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계시록 4장 7~8절
“그 첫째 생물은 사자 같고 둘째 생물은 송아지 같고 셋째 생물은 얼굴이 사람 같고 넷째 생물은 날아가는 독수리 같더라. 네 생물은 각각 여섯 날개를 가졌고 그 안과 주위에는 눈이 가득하더라 그들이 밤낮 쉬지 않고 이르기를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여 전에도 계셨고 이제도 계시고 장차 오실 이시라’ 하고 그 생물들이 보좌에 앉으사 세세토록 살아 계시는 이에게 영광과 존귀와 감사를 돌릴 때에” (요한계시록 4장 7~9절)


요한계시록 4장 7절- 9절을 통해 사도 요한이 하늘의 환상 가운데 본 네 생물에 대한 놀라운 계시를 함께 묵상하고자 합니다. 이 네 생물은 하나님의 보좌 주위에서 등장하며, 단지 상징적인 존재가 아닌 하나님을 찬양하고 그분의 속성을 드러내는 거룩한 존재로 묘사됩니다.


요한이 본 네 생물의 형상은 구약의 에스겔 선지자가 본 네 생물의 환상과 매우 유사합니다. 에스겔서 1장 10절에서는 네 생물이 각각 네 얼굴과 네 날개를 지닌 것으로 묘사되었지만, 요한이 본 네 생물은 각각 하나의 얼굴과 여섯 날개를 지닌 것으로 나옵니다. 이러한 차이점은 있지만, 두 환상이 보여주는 본질은 동일하게 하나님의 영광 앞에 있는 하늘의 거룩한 존재들임을 드러냅니다.


요한이 본 첫째 생물은 ‘사자’와 같았다고 했습니다. 사자는 모든 짐승 중의 왕으로서 용기와 위엄, 왕권을 상징합니다. 구약의 열왕기상 7장 29절과 역대하 9장 18~19절에서도 사자의 형상이 왕권과 권위의 상징으로 사용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둘째 생물은 ‘송아지’ 같았는데, 이는 가축 중에서 가장 힘이 센 존재로 힘과 인내, 희생을 상징합니다. 송아지는 제사에서 드려지는 희생 제물로 자주 사용되었으며, 열왕기상 7장 25절에도 등장합니다.

셋째 생물은 얼굴이 ‘사람’ 같았다고 하였는데,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존재로서 지혜와 이성, 그리고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특별한 위치에 있는 피조물입니다. 창세기 1장 27절은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라고 말씀하며 인간의 존귀함을 드러냅니다. 

넷째 생물은 날아가는 ‘독수리’ 같았다고 했는데, 독수리는 새 중의 왕으로서 가장 신속하고 멀리 보는 존재입니다. 에스겔서 17장 3절과 7절에 등장하는 독수리는 예리한 통찰력과 기동력을 상징합니다.


이처럼 이 네 생물은 각각 사자, 송아지, 사람, 독수리의 형상으로 나타나며, 이는 모든 피조물 가운데 가장 고귀하고 강력하며 지혜롭고 민첩한 특징들을 상징합니다. 이 네 생물은 하나님의 창조 세계를 대표하는 존재로서, 하나님께서 만드신 모든 피조물의 총합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들은 단지 상징적인 존재를 넘어 하나님의 권위 아래에 있는 모든 창조 세계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존재함을 드러내는 표상입니다.


이 네 생물은 각각 여섯 날개를 가지고 있으며, 그 안과 주위에는 눈이 가득하였습니다. 이는 이사야 6장 2절에서 나오는 스랍의 형상과도 연결됩니다. 여섯 날개는 무한한 기동성과 즉각적인 순종을 의미하며, 모든 방향으로 움직이며 하나님의 뜻을 따를 수 있는 능력을 상징합니다. 그들의 몸에 가득한 눈은 하나님의 전지하심을 대변하며, 그들이 하나님의 깊은 뜻을 깨닫는 지혜로운 존재임을 보여줍니다.


초대교회 이후로 많은 교부들은 이 네 생물의 형상을 사복음서에 비유해 설명하였습니다. 특히 어거스틴의 견해는 가장 보편적으로 받아들여졌습니다. 어거스틴에 따르면, 마태복음은 예수님을 유대의 왕으로 묘사하기에 ‘사자’로 표현되었고, 마가복음은 예수님의 인간적 고난과 삶을 강조하기에 ‘사람’으로, 누가복음은 희생과 구원의 복음을 중심으로 하여 ‘소’로, 요한복음은 신성과 깊은 교리를 다루기에 ‘독수리’로 상징됩니다. 이러한 해석은 복음서 각각의 고유한 특징을 영적 의미로 연결한 깊은 통찰이라 할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이 네 생물들이 하나님의 보좌 앞에서 밤낮 쉬지 않고 찬양을 드리고 있다는 점입니다. 요한계시록 4장 8절에 따르면, 그들은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여 전에도 계셨고 이제도 계시고 장차 오실 이시라”고 외칩니다. 이 찬양은 이사야 6장 3절에서 스랍들이 하나님을 찬양할 때 사용한 동일한 표현으로, 히브리식의 최상급 강조법을 사용하여 하나님의 절대적인 거룩함을 드러냅니다. 하나님은 어떤 피조물과도 비교할 수 없는 거룩하신 분이시며, 스스로 존재하시며(출애굽기 3장 14절), 전능하신 하나님이십니다(창세기 18장 14절; 예레미야 32장 27절; 마태복음 19장 26절; 누가복음 1장 37절).


또한 그들은 하나님의 전능하심과 영원하심을 함께 찬양합니다. 하나님은 단지 지금만 계신 분이 아니라, 전에도 계셨고 장차 오실 분, 곧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시는 영원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시편 90편 2절은 “산이 생기기 전, 땅과 세계도 주께서 조성하시기 전, 곧 영원부터 영원까지 주는 하나님이시니이다”라고 고백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찬양하는 이 네 생물의 모습은 모든 피조물이 존재하는 궁극적인 목적이 하나님을 예배하고 그분께 영광을 돌리는 데 있음을 보여줍니다.


우리 역시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존재로서 그분을 찬양하고 경배하는 삶을 살아가야 할 줄 믿습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이유, 우리가 존재하는 목적은 바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영원히 그분을 즐거워하는 데 있습니다. 시편 103편 22절은 “여호와의 지으심을 받고 그가 다스리시는 모든 곳에 있는 너희여 여호와를 송축하라 내 영혼아 여호와를 송축하라”고 선포합니다.


오늘도 하늘의 네 생물들처럼, 우리도 하나님 앞에서 거룩함을 사모하며, 끊임없는 찬양과 순종의 삶으로 주님의 이름을 높이며 살아가시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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