이 인치심을 두 가지 방식으로 이해했습니다. 하나는 세례를 통한 인치심이며, 다른 하나는 성령의 임재를 통한 것입니다. 세례는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함께 살아났다는 언약의 표였고, 성령은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 거하시며 하나님의 자녀로 인치셨다는 확증이었습니다(로마서 8:16). 이처럼 하나님의 인은 단지 어떤 종교적 의식이 아니라, 하나님께 속한 자로서의 신분과 권세, 그리고 보호하심의 약속을 모두 담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은 요한계시록이 말하는 그 마지막 날의 그림자 아래에 놓여 있습니다. 재앙과 심판이 예고된 시대, 환난이 언제 닥칠지 모르는 불안한 시대 속에서도 하나님께서는 먼저 자기 백성을 찾으시고, 인치시며 보호하시는 하나님이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인을 받은 자는 환난이 닥쳐도 넘어지지 않고, 핍박 가운데서도 신실함을 지킬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의 이마에는 하나님의 인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 삶을 살아야 하겠습니까? 성령으로 인치심을 받은 자로서, 세상의 가치와 우상 앞에 굴복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께 속한 백성으로 살아야 할 것입니다. 디모데후서 4장 7절의 고백처럼, “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 고백이 우리의 고백이 되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지금도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우리 하나님의 종들의 이마에 인치기까지, 땅이나 바다나 나무나 해하지 말라.” 재앙이 닥치기 전에, 심판이 쏟아지기 전에, 하나님은 당신의 백성을 반드시 구별하시고 지키시는 분이십니다. 우리는 이 하나님의 보호하심과 인치심 속에 오늘도 평안히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이 시대를 사는 하나님의 인 맞은 백성으로서, 빛과 생명의 소망을 잃지 말고 믿음으로 끝까지 견디며 살아가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그리고 성령께서 우리 안에 인치셨다는 사실을 기억하며, 하나님께 속한 자로서 날마다 신실함과 거룩함으로 그분을 따라가기를 바랍니다. 마지막 날에도 하나님의 인을 가진 자로, 주님 앞에서 영광과 승리를 누리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