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내하기

조회 수 227 추천 수 0 2024.10.26 09:25:16


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당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이는 너희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내는 줄 너희가 앎이라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이는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1:2-4)

 

믿음의 행함에 있어서 가장 필수적인 요소라고 할 수 있는 것이 바로 인내입니다. 더구나 초대교회에 닥친 핍박으로 인하여 성도들에게 인내는 더욱 강조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야고보는 예루살렘 교회의 감독으로서 교훈하기에 앞서 인내를 온전히 이룰 것을 권면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믿음의 삶을 사는 그리스도들의 자세를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인내가 우리의 삶을 얼마나 풍성하게 만들어 주는지를 알 필요가 있습니다.

 

야고보는 시험에 빠질 때에 그것을 기쁨으로 여기라고 말합니다. 그 이유는 이러한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이루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좀 더 쉽게 설명한다면 시험, 혹은 시련이 없이 인내도 없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매우 쉽게 보이는 것이지만 오늘날 그리스도인의 모습을 생각한다면 생각해보아야 할 문제입니다. 왜냐하면 대부분의 그리스도인들은 시험의 과정 없이 성숙한 믿음을 기대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야고보는 이러한 생각이 매우 잘 못되었다는 점을 지적입니다.

 

그리스도인에게 있어서 시험은 매우 당연한 것입니다. 실제로 초대교회 당시의 그리스도인들은 극심한 시험 가운데 있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 야고보를 비롯하여 스데반이 순교를 당했고, 베드로를 비롯한 많은 제자들과 성도들이 감옥에 갇혔으며, 죽음의 위협 속에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것을 매우 당연한 것을 여겼으며, 오히려 그것을 기쁨으로 여기도록 권면하고 있습니다.

 

과연 그것이 기쁨의 대상이 될 수 있는 것입니까? 그렇습니다. 그것이 기쁨의 대상이 되기 위해서는 그만한 대가가 주어졌을 때 가능한 것입니다. 야고보는 그 시험, 혹은 시련으로 인한 인내를 통해 충분한 대가가 주어진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던 자입니다. 그 까닭에 그는 오히려 기뻐하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는 지금 다가 올 세상을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그것은 인내가 충분히 가치가 있음을 발견할 수 있는 좋은 증거라고 할 수 있습니다.

 

또한 야고보는 인내가 완전하고 완벽하여 아무 것도 부족함이 없게 한다고 말합니다. 그는 인내야말로 그리스도인을 완전한 믿음의 삶을 살 수 있도록 한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성경에서 이미 증거된 진리들입니다. 인내의 과정을 거치지 않은 위대한 믿음의 사람은 없습니다. 아브라함, 야곱, 요셉, 모세, 다윗 등 성경을 대표할만한 모든 믿음의 사람들의 뒤에는 언제나 인내의 과정들이 있었습니다.

 

무엇이 바울을 성숙하게 만들었습니까? 그것은 바로 수없이 매를 맞고, 감옥에 갇혀서 견디기 힘든 과정을 살아왔던 인내의 세월이었습니다(고후11:23-27). 만일 바울에게 이러한 인내의 시간들이 없었다면 그는 그토록 가치 있는 믿음의 사람이 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가치 있는 보석은 불 속에서 수많은 정제의 과정을 거쳐야 하듯이 믿음의 가치도 수많은 시험을 견뎌내는 인내 속에서 만들어지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보다 완전한 믿음의 삶을 살기 원한다면 먼저 시험을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오히려 기뻐할 수 있는 자세를 취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인내의 과정을 거치면서 점차 성숙해져 갈 것입니다. 우리는 대부분 아직도 연약합니다. 여전히 죄 가운데 노출이 되어 있으며, 많이 넘어집니다. 그러나 우리 가운데 다가오는 시험과 시련의 과정들은 우리의 인내를 통하여 우리를 더욱 강하게 만들어 줄 것입니다. 부디 인내를 완전하게 이루어가는 성도가 되어야겠습니다.

 

생각하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비교할 수 없도다(8:18)

 

우리가 또 한가지 기억해야 하는 것은 우리가 참음으로 기다려야 하는 이유입니다. 바울이 고난의 문제를 강조하여 말하고 있는 까닭은 실제로 당시에 대부분의 성도들이 고난 중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로마에 있는 성도들은 로마사람들의 경계의 대상이었고, 심지어 통치자들조차도 그리스도인들의 확장이 두려워 수많은 그리스도인들을 죽이기 위해서 혈안이 되어 있는 모습들을 역사를 통해 증명이 됩니다. 마치 예수 그리스도께서 유대인들과 당시 유대 종교지도자들에 의해 십자가에 못 박히셨듯이, 당시 로마사람들은 그리스도인들에 대하여 적대적 관계를 가지고 있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들은 그리스도인들에 대하여 화형을 시키고, 사자의 밥이 되게 하며, 단두대에서 목을 치고, 십자가에 달아 죽이는 끔찍한 일들을 행했음을 역사를 통해 이미 증명한 바가 있습니다.

 

이 땅의 피조물들은 모두 썩어지게 될 것입니다. 그 가운데는 우리의 육신도 있습니다. 세상의 모든 피조물이 세월의 흐름과 함께 모두 썩어지듯이 우리 또한 육신이 다하여 결국에는 죽게 될 것이고, 몸은 썩어 흙으로 돌아가게 될 것입니다. 많은 이들이 육체의 보존을 위해서 좋은 음식을 먹고, 의학의 힘을 빌어 아름답게 만들기도 하지만 그것은 결국 한시적인 노력이 될 것입니다. 세상 모든 자연의 법칙이 결국에는 죽음에 이르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영원히 죽지 않는 영광의 날들을 고대해 왔습니다.

 

사람들이 왜 종교를 갖게 되는 것입니까? 그 이유는 매우 단순합니다. 그들은 모두 자신들이 언젠가는 죽게 될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들은 다양한 방법으로 영원히 죽지 않고 죽음 이후에 다가 올 세상에서 영생을 얻게 될 것을 말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결코 눈에 보이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사람들은 다가가지 못합니다. 오히려 조롱하는 경우들을 우리는 목격할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기억해야만 합니다. 그들은 모두 죽음에 이르게 될 것이며, 결국에는 육체가 썩어지게 될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이 사실을 알고, 하나님의 아들로서 장차 영광스러운 날들을 고대하는 자들입니다.

 

바울은 그리스도인들이 이미 성령 안에서 사는 자들이며, 또한 그 열매를 맺고 있는 자임을 말합니다. 우리가 아는 바와 같이 성령의 열매는 기적과 표적의 모습이 아닌 우리의 내면으로부터 드러나는 인격의 변화입니다(5:22-23). 어떤 이는 성령을 받게 되면 마치 초능력자가 된 것처럼 행동합니다. 다시 말하면 모든 질병을 고치고, 만사형통하게 만드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실제로 그리스도인들에게 요구되는 것은 그러한 것들이 아닙니다. 그들은 자신의 내면에서 선한 마음을 가지고 세상에 빛과 소금으로서의 역할을 하도록 요구받고 있는 자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바울이 왜 우리가 보지 못하는 것, 즉 장차 받게 될 영광과 소망으로 구원을 얻게 될 것을 바란다면 참음으로 기다려야 한다고 말하는 것입니까? , 그것은 결코 이 땅을 사는 동안 쉬운 일이 아닙니다. 우리는 이 땅에서 수많은 유혹을 받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적당한 타협을 하게 될 것입니다. 마귀의 공격은 하루도 빠짐없이 언제나 우리의 곁에서 우리를 무너뜨리려 할 것입니다. 우리는 매일 매일을 긴장하며 살아가야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참아야 하는 이유는 우리에게 장차 다가 올 세상이 우리를 영광스럽게 하기 위해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 때문입니다. 이 세상의 일이 전부라면 그리스도인들은 매우 불행한 자들입니다. 그러나 영광스러운 날들이 있다면 가장 지혜로운 자입니다. 우리는 오직 믿음으로만 이 모든 일들을 견뎌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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