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레위 계통의 제사 직분으로 말미암아 온전함을 얻을 수 있었으면 (백성이 그 아래에서 율법을 받았으니) 어찌하여 아론의 반차를 따르지 않고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르는 다른 한 제사장을 세울 필요가 있느냐
12 제사 직분이 바꾸어졌은즉 율법도 반드시 바꾸어지리니
13 이것은 한 사람도 제단 일을 받들지 않는 다른 지파에 속한 자를 가리켜 말한 것이라
본문은 레위 제사장직과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는 제사장직을 비교하며, 예수님이야말로 우리를 완전하게 하시는 참된 제사장이심을 선포합니다. 히브리서 7장 11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레위 계통의 제사직분으로 말미암아 온전함을 얻을 수 있었더라면 어찌하여 아론의 반차를 따르지 않고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르는 다른 한 제사장을 세울 필요가 있느냐?” 레위 계통의 제사장직으로는 사람들이 하나님께 나아가는 데 필요한 온전함을 얻을 수 없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온전함이란 하나님께 나아가기에 합당한 상태, 즉 죄와 더러움이 없는 완전한 상태를 의미합니다. 그런데 레위 제사장들의 제사 행위는 이러한 온전함을 가져다주지 못했습니다. 레위 제사장들이 드린 제사는 사람들의 죄를 깨닫게 할 뿐, 그 죄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없었습니다(참조: 로마서 5:20). 이는 죄의 대가는 죽음이라는 엄중한 하나님의 공의를 만족시킬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마태복음 5장 8절은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라고 말씀합니다. 그러나 레위 계통의 제사 행위로는 사람들의 내면의 청결함까지 이룰 수 없었습니다. 이러한 이유로 우리는 레위 계통이 아닌 다른 반차, 곧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는 새로운 제사장이 필요했습니다.
본문은 예수 그리스도를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는 대제사장으로 소개합니다(히7:15). 예수님은 우리 죄를 짊어지시고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온전한 속죄를 이루셨습니다(사53:4-6). 예수님은 자신의 피를 단번에 드림으로 우리를 죄에서 완전히 해방시키셨습니다. 그분의 희생은 레위 제사장들의 반복적인 제사를 넘어서는 영원하고 완전한 속죄입니다. 히브리서 7장 27절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그는 저 대제사장들이 먼저 자기 죄를 위하고 다음에 백성의 죄를 위하여 날마다 제사 드리는 것과 같이 할 필요가 없으니 이는 그가 단번에 자기를 드려 이루셨음이라.” 예수님은 우리를 하나님께 나아가게 하셨습니다. 우리는 이제 그리스도 안에서 죄가 없는 자로 하나님 앞에 설 수 있습니다. 이것이야말로 우리가 기뻐하고 감사해야 할 이유입니다.
히브리서 7장 12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제사 직분이 바뀌었은즉 율법도 반드시 바꾸어지리니.” 레위 제사장직은 모세 율법에 근거하여 세워졌습니다. 그러나 그 제사장직에 결함이 있다는 것은 곧 율법 자체에 한계가 있음을 의미합니다. 율법은 죄를 깨닫게 할 뿐, 죄를 해결하거나 인간을 의롭게 할 수 없었습니다(롬5:20).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는 예수님의 제사장직은 율법의 변역을 가져왔습니다. 이는 유다 지파에서 한 제사장이 나타난 것을 의미합니다. 예수님은 유다 지파에서 나셨으며, 이는 제사장직의 새로운 질서를 보여줍니다.
레위 계통의 제사장직으로는 온전함을 이룰 수 없었기에, 하나님은 유다 지파에서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는 새로운 제사장을 세우셨습니다. 예수님은 왕이자 제사장이 되셔서 우리의 죄를 속량하시고 우리를 하나님께로 인도하셨습니다. 새로운 제사장이 세워진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사랑에 기인합니다. 우리 죄를 담당하시기 위해 예수님은 죽음을 맛보셨고, 우리를 위해 부활하셨습니다. 빌립보서 4장 5절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너희 관용을 모든 사람에게 알게 하라 주께서 가까우시니라.” 예수님께서 죽을 수밖에 없는 우리를 다시 살리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님의 사랑을 본받아 이웃에게 사랑을 전하는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레위 계통의 제사장직이 아닌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는 예수님은 우리의 영원한 대제사장이십니다. 그분의 속죄로 우리는 온전함을 입어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을 우리의 구주로 모시고, 그분의 사랑에 감사하며, 이웃에게도 그 사랑을 나누는 삶을 살아가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