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마태복음 6장 16-18절
“금식할 때에 너희는 외식하는 자들과 같이 슬픈 기색을 하지 말라… 너는 금식할 때에 머리에 기름을 바르고 얼굴을 씻으라.”
금식, 잊혀진 경건의 훈련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면서 자주 접하는 단어는 기도, 말씀, 찬양입니다. 그러나 상대적으로 잘 다루지 않는 주제가 있습니다. 바로 금식입니다. 오늘날 많은 성도들은 금식을 특정한 사람이나 특별히 영적으로 뛰어난 사람이 하는 것으로 여기는 경향이 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본문에서 “금식할 때에”라고 말씀하십니다. 다시 말해 금식은 선택이 아니라, 신자가 하나님 앞에서 실천해야 할 경건의 훈련이라는 사실을 전제로 하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는 예수님의 가르침을 따라 금식의 올바른 의미를 되새기며, 하나님 앞에서의 경건한 삶이 무엇인지 함께 묵상하고자 합니다.
1. 금식은 사람에게 보이기 위한 행위가 아니다 (16절)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금식할 때에 너희는 외식하는 자들과 같이 슬픈 기색을 하지 말라. 그들은 금식하는 것을 사람에게 보이려고 얼굴을 흉하게 하느니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들은 자기 상을 이미 받았느니라.”
당시 유대인들 중에는 금식을 하면서 얼굴을 찡그리고 머리를 헝클어뜨리며 자신이 금식 중임을 과시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사람들의 칭찬과 존경을 받는 것을 목적으로 금식을 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이런 외식적인 금식을 단호히 책망하셨습니다.
금식은 사람에게 보이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금식은 오직 하나님 앞에 서는 것이며, 주님과의 깊은 교제 속으로 들어가는 통로입니다. 사람의 눈을 의식하는 순간, 그 금식은 하늘의 상급을 잃어버리고 맙니다.
2. 금식은 하나님 앞에 드리는 경건의 훈련이다 (17절)
주님은 이어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는 금식할 때에 머리에 기름을 바르고 얼굴을 씻으라.”
이 말씀은 사치하거나 꾸미라는 뜻이 아닙니다. 당시 기름을 바르고 세수하는 것은 일상의 기본적인 정결의 표현이었습니다. 예수님의 뜻은 분명합니다. “금식한다고 해서 일부러 초라해 보이지 말고, 평소와 같이 단정하고 당당하게 생활하라.”
금식은 단순히 음식을 절제하는 것이 아닙니다. 금식은 자기를 낮추고, 욕망을 절제하며, 하나님 앞에 온전히 나아가는 훈련입니다. 사람을 의식하지 않고, 은밀히 보시는 하나님께 드려야 참된 금식이 되는 것입니다.
3. 금식은 회개와 기도의 깊이로 이끄는 복된 시간이다 (18절)
예수님은 마지막으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이는 금식하는 자로 사람에게 보이지 않고 오직 은밀한 중에 계신 네 아버지께 보이게 하려 함이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
금식은 단순히 음식을 끊는 행위로 끝나서는 안 됩니다. 금식은 우리의 영혼을 깨우고, 하나님을 향한 갈망을 깊게 만들며, 회개와 기도의 시간을 더욱 진실하게 하는 통로입니다. 성경을 보면 모세는 시내산에서 40일 금식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받았고, 다니엘은 기도의 응답을 위해 금식하며 하나님 앞에 엎드렸습니다. 또 에스더는 민족의 생존을 위해 사흘 동안 금식하며 간구했습니다.
즉, 금식은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무력함을 인정하고, 오직 주님의 은혜만을 붙드는 믿음의 행위입니다. 우리가 금식할 때 하나님은 우리의 심령을 새롭게 하시고, 기도의 깊이를 더하시며, 하나님의 뜻을 더욱 분명히 깨닫게 하십니다.
하나님 앞에서 은밀히 드리는 금식
금식은 외식적인 경건 행위가 아니라, 하나님과의 깊은 교제를 위한 거룩한 훈련입니다. 사람에게 보이기 위한 금식이 아니라, 오직 은밀히 보시는 하나님 앞에서 드리는 금식이어야 합니다.
오늘 우리의 신앙 속에 다시 한번 이 경건의 훈련이 회복되기를 원합니다. 기도와 말씀뿐 아니라, 때로는 금식으로 우리의 몸과 영혼을 낮추고, 하나님께 더 가까이 나아가는 삶이 필요합니다.
주님께서 약속하신 대로, 은밀히 보시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금식과 기도를 기쁘게 받으시고, 그에 합당한 은혜와 응답을 베푸실 줄 믿습니다.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