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판을 받지 아니하려거든 비판하지 말라. 너희가 비판하는 그 비판으로 너희가 비판을 받을 것이요, 너희가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가 헤아림을 받을 것이니라.”
(마태복음 7장 1-2절)

본문은 예수님께서 산상수훈 중 마지막 단락을 여시는 말씀으로, 매우 실질적이고도 깊은 자기 성찰을 요구하시는 교훈입니다. 우리는 흔히 신앙생활 가운데서도 다른 사람의 잘못이나 연약함을 쉽게 지적하고 판단하려는 유혹에 빠지기 쉽습니다. 예수님은 그런 우리를 향해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비판을 받지 아니하려거든 비판하지 말라.” 여기서 ‘비판’이라는 단어는 헬라어로 ‘크리네테’인데, 단순한 판단이 아니라 정죄와 심판의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곧 상대를 하나님의 자리에 앉은 것처럼 엄하게 판단하고 단죄하는 태도를 의미합니다. 이것은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 영역을 넘보는 것이며, 결국 그런 판단은 우리 자신에게 그대로 되돌아오게 된다는 주님의 경고입니다.


“너희가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가 헤아림을 받을 것이니라”는 말씀은, 우리가 남을 판단하는 기준이 곧 우리를 심판하는 기준이 된다는 뜻입니다. 야고보서 2장 13절에서도 이렇게 말씀합니다. “긍휼을 행하지 아니하는 자에게는 긍휼 없는 심판이 있으리라.” 그러므로 우리는 어떤 상황에서도 함부로 타인을 비판하기보다는, 그 사람의 형편을 이해하고 품어줄 수 있는 자비롭고 겸손한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이것이 주님의 마음이며, 하나님 나라 백성의 참된 삶의 태도입니다.


예수님은 이어서 우리의 내면을 꿰뚫는 말씀을 하십니다. “어찌하여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고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 여기서 ‘티’는 헬라어로 ‘카르포스’인데, 식물성 먼지처럼 아주 작은 입자를 의미하고, ‘들보’는 ‘도콘’이라 하여 집을 지탱하는 큰 나무 기둥을 가리킵니다. 주님은 우리 안에 있는 죄는 큰 들보처럼 심각함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종종 다른 사람의 작은 잘못만을 집요하게 들추어내려는 어리석음에 빠지곤 한다고 하십니다. 이는 자기 성찰이 부족한 상태에서 남의 허물을 들여다보는 이중적인 태도를 지적하시는 말씀입니다. 


로마서 2장 1절은 우리에게 이렇게 경고합니다. “그러므로 남을 판단하는 사람아, 누구를 막론하고 네가 핑계하지 못할 것은 남을 판단하는 것으로 네가 너를 정죄함이니 판단하는 네가 같은 일을 행함이니라.” 우리가 남을 쉽게 비판하는 이유 중 하나는, 그 사람의 허물을 지적함으로써 내 안의 부족함을 외면하고자 하는 심리가 작용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에게 먼저 자신의 영적 상태를 돌아보라고 말씀하십니다. 타인을 비판하기 전에 “내 눈에 들보가 있는지”를 깊이 점검해야 합니다. 그것이야말로 참된 성도의 태도이며, 회개의 출발점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외식하는 자들을 향해 이렇게 경고하십니다. “외식하는 자여! 먼저 네 눈 속에서 들보를 빼어라. 그 후에야 밝히 보고 형제의 눈 속에서 티를 빼리라.” ‘외식하는 자’라는 표현은 헬라어 ‘휘포크리테스’로, 원래 연극배우를 의미하지만, 성경에서는 겉과 속이 다른 위선적인 자를 지칭할 때 사용됩니다. 주님은 특히 이런 위선자들을 가장 엄하게 책망하셨습니다. 마태복음 23장에서 예수님은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을 향해 일곱 번이나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자들아”라고 꾸짖으십니다. 왜냐하면 이들은 겉으로는 경건해 보이지만, 속으로는 탐욕과 교만, 형식주의에 사로잡혀 있었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오늘날에도 겉으로는 말씀을 잘 알고, 기도도 열심히 하지만, 실제 삶 속에서는 말씀의 겸손과 사랑을 실천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들은 자신은 돌아보지 않으면서도 다른 형제의 티를 쉽게 정죄합니다. 그러나 참된 신앙은 외형이 아니라, 내면의 진실성과 겸손에 있습니다. 야고보서 1장 22절은 이렇게 권면합니다. “너희는 말씀을 행하는 자가 되고 듣기만 하여 자신을 속이는 자가 되지 말라.” 우리가 형제를 바로 도우려면, 먼저 내 속의 들보를 제거해야 하며, 진정한 회개와 자기 성찰 없이 남을 돕는다는 것은 오히려 오만한 위선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깊이 깨달아야 합니다.


우리는 오늘 예수님의 말씀을 통해 신앙의 진정성을 점검받고 있습니다. 남을 판단하기 전에 내 안의 교만을 먼저 발견해야 하며, 형제를 돕기 전에 내 눈의 들보부터 빼내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 앞에서 정직하고 진실된 신앙의 출발입니다. 우리가 다른 사람의 부족함을 보았을 때, 그것을 지적하기보다, 먼저 기도하고 도와줄 방법을 고민하며, 사랑으로 품으려는 태도가 주님이 원하시는 삶입니다. 


갈라디아서 6장 1절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형제들아 사람이 어떤 범죄에 빠진 것이 드러나거든 신령한 너희는 온유한 심령으로 그러한 자를 바로잡고, 너 자신도 시험을 받을까 두려워하라.” 결국 성숙한 신앙인은 정죄하는 사람이 아니라, 돌이켜 세우는 사람이며, 지적하는 사람이 아니라 함께 아파하고 기도하는 사람입니다. 오늘 이 말씀 앞에서 우리가 ‘비판하는 자’가 아니라 ‘중보하는 자’가 되기를 결단하며, 겸손히 자신을 돌아보고, 사랑으로 형제를 품는 성도들이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86 산상수훈(39) 권세 있는 말씀, 영원한 감동(마태복음7:28-29) 이진천 2025-03-22
85 산상수훈(38) 말씀을 듣고 행하는 신앙(마태복음7:21-27) 이진천 2025-03-22
84 산상수훈(37) 거짓 선지자를 분별하라(마태복음7:15-20) 이진천 2025-03-22
83 산상수훈(36)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마태복음7:13-14) 이진천 2025-03-22
82 산상수훈(35) 황금률, 신앙의 실천적 정수(마태복음7:12) 이진천 2025-03-22
81 산상수훈(34) 구하고, 찾고, 두드리라(마태복음7:7-11) 이진천 2025-03-22
80 산상수훈(33) 진리를 분별하여 전하라(마태복음7:6) 이진천 2025-03-22
» 산상수훈(32) 비판하지 말고 돌아보라(마태복음7:1-5) 이진천 2025-03-22
78 산상수훈(31) 염려 대신 하나님을 신뢰하라(마태복음6:25-34) 이진천 2025-03-22
77 산상수훈(30) 우리의 눈은 어디를 바라보고 있는가?(마태복음6:22-24) 이진천 2025-03-22
76 산상수훈(29) 보물을 어디에 쌓고 있습니까?(마태복음6:19-21) 이진천 2025-03-22
75 산상수훈(28) 하나님 앞에서 금식하라(마태복음6:16-18) 이진천 2025-03-22
74 산상수훈(27) 하나님의 용서를 받기 위해(마태복음6:14-15) 이진천 2025-03-21
73 산상수훈(26) 주기도문의 송영(마태복음6:13) 이진천 2025-03-21
72 산상수훈(25)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시옵고(마태복음6:13) 이진천 2025-03-21
71 산상수훈(24) 우리 죄를 사하여 주시옵고(마태복음6:12) 이진천 2025-03-21
70 산상수훈(23) 오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옵고(마태복음6:11) 이진천 2025-03-21
69 산상수훈(22)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마태복음 6:10) 이진천 2025-03-21
68 산상수훈(21) 주기도문 2 나라가 임하옵시며(마태복음6:10) 이진천 2025-03-21
67 산상수훈(20) 주기도문 1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마태복음6:9) 이진천 2025-03-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