곡식과 가라지 비유(마태복음13:24-30)

조회 수 5077 추천 수 0 2010.06.07 19:08:58

예수님께서 또 그들에게 다른 비유를 들어 이르시되 하늘의 왕국은 마치 좋은 씨를 자기 밭에 뿌린 사람과 같으니 사람들이 잠든 사이에 그의 원수가 와서 곡식 가운데 가라지를 뿌리고 가매 잎이 나고 열매를 맺을 때에 가라지도 보이거늘 그 집 주인의 종들이 와서 주인에게 이르되 주여 밭에 좋은 씨를 뿌리지 아니하였나이까? 그런데 가라지는 어디서 생겼나이까? 하매 주인이 이르되 원수가 이렇게 하였구나 하니 종들이 이르되 그러면 우리가 가서 그것들을 뽑아 모으기를 원하시나이까? 하매 주인이 이르되 아니라 가라지를 뽑아 모으다가 곡식까지 뽑을까 염려하노라 둘 다 추수 때까지 같이 자라게 두어라 추수하는 때에 내가 거두는 자들에게 말하기를 가라지는 먼저 함께 모아 불태우게 단으로 묶되 곡식은 모아 내 곳간에 들이라 하리라(마태복음13:24-30)

곡식과 가라지에 대하여 말하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오늘날 주님의 교회 안에서도 여전히 가라지가 자라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대부분의 그리스도인들이 원하지 않는 일이어도 오랜 교회의 역사를 거쳐 오면서 지금까지 계속되어져 오는 일이며, 지금도 가라지는 그 성장을 멈추지 않고 순수한 주님의 교회를 파괴시키는 일을 계속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왜 주님은 교회의 주인이 되시면서고 그들을 가만히 두시는 것일까요?

이일들을 생각하기에 앞서 우리는 이 가라지를 뿌리는 자들에 대하여 생각을 해야만 합니다. 주님은 명백하게 가라지가 원수들에 의해서 뿌려지고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렇습니다. 그것은 결코 주님으로부터 온 것이 아닙니다. 마귀는 언제나 그리스도인들의 믿음을 파괴하기 위해 그들의 마음 안에 악한 생각들을 심을 것이며, 또한 교회를 파괴시키기 위해서 악한 교리와 전통들을 심을 것입니다. 그것은 대부분의 세대에 걸쳐서 성공을 하고 있으며, 주님은 이들의 활동에 대해서 제재하시지 않았습니다. 이 일로 인하여 교회와 성도들은 핍박 속에서 이기는 믿음으로 지금까지 올 수 있었습니다.

많은 이들은 자신의 시험이나 교회에 닥치는 환난이 주님으로부터 오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주님의 속성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주님은 결코 악으로 시험을 받으시지도 않으며, 또한 친히 아무도 시험하지 않으시는 분이십니다(약1:13). 욥의 경우에서 보듯이 모든 시험은 마귀로부터 오는 것입니다. 물론 마귀의 활동이 제한적이기는 하지만 오늘 우리가 그리스도인으로서 살아가는 모든 과정에서 오는 악한 것들이 원수인 마귀로부터 온다는 사실을 기억하십시오.

그렇다면 주님은 왜 이러한 악한 것들을 가만히 두시는 것일까요? 그것은 가라지를 뽑다가 곡식까지 뽑을까 염려가 되기 때문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는 여기서 주님의 마음을 읽을 수 있습니다. 그것은 많은 곡식을 얻는 것보다 현재의 곡식을 더욱 소중하게 생각하신다는 것입니다. 물론 우리는 이것이 복음을 전하지 말라는 것으로 이해되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또는 교회 내에 혼란스럽게 하는 자들에 대하여 관망만 하라는 것으로 이해되어서도 안 됩니다. 그것은 성경의 가르침과는 전혀 다른 것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는 것입니까?

주님은 함께 자라게 두라고 가르치십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것은 혹시 가라지를 뽑다가 곡식까지도 뽑을까 염려가 되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가라지로 인해서 제대로 열매를 맺지 못하는 손실보다 곡식하나를 잃는 것이 더욱 손실이 큰 것으로 생각을 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이것은 주님께서 오늘날 그리스도 안에서 거듭난 성도들에 대하여 얼마나 귀하게 생각하고 계시는지를 보여주는 중요한 말씀입니다.

오늘날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주님의 교회를 생각하면서 교회의 부흥을 위해서라면 몇 사람의 성도를 희생시킬 수 있다고 생각하는 자세와는 매우 다른 것입니다. 실제로 오늘날 많은 교회들이 교회당을 건축하기 위해서 반대하는 사람의 생각을 무시하고, 그들이 믿음이 없다고 책망을 하며, 또한 목회자의 생각에 동의를 하지 않는 자들에 대하여는 순종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징계하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주님의 마음과는 전혀 다른 생각입니다.

주님은 단 한사람이라도 실족하기를 원치 않으시는 분이시며, 심지어 교회의 가라지라도 그냥 두시기를 바라시는 분이십니다. 만일 우리의 생각과 일치를 하지 않는다고 교회로부터 떨어져 나간사람이 참된 곡식인 그리스도인이라면 그 책임을 면하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우리는 매사에 주님의 마음으로 성도들을 대할 수 있어야만 합니다. 비록 그가 부족하고, 또한 믿음이 약한 모습을 보이더라도 추수 때까지 기다리는 마음으로 인내하며 그들이 바른 신앙 안에서 성숙한 삶을 살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만 할 것입니다.

우리는 곡식과 가라지의 비유를 통하여 모든 결과가 마지막 추수 때에 있어질 것이라는 점을 볼 수 있습니다. 이 말은 모든 심판이 오직 주님께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권한이 사람에게 있지 않다는 것을 말하기도 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교회를 판단하고, 성도들의 신앙을 정죄하는 일에 대하여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하나님의 권위에 도전하는 자세라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주님은 근친상간이 행해졌던 고린도 교회나, 각종 이단 교리들이 성행했던 아시아의 일곱 교회와 같은 곳에 대해서도 여전히 주님의 교회로서 인정하고 계시며, 비록 악한 것들이 가득한 교회일지라도 결코 교회를 해체시키는 일을 하지 않으셨다는 사실을 생각해 보십시오. 하물며 우리가 교회의 문제에 대하여 스스로 판단하고 정죄할 수 있는 것입니까? 그 정죄는 오직 추수, 즉 심판 때에 주님에 의해 최종적으로 있게 될 것입니다.

가라지는 우리 안에서 자라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스스로 판단하는 실수를 저지르지 않고 오직 그들과 더불어 자라면서도 스스로 분별하고 지혜롭게 처신하는 삶이 필요할 것입니다. 오직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 자신을 지키고 오직 한 하나님을 의지하고 분명한 믿음으로 마귀들의 세력을 이겨낼 수 있어야겠습니다. 마귀는 오직 믿음이 있는 자들에 대하여 떨며, 다가가지 않을 것입니다(약2:19). 오직 주님만을 의지하는 믿음의 삶을 살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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