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 눈먼 바리새인아, 먼저 잔과 대접의 속을 깨끗하게 하라. 그리하면 겉도 깨끗하리라."(마태복음 23:26)
예수님 당시의 사역에 있어서 가장 큰 방해꾼이 있었다면 역시 바리새인 서기관 등을 들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들은 언제나 예수님의 책망의 대상이었고 또한 제자들을 교훈 하심에 있어서 반드시 필요한 모델이 되곤 하였습니다. 물론 좋은 방향이기보다는 해서는 안될 일들을 행하는 그들이었기 때문에 더욱 교훈하는 데 있어서는 필요한 존재들이었던 것입니다. 본문의 내용 가운데 등장하는 서기관, 바리새인들의 모습과 함께 예수님께서 책망하고 계신 내용이 무엇인지를 또한 그 결과가 어떠한가 하는 문제들을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 저희 행위를 본받지 말라 * 1-12
예수님께서는 무리와 제자들을 앉혀 놓으시고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에 관한 교훈을 하고 계셨습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무리와 제자들은 대개 농민 혹은 어민 출신들로서 대체적으로 순박하며 때묻지 않은 사람들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자들이 물들기 쉬운 몇가지가 있는 데 크게 두 가지로 나누면 도시 문화 혹 세속 문화에 쉽게 물들 수 있다는 것과 둘째로는 악한 영향력을 받을 수 있다고 하는 사실을 들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이들을 교훈하시고자 했던 것은 이들이 앞으로 복음을 증거해야할 일군으로서 영적으로 악한 영향력을 받지 않게 하려는 데 그 목적이 있다 할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님께서 가르치신 악한 영적 영향력이란 어떠한 것인가에 관해 서기관과 바리새인을 통하여 발견해 나가고자 합니다.
첫째로 예수님은 모세의 자리에 앉은 사실을 지적하셨습니다.
어찌보면 단순한 이야기로 생각할 수 있지만 그 자리가 의미하는 바는 매우 큽니다. 재판관의 권위, 영적인 권위, 정치적인 권위 이 모든 것을 포함한 최고의 지도자의 자리에 앉아 있다고 하는 사실 때문에 자연적으로 예수님의 뒤를 따르던 서민격의 무리들과 제자들은 영향력을 받지 않을 수 없기가 힘들었을 것입니다. 오늘날에 있어서 미국이라는 한 나라만을 두고 본다면 강국이라는 하나의 이유 때문에 세계를 자신들의 손아귀에 두고 조정하는 경우를 흔히 봅니다. 이념도 사상도 그들의 권위 앞에서 무너지는 경우를 볼 때에 외적 권위가 얼마나 영향력을 가지는가 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도 어떠한 모임에서 상석을 차지했을 때와 그렇지 아니한 때를 보면서 상석에 앉은 자에 대하여 공공연히 경의를 표하게 되는 경우를 봅니다. 이는 곧 권위에 대한 굴복이라고 볼 수 있는 것입니다. 상석에 앉았을 때에는 자신에 대한 행위가 옳고 그른지에 대한 판단할 수가 없습니다. 우리가 낮아져야 하는 까닭은 항상 자신을 돌아보고 회개하며 살아가야 하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의 앉은 위치가 어디에 있는가를 돌아봐야만 할 것입니다.
둘째로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은 모든 행위를 사람에게 보이고자 한 데 문제가 있었습니다.
그들은 사람들 앞에서 인정받고 존경과 영광을 독차지하려는 자들로서 심지어 기도도 거리에서 하며 그들은 기도가 하나님 앞에서 대면하여 했던 것이 아니라 설교하는 기도를 해서 인간들로부터 인정받으려고 하는 모습이 역력했습니다. 그들은 어디를 가나 항상 최고의 대접을 받으려고 하였고 그들의 중심은 이미 모든 대중에게만 관심이 있었던 것입니다. 즉 그들은 사람에게 얽매이는 자가 되어서 겉과 속이 다른 생활을 계속해 왔었던 것입니다. 오늘의 우리가 이들을 통해 배울 수 있는 것은 하나님 앞에 사는 법을 좀 더 확실하게 익힐 수 있어야만 하겠다는 사실입니다. 오늘의 우리들의 생활을 자칫 사람들을 보면서 살기가 쉽습니다. 교회 안에서는 교인들이 서로 눈치를 보고 세상에 나가서는 사람들에게 눈치를 보면서 그리스도 안에서 자유하기 보다는 얽매이는 생활을 할 때가 더욱 많음을 엿볼 수 있습니다. 우리는 먼저 이러한 생활에 대하여 청산할 수 있는 결단이 필요합니다.
셋째로 그들은 랍비라 칭함을 얻고자 했습니다.
랍비라는 직책은 종교 문제뿐만 아니라 모든 학문과 심지어 정치까지 가르치는 자로서 심지어 아비라 칭함을 얻을 정도로 대단한 직책이었습니다. 오늘날로 보면 일종의 교수격이지만 그보다 훨씬 다양하게 많은 것을 가르치는 자였습니다. 여기서 예수님께서는 랍비라 칭함을 받지 말라고 말씀하셨는데 이는 교회안에 계급화되어지는 것을 방지하고자 하는데 있습니다. 물론 영적인 질서가 필요하기는 하나 주님은 하나님과의 관계를 우선에 두시고 영적 성장에 따라 계급적 성장이 아닌 오직 주님만이 우리의 유일한 지도자가 되실 수가 있고 모든 이들은 오직 그 안에서만 자라고 커나갈 수가 있음을 알게 하고자 한데 있습니다. 랍비가 되기보다는 오히려 섬기는 자로서 존재하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의 뜻을 생각하면서 계급을 확보하고 다스리는 위치가 아닌 은사를 서로 나누어 오직 섬기는 일에만 전념하는 자가 되기 위하여 더욱 노력해야만 할 것입니다. 모세는 영적인 권위를 지닌 자로서 이스라엘을 지도하는 지도자였지만 실제로 모든 것을 하나님과 직접 대면하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대변하여 말했던 종에 불과했던 것입니다. 실제로 그 자신도 어느 누가 보더라도 지도자의 권위를 가질 수 없는 자였지만 하나님의 손길을 통하여 그의 지도자적 권위를 누릴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이로 볼 때에 진정한 지도자는 오직 하나님 밖에 없다는 사실을 알고 믿는 생활이 있어야만 할 것입니다.
넷째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결론적 말씀을 주시는 데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한다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영적 가치관과 세상의 가치관은 서로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오늘날 어떤 교회에서는 교회의 민주화라는 이야기를 들먹이면서 교인이 교회의 주인이 되어야 한다는 주장을 하는 자도 있습니다. 이는 곧 사람이 중심이 된 교회여야 한다는 의미도 포함됩니다. 이는 교회의 뿌리가 어떠한 것인지도 모르고 주장하는 일부 철없는 자들의 말로서 받아들일 수가 있고 진정한 교회는 섬기는 자들이 모인 곳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는 곧 예수님께서 교회의 머리 곧 주인이 되시고 나머지는 종으로서 심부름꾼에 불과하다는 것을 인식할 수 있어야 된다는 사실입니다. 교회안에서는 어떠한 죄인들도 포용하고 섬겨야 하는데 이는 종의 자세가 아니고서는 결코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가룟 유다도 정죄하지 않고 돕고 계셨습니다. 이러한 일련의 일들로 볼 때 어떠한 죄인도 또한 공인된 죄인도 심판의 언어를 통해 저주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자기를 낮추고 섬기는 자세를 취해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이상의 사건을 통하여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충분한 지도를 하실 수가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나를 따르라 나를 본받으라, 나를 배우라란 말씀을 통하여 모든 행위의 근본이 예수님 안에 있음을 가르치셨습니다. 실제로 예수님은 언행이 일치하고 그 삶 자체가 완벽하신 분니셨습니다. 사도 바울도 너희는 나를 본받으라라고 그의 서신을 통해 말했는데 오늘의 우리 성도들이 취해야할 모습들은 바로 나를 본받으라 하는 말을 할 수 있을 정도가 되어야만 하겠다는 사실입니다. 현재 나의 삶은 나를 본받고 나를 배울 수 있으라는 말을 할 수 있을 정도가 되었는지를 되돌아 봐야만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