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 성령을 소멸하지 말며
20 예언을 멸시하지 말고
21 범사에 헤아려 좋은 것을 취하고
22 악은 어떤 모양이라도 버리라
바울은 앞서 하나님의 뜻에 대하여 일상생활에서 그리스도인들이 취해야 할 자세들에 대하여 소개하면서 이제는 조금 더 깊이 영적인 상황들에 대하여 권고합니다. 그는 가장 먼저 성령을 소멸치 날라고 권면합니다. 이는 곧 성령의 활동을 제한하지 말라는 의미로 이해되기도 합니다. 고리도 교히가 서령의 활동, 특히 은사와 관련해 무절제한 모습으로 보임으로 많은 문제를 만들었던 것과 대조적으로 데살로니가 교회는 오히려 성령의 활동을 제한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오늘날의 교회에서도 일반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으로 어떤 교히는 지나치게 성령의 활동을 강조하여 신비주의, 혹은 은사주의적인 경향을 보이는 반면에 어떤 교회에서는 지나치게 이성적인 판단으로 성도들의 활동을 제한하여 성령의 역사를 사모하는 성도들을 멸시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 모든 것들은 성령의 사역을 훼방하는 것과 같습니다. 바울은 이미 그들에 대하여 모든 것을 품위있고 질서있게 하도록 권면한 바가 있습니다(고전14:40). 만일 성령의 활동을 제한하려 한다면 그들의 결국은 심판과 형벌을 피할 수 없게 될 것입니다.
바울을 계속해서 예언을 멸시하지 말도록 권면하고 있는데 여기서 말하는 예언은 장차 일어날 일에 대한 것을 예견하는 것이라기보다는 말씀 속에 기록되어 있는 하나님의 뜻을 제대로 알고 분별하여 가르치는 것을 말합니다. 일반적으로 예언에 대하여 생각하기를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무시하거나 혹은 자기에게 유리하게 해석하여 받아들임으로 멸시하려는 자들이 있습니다.
어떤 예언의 은사를 받았다는 이들이 다른 사람의 장래의 일을 말한다든지 사회의 각종 현안들에 대하여 일어나게 될 일을 말하는 것들을 봅니다. 그러나 그것이 무속신앙(무당)과 결코 다를 바가 없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리스도인이라면 그들은 성경의 가르침을 받고 그 안에서 시대를 분별하고 그리스도인의 삶을 올바르게 가르치는 일을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예언의 말씀을 함부로 왜곡하거나 멸시해서는 안 됩니다.
그리고 바울은 범사에 헤아려 좋은 것을 취하도록 권면합니다. 은사나 예언, 교회 안에서 일어나는 모든 것들에 대하여 무존건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항상 분별할 수 있어야 하며, 그 가운데 좋은 것, 즉 선한 것을 취함으로 신실한 믿음의 삶을 살아가기를 힘써야만 합니다. 이 일들을 위해서 성도들은 영들을 올바르게 분별할 수 있어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바울은 악에 대하여 모양이라도 버릴 것을 권면합니다. 일반적으로 성령의 은사를 받은 자들이 가끔은 그 행실에 있어서 악한 모습을 드러내기도 합니다. 심지어 어떤 이들은 악한 영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성령의 은사를 받은 것으로 착각하기도 합니다. 어떤 모양이든 그들의 삶이 악한 모습으로 나타나고 있다면 그것은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악한 모습을 그 모양이라도 버리는 성도가 도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