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직 네게 이것이 있으니 네가 니골라당의 행위를 미워하는도다 나도 이것을 미워하노라.” (요한계시록 2:6)
주님께서는 에베소 교회를 향해 “처음 사랑을 버렸다”는 책망을 하신 직후, 다시금 한 가지를 칭찬하셨습니다. 그것은 바로 “니골라당의 행위를 미워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여기서 주님은 “나도 그것을 미워하노라”라고 단호하게 말씀하심으로, 니골라당의 사상이 단순한 의견 차이나 작은 오류가 아니라, 하나님 앞에 혐오스러운 악한 행위임을 분명히 하셨습니다. 그렇다면 니골라당은 어떤 자들이며, 그들이 왜 이토록 주님께 미움을 받았는지 살펴보아야 하겠습니다.
‘니골라당’에 대한 기원은 학자들 사이에 두 가지 견해가 있습니다. 첫째는 인물 중심의 기원설입니다. 사도행전 6장 5절에 언급된 안디옥 사람 ‘니골라’를 그 시초로 보는 견해입니다. 그는 유대교에서 개종한 자로 초대교회 일곱 집사 중 한 사람이었지만, 훗날 율법을 폐지하고 복음을 방종으로 바꾸려 한 율법폐지론자의 대표자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견해는 성경이 그 후의 행적을 명시하지 않기에 조심스럽게 다루어야 합니다.
둘째는 어원적 기원설입니다. ‘니골라’라는 이름은 헬라어로 ‘정복하다(니카오, νικάω)’와 ‘백성(라오스, λαός)’의 합성어로 이해되며, 이 뜻은 히브리어 ‘발람’(정복하다 + 백성)과도 유사한 구성을 지닙니다. 이를 통해 니골라당은 결국 백성을 정복하고 지배하는 자들, 즉 잘못된 가르침으로 하나님의 백성을 혼미하게 만든 반(反)기독교 집단으로 해석됩니다. 그들은 교회 안에 있으면서도 세속적 철학과 방탕한 생활을 합리화하며, 교회의 거룩성을 파괴하고자 했던 자들이었습니다.
그들의 가르침은 매우 교묘하고 위험했습니다.
첫째로, 그들은 “복음의 시대가 도래했으니 율법과 관례에 얽매일 필요가 없다”고 주장했습니다. 이 말 자체는 일면 진리처럼 들리지만, 그 본질은 기독교의 자유를 세상의 방종으로 오해하게 만든 것이었습니다. 갈라디아서 5장 13절에서 바울은 “자유로 육체의 기회를 삼지 말고”라고 경고했듯이, 참된 자유는 책임과 거룩함 안에서 누리는 것입니다.
둘째로, 니골라당은 이원론적 사상을 가르쳤습니다. 곧, “영혼은 선하고 육체는 악하다”는 그릇된 철학을 교회에 도입하여, “육체는 악하니 무엇을 하든지 상관없다”는 극단적 윤리 해체를 주장했습니다. 이는 사도행전 15장 29절에서 사도들이 “우상의 제물과 음행과 목매어 죽인 것과 피를 멀리하라”고 한 권면과 정면으로 배치됩니다.
셋째로, 이들은 “예수님 안에 있는 자는 항상 보호받기 때문에 무엇을 하든 죄가 되지 않는다”고 가르쳤습니다. 이는 복음의 핵심인 은혜를 왜곡하여, 죄에 대한 책임을 제거한 무책임한 신앙을 정당화하는 악한 사상이었습니다. 결과적으로 그들은 도덕적 해이와 방종을 조장하였으며, 교회 안에서 음란과 우상숭배가 침투하도록 만들었습니다.
이처럼 니골라당은 복음을 변질시켜 자신의 욕망을 정당화한 이단 세력이었으며, 외부의 핍박보다 더 치명적인 내부의 타협이었습니다. 그들은 신앙의 이름을 빌려 세속의 쾌락을 따랐고, 교회를 더럽히는 자들이었으며, 당시 성도들이 가장 경계해야 할 대상이었습니다.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교회를 어지럽히는 도전은 교회 바깥보다 안에서 더 자주, 더 교묘하게 일어납니다. 진리와 은혜를 빙자한 타협과 왜곡, 자유라는 이름 아래 방종을 정당화하는 움직임은 시대를 불문하고 계속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항상 깨어 있어야 합니다. 오직 말씀에 뿌리를 두고, 성령의 조명을 따라, 복음의 본질을 지켜내야 합니다. 바울 사도는 고린도후서 11장 3절에서 “뱀이 그 간계로 하와를 미혹한 것 같이 너희 마음이 그리스도를 향하는 진실함과 깨끗함에서 떠나 부패할까 두려워하노라”고 경고하였습니다.
주님께서는 니골라당의 행위를 “나도 미워하노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는 우리도 주님과 같은 마음으로, 그릇된 가르침을 분별하고 거절해야 함을 뜻합니다. 사랑이 전부인 시대라 하지만, 진리를 떠난 사랑은 참사랑이 아닙니다. 복음을 수호하는 것이야말로 교회를 사랑하는 길입니다.
오늘도 우리는 성령 안에서 복음의 순수함을 지키며, 주님께서 기뻐하시는 교회로 살아가야 하겠습니다. 주님이 미워하시는 것을 우리도 미워하고, 주님이 기뻐하시는 것을 따라 행함으로, 거룩한 신부로서 주님의 다시 오심을 준비하는 복된 성도들이 되시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