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나안 여인의 믿음(마태복음 15;21-39)

조회 수 2851 추천 수 0 2010.06.07 18:53:18
이에 예수님께서 그 여자에게 대답하여 이르시되, 오 여자여, 네 믿음이 크도다. 네 소원대로 될지어다, 하시니 바로 그 시각부터 그녀의 딸이 온전하게 되니라."(28절)

예수께서는 이방인의 땅인 두로와 시돈 지방으로 들어 가셨습니다. 이는 오히려 전도 활동보다는 조용한 시간을 갖기 위한 예수님의 계획 중 일부였습니다. 조용한 전도 여행이라고 하는 것은 어찌 보면 주의 종에게 있어서 필요한 과제중 하나일 것입니다. 너무 지나칠 정도로 주의 사역에 파묻혀 지내다 보면 형식에 치우칠 수도 있고 나중에는 권태로 인하여 힘없는 사역을 감당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예수님의 이방 나들이는 매우 큰 의미를 가집니다. 그러나 이곳 두로와 시돈 지방에서도 예수님은 쉴 겨를이 없었습니다. 한 가나안 여인이 예수님에게 달려 왔었던 것입니다. 이에 대처하는 여인과 예수님의 모습을 비교하면서 구체적인 내용을 살펴보도록 합니다.

우리는 여기서 먼저 여인의 애처로운 심정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22)라고 말함으로서 딸의 고통을 자기 문제, 자기 아픔으로 생각했던 것입니다. 즉 같이 애가 타고 고통 하는 자식에 대한 사랑을 보여 주고 있었습니다. 딸의 아픔에 대한 기도를 통해서 우리가 발견할 수 있는 가장 큰 교훈은 가장 확실한 체험은 기도에 있다고 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는 주님 앞에 나아갈 때 어떠한 과제를 진실과 사랑을 가지고 나아가는 자세를 가져야만 할 것입니다.

오늘날에는 많은 마귀에게 시달리는 자들이 있습니다. 예수님 당시 이방의 가나안 여인의 딸이 흉악한 마귀에게 시달리고 있었지만 오늘날에 있어서도 복음에 대적하는 마귀적인 모임을 쉽게 발견할 수 있습니다. 즉 성령의 역사를 방해하고 그리스도의 말씀이 살아 있지 못하는 곳에는 항상 마귀가 역사 할 수밖에 없습니다. 좀 이상한 표현이 될 수 있으나 오늘날에는 지성적인 마귀 신봉자들이 매우 많다고 하는 사실입니다. 지성인들의 모임은 마귀 들린 자가 없는 것 같으나 매우 많습니다. 또한 마귀도 우매한 자나 어리석은 자를 이용하기보다는 지성인들을 이용하여 자신들의 역사를 드러냅니다. 우리가 조심해야 할 것은 깊이 있는 복음에 대한 올바른 이해가 있어야만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생활 속에서 마귀가 역사 할 수 없도록 성령으로 무장해야 할 것입니다.

가나안 여인에게 있어서 응답 받기까지의 장애물이 여러 가지가 있는데 그 중에 다섯 가지 정도를 간추려서 설명할 수 있습니다.

첫째로 이방인인 가나안인이라고 하는 사실입니다.

본래 예수님의 사역은 이스라엘 중심의 사역이었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사람을 제자로 삼고 그 사람들을 키우심으로 하나님의 구속사의 중심 사상을 이루었습니다. 그 대표적인 이유 하나를 든다면 종의 병을 고치기 위해서 예수님께 나아온 백부장의 믿음을 보시고 이스라엘 중에 이만한 믿음을 가진 자가 없다고 말씀하셨으나 그 백부장을 제자로 삼지 않으셨음을 보고 쉽게 짐작할 수 있는 일입니다. 여하튼 이 여인에게 있어서 자신이 이방인이라고 하는 사실을 크게 내세울 수도 없을 뿐만 아니라 응답 받는 데 있어서 이스라엘 중심의 사역을 이루시고 계신 예수님을 본다면 가장 큰 방해물 일 수밖에 없습니다.

둘째로 예수님의 침묵을 들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이방 여인을 보시고 한 말씀도 대답지 아니하셨습니다. 간절한 여인의 모습과 대조한다면 예수님의 냉대는 이 여인에게 있어서 매우 답답하기 그지없는 사건이었습니다. 자신의 딸이 마귀에게 몹시 시달리는 상태였고 아무 곳에서도 고칠 수 없는 상황 속에서 오직 예수님에게 달려 왔지만 예수님의 침묵 속의 냉대는 더욱 마음이 아플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이 여인은 계속해서 긍휼을 구하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때로 기도를 하는 가운데 하나님의 역사와 단절되는 체험을 할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꾸준하게 구할 수 있는 자세가 이 여인의 모습을 통하여 필요함을 인식할 수 있을 것입니다.

셋째로는 제자들의 방해였습니다.

제자들은 뒤에서 소리를 지르는 이 여인을 보고 무척 민망해 했었던 것 같습니다. 그들은 입장이 난처해지자 예수님에게 다가가서 여인을 보내도록 청하며 말했습니다. 제자들의 행위라고 하는 것이 목자의 심정이 아니라 귀찮아서 빨리 보내려고 하는 의도를 담고 있습니다.

우리는 때로 주님과의 대화 속에서 해결해야만 할 문제들을 적당하게 처리하려고 하는 생각을 가지는 때가 있습니다. 이는 매우 위험한 것으로 응답 받는 데 있어서 매우 큰 저해 요인이 됩니다. 가인과 아벨의 경우를 통해서 발견할 수 있는 적당한 행위와 신중한 행위, 아브라함과 롯을 통해 발견할 수 있는 소돔 고모라 땅을 본 적당한 판단과 신중한 판단의 모습을 우리의 생활이 신중해야 함을 배울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가 만일 신중한 판단을 하지 못한다면 자칫 마귀의 이용거리가 되는 존재로 전락해 버릴 수도 있을 것입니다. 이 가나안 여인이 제자들의 모습을 바라본다면 귀찮게 한다고 하여 빨리 보내려고 하는 것은 마귀적이라고도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 있어서는 이 가나안 여인과 같이 여러 방해 요인들이 앞을 가로막을 수 있겠으나 주님과의 대화를 통해 해결 받을 수 있는 생활이 있어야만 할 것입니다.

넷째로는 예수님의 거절을 들 수 있습니다.

이는 매우 멸시적인 거절로서 모욕적인 말씀을 하셨던 것입니다. 여기서 예수님은 믿음의 훈련 과정을 가르쳐 주고 계십니다. 먼저는 너는 실제적으로 자격이 없다고 자아 발견을 하게 하고자 하는 의도와 또한 예수님의 은혜를 구할 자격이 있는가 하는 문제를 제시함으로서 이 여인에게 시비했던 것입니다. 또 숨은 의도를 볼 수 있는데 여인의 믿음을 아시고 공개적으로 하셔서 제자들과 우리들의 믿음 훈련을 목적으로 하고 계시고 여인의 믿음 또한 드러내게 하기 위한 목적도 있다고 볼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속에서 자신을 발견하고 실제 우리가 예수님에게 아무 것도 구할 수 없는 자임을 발견해야만 할 것입니다. 즉 우리가 구원 얻음은 순전한 하나님의 은혜임을 알아야만 할 것입니다.

다섯째로 자격이 없다고 하는 사실입니다.

예수님은 이 여인을 향하여 개라고 하셨습니다. 인간을 개라고 말한다면 이보다 자존심 상하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 만일 거지라도 거지 취급하면 분해하는 것이 인간의 속성입니다. 그러나 이 여인만은 자신을 개라고 인정함으로서 예수님에 대한 경외심을 그대로 나타내 주고 있습니다. "나는 개다 그리고 예수님은 주인이시다"라고 그 스스로는 판단하고서 예수님에게 다가섰던 것입니다. 이는 예수님의 주권 신앙을 인정하고 주님께서 무슨 말씀을 하셔도 받아들이는 모습을 보여준 것입니다. 마치 아첨하는 것 같고, 비굴한 것 같으나 겸손히 끈질기게 구하는 것은 우리에게 큰 믿음을 심어주기에 충분합니다. 사도 바울도 자신을 가리켜서 지극히 작은 자 중에 작은 자, 죄인중의 괴수라고 말했습니다. 실제로 그렇다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영혼의 상태를 주님 앞에 드러냄으로서 회개의 마음을 표현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여인에게 있어서도 마찬가지로 자신이 가장 연약하고 못난 모습을 가진 자라고 고백함으로서 응답 받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결론

이 여인을 통해서 우리가 발견할 수 있는 진리는 매우 많습니다. 그 중에서도 주목할만한 사건중의 하나는 자격이 없지만 이를 극복하고 딸의 병을 고쳤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 원동력은 바로 믿음에 있었습니다. 주님이 인정한 믿음은 주권 신앙과 메시야로서의 고백에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여인을 향하여 "네 믿음이 크도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큰 믿음은 어떠한 환경과 조건에서도 굴하지 아니하고 이겨 나가는 데 있습니다. 우리의 신앙을 좀 더 적극적이고 긍정적인 자세로 바꾸어 나가야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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