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계시록 3장 17절
“네가 말하기를 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 하나 네 곤고한 것과 가련한 것과 가난한 것과 눈 먼 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하는도다”
주님께서는 라오디게아 교회를 향하여 그들의 교만한 자아와 깊은 영적 무지를 책망하셨습니다. 그들은 스스로 말하기를 “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고 자부하며, 마치 아무런 문제도 없는 신앙인 양 자신을 포장하였습니다. 실제로 라오디게아는 물질적으로 매우 풍요로운 도시였고, 의료와 금융, 섬유 산업이 발달하여 주변 도시들보다도 더 높은 부를 누리고 있었던 곳입니다.
그러나 그들이 가진 그 풍요는 겉모습일 뿐, 주님의 눈으로 보셨을 때에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습니다. 주님은 그들의 실상을 보시며 “네가 곤고하고 가련하며 가난하고 눈 멀고 벌거벗었다”고 진단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단순한 비유가 아니라, 영적으로 심각한 위기에 처한 교회의 참모습을 적나라하게 드러낸 것입니다.
‘곤고하다’는 말은 전쟁과 같은 큰 환난으로 인해 모든 것을 잃고 무너져버린 상태를 묘사하는 표현입니다. 외적으로는 부요했지만, 그들의 영혼은 철저히 파괴되고 황폐한 상태였습니다. ‘가련하다’는 말은 하나님 앞에서 연민의 대상이 될 정도로 영적인 깊은 무기력과 불쌍한 형편을 나타냅니다.
그들의 교만이 극에 달한 이유는 바로 자신들의 참된 상태를 전혀 인식하지 못하고 있었다는 데 있습니다. 눈멀었다는 것은 단순히 육체의 시력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영적인 분별력을 완전히 상실한 상태를 의미합니다. 로마서 1장 21절에서 바울은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을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감사하지도 아니하고 오히려 그 생각이 허망하여지며 미련한 마음이 어두워졌나니”라고 말씀하였습니다. 라오디게아 교인들은 물질의 풍요 속에 빠져 자신들의 영적 빈곤을 전혀 인식하지 못하는 심각한 영적 시각장애에 빠져 있었습니다.
또한 주님은 그들을 ‘벌거벗었다’고 말씀하십니다. 이는 단순히 외모가 아닌, 그들의 내면이 도덕적으로, 영적으로 부끄러움 없이 드러나 있다는 의미입니다. 겉으로는 신앙인의 외양을 갖추고 있었지만, 실제로는 위선과 타락이 그들의 영혼 깊숙이 자리잡고 있었습니다. 아무리 값비싼 옷으로 자신을 감췄다 해도, 주님의 눈앞에서는 그 실상이 모두 드러나게 되는 것입니다. 이사야서 20장 4절이나 마태복음 25장 41절 이하의 말씀처럼, 하나님 앞에서는 그 사람의 행위와 본질이 낱낱이 밝혀지게 됩니다.
이 말씀은 단지 과거의 라오디게아 교회만을 향한 것이 아니라, 오늘날 물질의 풍요 속에서 살아가는 우리 모두를 향한 경고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자칫하면 세상의 부요와 안정 속에서 그것이 곧 하나님의 축복이고 신앙의 성공이라고 착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호세아 12장 8절에서 이스라엘이 “나는 부자라, 내가 재물을 얻었으니… 죄가 없다”라고 자부하던 것처럼, 물질이 영혼을 속이게 될 수 있습니다.
주님은 마태복음 6장 33절에서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땅에서 필요한 물질을 아예 무시하라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삶의 최우선 가치로 삼지 말라는 경고입니다. 우리의 삶이 예수 그리스도를 향한 사랑과 헌신으로 가득 차지 않는다면, 우리는 눈먼 자요 가난한 자이며 벌거벗은 자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라오디게아 교인들의 길을 따라서는 안 됩니다. 세상의 풍요 속에 자신을 잊고, 영혼의 빈곤을 자각하지 못하는 삶은 결국 주님의 심판 아래 놓이게 됩니다. 우리의 신앙을 다시금 돌아보고, 우리의 진정한 부요함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시작됨을 믿음으로 고백하며 살아가야 하겠습니다.
우리의 마음이 겸손해지고, 다시 주님 앞에 나아가 자신의 상태를 인정하고 회개하며, 진정한 부요함을 주님께로부터 공급받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이 시대를 사는 모든 성도들이 진정한 눈을 열어 자신을 바로 보고, 주님께 헌신된 삶으로 돌이키는 복된 회복의 길을 걷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