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은 자신이 유다에 의해 십자가를 지게 될 것을 알면서도 예루살렘으로 향하셨습니다. 유다가 다가와서 입을 맞추는 그 순간까지도 예수님은 어느 때와 다름없이 행동하셨습니다. 대제사장들과 백성의 장로들에게서 파송 된 큰 무리가 왔을 때까지도 제자들은 주님의 모습에 대하여 별로 큰 반응이 없었습니다. 비로소 예수님께서 무리들에 의하여 잡히는 순간 베드로는 검을 빼들고 대제사장의 종을 검으로 쳐서 그 귀를 떨어뜨렸습니다. 그때까지도 베드로는 주님의 하신 말씀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고 오히려 무조건 예수님을 변호하려고 하는 모습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결국 예수님은 검을 거두실 것을 말씀하시고 무리들에 의하여 끌려 가셨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열 두 군단이 넘는 천사들을 가지고 있었으나 전혀 이용하시지 아니하시고 말없이 순종하는 양처럼 끌려 가셨던 것입니다. 여기서 몇 가지로 구분하여 예수님의 모습을 또한 숨어서 지켜보는 베드로의 모습을 살펴봅시다.
첫째로 예수님은 자신이 끌려가는 일에 대하여 면할 수 있는 길이 얼마든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또한 더 큰 능력을 지니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끌려 가셨던 것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 우선이라고 하는 생각을 가지고 계셨기 때문입니다.
순종이라고 하는 것은 절대적으로 의지적인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순종은 하나님의 능력에 의해서 되어진 것이 아니라 자신을 버리는 일을 반드시 선행했을 때 이루어 질 수 있는 일입니다. 예수님 편에서 볼 때 십자가를 지는 일들은 말씀에 의지하는 생활이 있어야 했습니다. 어느 누구이건 어려움과 고통을 당할 때 말씀에 힘이 없다면 결코 이룰 수 없을 것입니다. 현실의 문제의 해결은 자신의 일방적 생각에서가 아니라 말씀에 의지한 의지적인 순종이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음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둘째로 재판장에 앉으신 예수님이 대답하시는 모습을 주목해서 볼 필요가 있습니다. 예수님은 어떠한 질문에 대해서도 대답하지 아니 하셨습니다. 그러나 "네가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인지 우리에게 말하라"라고 물었을 때만 대답하셨습니다.
물론 예수님께서는 그 대답의 결과가 어떠할 것인가에 대해서는 이미 알고 계셨습니다. 그러나 그 대답을 통해서 십자가를 질 것을 알고 계셨지만 여기서 주님은 그리스도의 왕권, 심판의 주로서의 모습을 보여주고 계십니다. 즉 그 자리에서 왕 되심을 선포하고 계셨던 것입니다. 아무 죄도 없으신 예수님을 중죄인으로 몰아 재판하려는 대제사장의 모습과 만왕의 왕 되신 분임에도 불구하고 죄인 되기를 거부하지 아니하셨던 예수님의 모습을 통하여 우리는 여러 가지로 생각할 수 있을 것입니다. 오늘의 우리의 삶이 누구를 더욱 닮아가고 있는지 생각해 봐야만 할 것입니다.
셋째로 베드로의 세 번 부인한 모습을 지켜보지 않을 수 없습니다. 여기서는 기도하지 못한 베드로의 모습의 비참함을 엿볼 수 있습니다. 즉 실패하는 인생의 모습 그대로를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가 부인했던 것은 그의 내면이 공포감으로 가득 채워져 있었기 때문입니다. 공포감이라고 하는 것은 언제나 기도하지 않는 가운데서 생겨나는 것이고 또한 공포감은 많은 죄를 유발해 내가도 합니다. 베드로는 그가 부인하고 난 후 닭이 울 때에 통곡함으로 하여 자신의 연약함을 인정하고 자신을 발견하는 놀라운 계기를 만들 수가 있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베드로의 몇 가지 위대한 점을 찾을 수가 있습니다.
먼저는 그는 예수님 곁에서 도망했을 때에도 완전한 도피가 아닌 어딘가 가까이 있었다는 사실을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어려운 상황에 몰리게 되었을 때 즉 절망적인 상황까지 이르게 되었어도 그는 먼 발치에서 나마 예수님을 지켜보고 있었었다는 사실입니다. 다음으로는 자기 회개가 있다는 데 찾을 수 있습니다. 만일 그가 회개치 아니하고 예수님께서 돌아가신다 하여 이제는 소용없다고 낙심하고 돌아갔다면 오늘의 말씀 속에 나타난 베드로는 전혀 찾을 수가 없을 것입니다.
오늘 우리의 생활 속에서 예수님이 우리의 모습 속에 나타나지 않는다 하여 낙심하고 실망하며 완전히 돌아선다면 그는 실패한 인생 그 자체가 될 것입니다. 또한 자신이 회개해야 됨에도 불구하고 부끄러워하거나 도피해 버린다면 그 역시 불행한 종말을 맞을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를 대하는 모습, 자신의 권세를 조금도 놓치지 아니하시는 권위 있는 모습, 그와 더불어 나타난 베드로의 회개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역사를 만들어 낼 수 있었던 한 과정이었음을 우리는 부인할 수 없습니다. 말씀의 완성은 십자가에 있었듯이 오늘 우리 성도의 완성은 고난과 더불어 계속 되어지는 회개에 있다고 하는 것을 기억하며 믿음의 행위를 승리롭게 해 나가야만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