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지금은 디모데가 너희에게로부터 와서 너희 믿음과 사랑의 기쁜 소식을 우리에게 전하고 또 너희가 항상 우리를 잘 생각하여 우리가 너희를 간절히 보고자 함과 같이 너희도 우리를 간절히 보고자 한다 하니
7 이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모든 궁핍과 환난 가운데서 너희 믿음으로 말미암아 너희에게 위로를 받았노라
8 그러므로 너희가 주 안에 굳게 선즉 우리가 이제는 살리라
9 우리가 우리 하나님 앞에서 너희로 말미암아 모든 기쁨으로 기뻐하니 너희를 위하여 능히 어떠한 감사로 하나님께 보답할까
10 주야로 심히 간구함은 너희 얼굴을 보고 너희 믿음이 부족한 것을 보충하게 하려 함이라
바울은 디모데를 통해서 전해들은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그 첫 번째는 데살로니가 성도들의 믿음과 사랑에 대한 기쁜 소식이며, 또 하나는 그들이 바울을 간절히 보고 싶어 한다는 것입니다. 일반적으로 기쁜 소식은 주로 복음 증거와 관련해서 사용되는 단어인데 여기서는 성도들 간에 나누는 사랑의 교제와 신앙생활에 관하여 사용되어진 것을 보면 믿음과 사랑과 같은 그리스도인들의 생활이 복음을 전하는 것과 같은 비중으로 다루어지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기도 합니다.
복음이 일반적으로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 그리고 승천과 재림과 같은 것으로 인식이 되고, 가르쳐집니다. 그러나 주님은 우리의 삶이 더욱 교제나 사랑의 실천을 중요하게 가르치고 있다는 것도 잊어서는 안 됩니다. 복음이 단순히 지식으로 사람들에게 가르쳐지는 것이 아니라 복음의 본질이 오히려 성도들의 삶이 온전한 교제와 사랑 안에서 완성 될 수 있다는 것을 인식할 수 있어야만 합니다. 참 믿음의 사람은 형제 사랑을 실천하는 자라는 것을 기억해야만 하겠습니다.
바울은 데살로니가 성도들을 통해 위로를 받았다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가 비록 궁핍과 환난 가운데 있었지만 결코 좌절하거나 낙심한 상태에 있지 않았습니다. 그는 오히려 데살로니가 성도들을 통해 큰 힘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그가 위로를 받았던 것은 데살로니가 성도들의 믿음에 관한 기쁜 소식을 들었기 때문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어찌보면 바울에게 필요한 것은 궁핍한 생활을 생각하면 물질적인 도움이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그들에게 자신이 위로를 받고 있노라고 말하면서 그것이 물질적인 것과 상관없이 믿음에 관한 기쁜 소식으로 인해 기뻐하고 있다고 말합니다.
바울은 데살로니가 성도들이 주 안에서 굳게 섰기 때문에 기뻐한다고 말합니다. 그들이 굳게 섰다는 것은 곧 그들에게 닥친 유혹이나 환난에도 넘어가지 않는 견고함을 가지게 되었다는 것을 말합니다. 그가 믿음으로 주 안에서 서게 된 것을 말하면서 “이제는 살리라”(8)고 말하는데 이는 그 당시의 상황이 매우 박해를 받고 힘겨운 삶이 지속되고 있었음을 알 수 있게 해줍니다. 그리고 그들의 믿음으로 승리하고 있음을 선포하는 것과 같습니다.
바울은 데살로니가 성도들을 보고 싶다고 간구합니다. 그 이유로 그들의 믿음이 부족한 것을 온전하게 하기 위해서라고 말합니다. 이 말이 바울이 앞 서 그들의 믿음을 칭찬했던 것과는 조금 다르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바울은 그들의 믿음을 칭찬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몇 가지 지식과 관련하여 복음을 바르게 인식하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재림에 관한 것과 게으른 일상생활, 그리고 사회적으로나 도덕적으로 무질서한 생활을 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4:2-6). 바울은 그들에게 믿음의 사람들이 어떻게 행해야 하는지를 가르치고자 하였고, 그 간절한 소망을 담아 이 편지를 쓰고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는 곧 주님의 마음이기도 하다는 것을 기억해야만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