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의 실행- 개인생활로서의 실행

조회 수 3710 추천 수 0 2010.06.07 23:26:41

3. 기도

당신이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기 전까지는 죄인이었습니다. 이 말은 그가 죽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롬5:12). 그러나 이제 그분을 믿고 영접함으로 다시 태어났습니다(요1:13). 이 말은 곧 우리가 기도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생명이 있는 자들은 기도할 것입니다. 그것은 호흡과도 같은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제 당신이 거듭난 그리스도이이라면 기도를 시작해야만 합니다. 그것은 당신이 살아있다는 증거이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당신의 기도에 귀를 기울이고 계십니다. 심지어 구원받지 못한 자의 기도까지도 응답하시던 분이셨습니다(창21:17,18, 욘1:14-16, 행10:3,4). 그분은 과거에 주셨던 모든 모양의 응답들을 오늘날에도 나타내기를 원하시고 계십니다. 당신이 이러한 사실을 믿고 기도한다면 우리가 원했던 응답보다도 더욱 풍성한 은혜를 경험할 수 있을 것입니다. 만일 우리가 주님의 이러한 은혜를 경험하지 못하고 산다면 그 이유는 기도하지 않기 때문일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주님은 그러한 자들에 대하여 답답해하실 것입니다.

 

4. 전도

복음 전하는 일은 그리스도인에게 부여된 주님의 지상 최대의 명령입니다(마28:19,20). 주님은 베드로를 부르실 때 "이제부터는 네가 사람을 낚으리라"고 하셨고(눅5:10), 사도 바울에게도 "내 이름을 증거하기 위하여 내가 택한 그릇이라"고 하셨습니다(행9:15). 또한 예수님께서 승천하시면서 "오직 성령님께서 너희에게 임하신 후에...내 증인이 되리라"는 말씀을 통해 전도의 사명을 부여하셨습니다(사도행전1:8). 꽃이 번식하려면 벌과 나비의 힘을 얻어야 합니다. 복음도 전도하는 제자들의 헌신이 아니고는 전해질 수 없습니다(롬10:15).

 

이일은 하나님께서 가장 기뻐하시는 일입니다. 당신의 삶 속에서 주님이 무엇을 기뻐하신다고 생각하십니까? 우리는 기도, 봉사, 물질, 구제 등으로 최선을 다하여 주님을 기쁘시게 해 드리기 위해 노력합니다. 그러나 바울은 이 문제에 대한 답을 명확하게 제시해 주고 있습니다. 복음 선포의 어리석은 것으로 믿는 자들을 구원하는 것입니다(고전1:21). 그 복음을 전하는 자들의 발은 아름다운 것입니다(로마서10:15). 그것은 심지어 천사들의 눈앞에서 기쁨이 있게 할 정도로 주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는 것입니다(눅15:10).

 

중요한 사실은 전하는 자가 있어야 복음은 확장되어 갑니다. 전파하는 자가 없이 어찌 들을 수 있겠습니까?(롬10:15) 그 까닭에 증인이 되는 일만큼 중요한 것은 없습니다. 주님은 "만민에서 복음을 전파하라"고 명령하셨습니다(막16:15). 여기에 대해 "나는 해당사항이 없습니다"라고 말할 수 있는 성도는 아무도 없습니다.

 

5. 교제

당신은 교제가 단순히 사람들과 만나 대화하고 물건을 나누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까? 그렇다면 교제를 잘 못 이해한 것입니다. 교제는 마음을 같이 하는 것입니다. 서로 마음을 주고받는 것입니다. 가령 불신자와 결혼한 여자가 남편과 더불어 사는 것은 성경이 죄로 규정하지 않습니다(고전7:13). 그러나 만일 그녀가 가정의 평화를 이유로 남편과 더불어 우상에게 절을 하는 상황이 벌어지게 된다면 성경은 이를 마귀들과 교제하는 것으로 간주합니다(고전10:20). 지금 그녀는 남편과도 마음을 같이하여 교제하고 있는 것입니다. 대부분의 그리스도인들이 불신자인 남편과 결혼하지 말도록 독려하는 것도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입니다. 당신은 몸은 같이 있지만 마음이 하나가 되지 못하는 부부에게 행복한 삶이 있을 것이라고 기대하십니까? 그것은 결국 최종적으로는 중요한 선택을 요구받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인가? 남편인가?

 

그리스도인의 교제는 절대적으로 복음 안에서만 이루어져야 합니다. 성경은 교제의 모양이 믿음의 교제(몬1:6), 성령의 교제(빌2:1)라는 말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 말은 교제가 단순히 만나서 대화하는 것 이상의 의미를 담고 있다고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교제 사이에는 언제나 주님께서 함께 하실 것입니다. 왜냐하면 주님은 두세 사람 이상이 모인 모든 장소마다 함께 하시겠다고 말씀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마18:20). 이 말은 그리스도인들의 모든 교제 가운데는 반드시 주님이 함께 하심을 의미하는 것이며, 더불어 주안에서 교제가 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6. 신실한 가정

왜 한 아내의 남편이 되어야만 한다고 말씀하고 있을까요? 그것은 단순히 가정의 안정만을 생각해서 써 놓은 것이 아닙니다. 사람들이 한 아내의 남편, 혹 한 남편의 아내가 되는 것은 상징적으로 큰 의미를 갖습니다. 성경은 많은 부분에 걸쳐서 남편을 예수님으로 비유합니다. 더불어 아내는 교회로 비유됩니다. 예수님께서 교회를 위해 죽으셨듯이 남편은 아내를 위하고, 아내가 자신의 머리인 남편을 섬기는 것이 당연합니다(고전11:3). 이것은 교회와 관련한 신비(mystery)입니다(엡5:32).

 

우리가 그리스도인의 가정에 있어서 부부와의 관계와 더불어 생각해야 하는 것이 자녀들의 문제입니다. 성경은 자녀들로 하여금 모든 공손함으로 복종하게 하는 자에 대하여 말하고 있습니다(딤전3:5). 자녀에게 모든 공손함으로 복종하게 한다는 것은 곧 존경을 받는다는 의미입니다. 가정의 자녀에게 존경의 대상이 된다면 많은 영적 자녀들로부터도 존경을 받게 될 것입니다. 만일 그가 존경을 받을만한 가치가 없는 자라면 그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도 능력 있게 전할 수 없게 될 것입니다. 누가 존경하지도 않는 사람의 말을 들으려 할까요? 그는 그리스도인으로서 아무런 영향을 끼치지 못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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