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계시록 6장 1-2절
“내가 보니 어린 양이 일곱 인 중 하나를 떼실 때에 내가 들으니 네 생물 중 하나가 우레 소리 같이 말하되 ‘오라’ 하기로, 이에 내가 보니 흰 말이 나오는데 그 탄 자가 활을 가졌고 면류관을 받고 나아가서 이기고 또 이기려고 하더라.” (요한계시록 6장 1-2절)
요한계시록은 상징과 환상으로 가득한 말씀입니다. 그만큼 깊은 해석과 기도하는 마음이 필요하며, 특히 위의 본문은 종말의 서막을 여는 매우 중요한 말씀입니다. 본문은 어린 양, 곧 예수 그리스도께서 인을 떼시는 장면으로 시작됩니다. 그리고 그 인이 열릴 때, 하늘 보좌 곁에 있는 네 생물 중 하나가 큰 우레 소리 같이 “오라” 하고 외칩니다.
이 “오라”는 외침은 누구를 향한 것입니까? 교회 역사 속에는 세 가지 견해가 존재해 왔습니다. 첫째는 이 말씀이 사도 요한에게 “와서 보라”는 의미로 주어진 것이라는 견해입니다. 실제로 어떤 헬라어 사본들에는 “에르쿠 카이 블레페(Ἔρχου καὶ βλέπε)”—즉 “와서 보라”라고 되어 있어, 요한에게 환상을 보도록 초청하는 말씀으로 보기도 합니다. 이는 KJV 성경에서도 “Come and see”라고 번역되어 그 해석을 뒷받침합니다. 그러나 많은 사본들, 예를 들어 알렉산드리아 사본, 에브라임 사본, 풀피리안 사본 등에서는 단순히 “에르쿠(Ἔρχου)”—즉 “오라”만 기록되어 있습니다. RSV나 NIV에서도 단지 “Come”으로 번역되어 있어, 누군가를 향한 직접적인 부름일 가능성이 크다는 것입니다.
두 번째 견해는 이 “오라”는 외침이 예수 그리스도를 향한 것이라는 주장입니다. 그러나 이는 본문의 구조와 계시록 전체의 흐름과 일치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인을 떼시는 분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시기 때문입니다. 이미 하늘 보좌에 앉으신 어린 양께서 일곱 인을 하나씩 여시며 계시를 선포하고 계시는데, 네 생물 중 하나가 그분께 명령하거나 부를 수는 없는 것입니다. 계시록 5장 6절은 “보라 보좌와 네 생물과 장로들 사이에 어린 양이 서 있는데 일찍이 죽임을 당한 것 같더라”라고 말씀합니다. 어린 양이 주도권을 가지고 계시므로, 오히려 그분이 명령하시는 위치에 계십니다.
따라서 세 번째 해석, 곧 네 생물의 “오라”는 외침이 바로 말 탄 자에게 향한 것이라는 해석이 가장 자연스럽습니다. 그 이유는 문맥상 분명합니다. “오라”는 외침이 있고 곧바로 흰 말을 탄 자가 등장하기 때문입니다. 이는 네 생물이 하늘의 명령자로서 환상 속 존재를 부르고, 하나님의 심판의 서사에 따라 그 존재가 나타나는 구조임을 보여줍니다.
그렇다면 본격적으로 흰 말을 탄 자는 누구인가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이에 대해서도 크게 세 가지 해석이 존재합니다. 첫째는 이 흰 말을 탄 자가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한다는 견해입니다. 요한계시록 19장 11절 이하에서 다시 흰 말을 탄 자가 등장하며, 그때는 분명히 그리스도로 해석됩니다. “또 내가 하늘이 열린 것을 보니 보라 흰 말이라 그것을 탄 자는 신실과 진실이라 하며 의로 심판하며 싸우더라… 그 이름은 하나님의 말씀이라 칭하더라.” 이 구절은 그리스도의 재림을 묘사하는 것으로 보이며, 이 장면과 본문을 연결시켜 동일 인물로 해석하는 것입니다. 더불어 계시록 전반에서 ‘흰색’은 순결, 의, 승리를 상징하며 그리스도와 관련되어 자주 등장합니다. 계 3장 5절 “이기는 자는 이와 같이 흰 옷을 입을 것이요”라는 말씀처럼 말입니다. 또한 예수께서 마태복음 24장 14절에서 “이 천국 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전파되리니 그제야 끝이 오리라”고 하신 말씀과도 연관 지어, 복음의 승리를 상징하는 자로 보는 해석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 해석은 본문의 구조와 인물 배치상 다소 무리가 있습니다. 계시록 6장 1절에서 어린 양, 즉 예수님께서 인을 떼시는 주체이시기 때문에, 동시에 말탄 자로 등장하는 것은 이중 역할로 해석되어 문맥상 부자연스럽습니다. 또한 네 생물 중 하나가 그리스도를 향해 “오라”고 부른다는 것도 앞서 말한 대로 적절하지 않습니다.
둘째 견해는 이 흰 말을 탄 자가 적그리스도나 악의 세력을 상징한다는 것입니다. 겉모습은 흰 말, 면류관, 승리자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하나님의 백성을 속이고 유혹하며 멸망으로 이끄는 자라는 해석입니다. 고린도후서 11장 14절에서 바울은 “사탄도 자기를 광명의 천사로 가장하나니”라고 말하였습니다. 또한, 이 흰 말을 탄 자가 들고 있는 무기가 ‘활’이라는 점도 중요합니다. 에스겔 39장 3절에 보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대적, 곡의 활을 꺾으시는 장면이 나옵니다. 활은 심판의 도구, 곧 하나님의 백성을 공격하는 세력을 의미할 수 있습니다. 이로 인해 이 견해는, 겉으로는 평화와 의로움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기만적인 악의 세력으로 해석합니다.
셋째 견해는 이 흰 말을 탄 자가 장차 나타날 정복자, 즉 하나님께서 심판의 도구로 사용하시는 인류 역사 속 실제 권세자라는 것입니다. 이 견해는 문맥상 매우 자연스럽고 설득력 있습니다. 요한계시록 6장 2절의 말씀을 다시 보면, “그 탄 자가 활을 가졌고 면류관을 받고 나아가서 이기고 또 이기려고 하더라”고 하였습니다. ‘이기고 또 이기려고 하더라’는 표현은 계속적인 정복을 의미합니다. 실제로 고대 로마에서는 백마를 탄 장군이 전쟁에서 승리한 후 개선 장군으로 입성할 때 흰 말을 탔습니다. 또한, 활은 군사적 상징입니다. 시편 46편 9절 “그가 땅 끝까지 전쟁을 쉬게 하시며 활을 꺾고 창을 끊으며 전차를 불사르시는도다”에서 보듯, 활은 전쟁과 정복을 의미합니다. 이런 상징들을 통해 이 흰 말을 탄 자는 단순한 평화의 상징이 아니라, 세상에 혼란을 일으킬 정복자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이후 등장하는 붉은 말은 전쟁을, 검은 말은 기근을, 청황색 말은 죽음을 상징합니다. 이 흐름 속에서 흰 말을 탄 자 또한 하나님의 심판의 시작으로서, 땅 위에 임할 환난의 서막을 여는 존재임을 알 수 있습니다. 결국 이 모든 말 탄 자들의 등장과 그로 인한 결과는 계시록 6장 16-17절에서 이렇게 표현됩니다. “산들과 바위에게 말하되 우리 위에 떨어져 보좌에 앉으신 이의 얼굴에서와 어린 양의 진노에서 우리를 가리라. 그들의 진노의 큰 날이 이르렀으니 누가 능히 서리요 하더라.” 하나님께서 인류의 역사를 주관하시며, 악한 세력조차도 그분의 심판의 도구로 사용하심을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오늘 우리는 혼란과 전쟁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세상은 겉으로는 번영을 외치지만, 속으로는 불안과 고통, 탐욕과 기만으로 가득합니다. 그러나 그 가운데서 우리는 흰 말을 탄 자가 누구인가를 분별할 수 있는 영적 통찰이 필요합니다. 주님의 재림을 준비하며 깨어 기도하고, 거짓된 세력에 속지 않으며, 진리의 복음을 붙들고 살아가야 합니다. 고린도전서 16장 13절에서 사도 바울은 말합니다. “깨어 믿음에 굳게 서서 남자답게 강건하라.”
역사는 하나님의 손에 있습니다. 이기고 또 이기려는 세상의 정복자들이 등장할 때, 우리는 두려움에 빠지기보다 그 속에서 하나님의 섭리와 뜻을 발견하고, 더욱 굳건한 믿음으로 주님의 나라를 소망하며 살아가야 할 줄 믿습니다. 이 말씀을 마음에 깊이 새기며 주의 재림을 준비하는 거룩한 삶으로 나아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