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계시록 3장 7-8절
“빌라델비아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라 거룩하고 진실하사 다윗의 열쇠를 가지신 이 곧 열면 닫을 사람이 없고 닫으면 열 사람이 없는 그가 이르시되 볼지어다 내가 네 앞에 열린 문을 두었으되 능히 닫을 사람이 없으리라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작은 능력을 가지고서도 내 말을 지키며 내 이름을 배반하지 아니하였도다”
요한계시록에 나타난 일곱 교회 중 오직 두 교회만이 주님의 책망 없이 칭찬만을 받은 교회였습니다. 서머나 교회와 빌라델비아 교회입니다. 본문은 그 중 빌라델비아 교회를 향한 말씀으로, 주님께서 친히 자신을 어떻게 나타내시고, 어떤 약속을 주시는지를 깊이 있게 드러냅니다.
먼저 우리는 주님께서 자신의 권세와 본질을 드러내시는 말씀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거룩하고 진실하사 다윗의 열쇠를 가지신 이”라는 자기 계시는 단순한 소개가 아닙니다. 이것은 곧 주님의 정체성과 주권을 밝히는 선언입니다.
‘거룩하다’는 표현은 구약에서 오직 하나님께만 쓰인 말입니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만군의 여호와여” (이사야 6:3). 예수님은 본질적으로 하나님이십니다. 죄와 분리된 절대적인 순결, 온전한 분리와 구별됨이 그분의 존재입니다. 우리가 그분을 따르며 그분의 말씀을 신뢰할 수 있는 이유는, 그분이 거룩하시고 변함없으신 진리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또한 “진실하신 이”이십니다. ‘alēthinos’라는 헬라어는 단순한 진리가 아니라 참되며 위조되지 않은, 거짓 없는 실재를 가리킵니다. 주님은 단순히 진리를 말씀하시는 분이 아니라, 진리 자체이십니다.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요한복음 14:6).
이처럼 우리 주님은 신실하시며, 그 말씀은 한 치의 오류도 없이 반드시 성취되는 진리입니다. 그분은 또한 “다윗의 열쇠를 가지신 분”이라고 소개됩니다. 열쇠는 단지 문을 여닫는 도구가 아닙니다. 그것은 통치의 권한, 결정의 권세를 의미합니다. 이사야 22장 22절에서 우리는 그 상징을 봅니다. “내가 다윗의 집의 열쇠를 그의 어깨에 두리니 그가 열면 닫을 자가 없겠고 닫으면 열 자가 없으리라.” 이는 엘리아김에게 주어진 예언이지만, 요한계시록에서는 예수 그리스도께 적용됩니다. 예수님은 다윗의 자손이시며, 동시에 다윗의 주이신 메시아로서 모든 문을 여시고 닫으실 수 있는 권세를 가지셨습니다. 하늘의 문, 생명의 문, 구원의 문, 그리고 심판의 문까지 모두 주님의 손에 있습니다. 그분이 여신 문은 닫을 자가 없고, 그분이 닫으신 문은 열 자가 없습니다.
이제 우리는 주님께서 빌라델비아 교회 앞에 두신 ‘열린 문’의 의미에 주목해야 합니다. 주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볼지어다 내가 네 앞에 열린 문을 두었으되 능히 닫을 사람이 없으리라.” 이 문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일반적으로 ‘열린 문’은 두 가지로 해석됩니다. 첫째는 구원의 문, 둘째는 복음 사역의 기회입니다. 그러나 본문의 흐름을 볼 때, 이 열린 문은 하나님 나라의 생명과 교제, 구원과 천국으로 들어가는 문을 가리킨다고 보는 것이 자연스럽습니다. 요한복음 10장 9절에서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나는 양의 문이라 누구든지 나로 말미암아 들어가면 구원을 받고 또는 들어가며 나오며 꼴을 얻으리라.” 이 문은 인간의 노력으로 열 수 있는 문이 아닙니다. 주님이 여셔야만 열립니다. 그리고 한 번 열리면 아무도 닫을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왜 주님께서는 빌라델비아 교회 앞에 열린 문을 두셨습니까? 주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작은 능력을 가지고서도 내 말을 지키며 내 이름을 배반하지 아니하였도다.” 이들은 교회 규모나 능력 면에서는 크지 않았지만, 주님의 말씀에 끝까지 순종하였고, 주님의 이름을 부끄러워하지 않았습니다. 환경이 어렵고 세상으로부터 핍박을 받을지라도, 그들은 작은 능력 가운데 신실하게 믿음을 지켜냈습니다. 바로 그 순종이, 그 인내가, 주님을 기쁘시게 하였고, 하늘 문을 여는 열쇠가 되었던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장 27절에 기록된 바와 같이 “하나님께서 세상에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시며,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셨나니.” 주님은 오늘도 여전히 작고 연약한 자들을 통해 큰 일을 이루십니다. 주님의 기준은 능력의 크기가 아니라 순종의 깊이입니다.
우리도 빌라델비아 교회처럼 적은 능력을 가졌을지 모릅니다. 세상이 요구하는 스펙이나 영향력 앞에 초라하게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말씀에 대한 신실함, 이름을 배반하지 않는 충성, 그리고 작은 것에 충성된 그 믿음을 귀히 여기십니다. 열린 문은 그런 자들에게 예비된 문입니다. 이 문은 세상이 줄 수 없는 영원한 생명과 영광의 문이며, 주님과 함께하는 나라로 들어가는 문입니다. 우리가 이 땅에서 신실하게 주님의 말씀을 지킬 때, 주님은 우리 앞에 그 문을 여시며, 아무도 닫을 수 없다고 선언하십니다.
히브리서 13장 6절의 고백을 생각해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담대히 말하되 주는 나를 돕는 이시니 내가 두려워하지 아니하겠노라 사람이 내게 어찌하리요 하노라.” 주님께서 여신 열린 문 앞에서, 담대히 나아가며, 주님의 말씀에 더욱 순종하고 충성함으로 천국의 기쁨을 미리 누리며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