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집을 짓되 깊이 파고 기초를 반석 위에 놓은 사람과 같도다. 홍수가 나고 물살이 그 집에 세차게 부딪치되 그 집을 흔들지 못하리니 그 까닭은 그것을 반석 위에 세웠기 때문(for it was founded upon a rock)이라(눅6:48).
(개역) 집을 짓되 깊이 파고 주초를 반석 위에 놓은 사람과 같으니 큰 물이 나서 탁류가 그 집에 부딪히되 잘 지은 연고(because it was well built)로 능히 요동케 못하였거니와
수많은 변개된 성경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과 능력을 숨기려 한다는 사실에 대하여는 이미 잘 알고 있습니다. 그것은 사탄의 교묘한 술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사탄의 주요 공격 대상은 바로 구원의 안전과 관련된 것입니다. 그것은 사람들로 하여금 구원이 다양한 경로를 통하여 있을 수 있다는 가능성를 제시함으로서 혼란을 주는 것입니다. 오늘날 많은 신학자들에 의해 제기되고 있는 다원주의 신학은 바로 이러한 범주에 속한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모두가 같은 영적 음료를 마셨느니라. 이는 그들이 자기들을 따라가던 영적 반석으로부터 마셨기 때문이니 그 반석은 곧 그리스도였느니라(고전10:4).
우리는 이미 성경이 증거하고 있는 바대로 반석이 예수 그리스도라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우리가 구원과 관련하여 설명되어지고 있는 위의 성경 구절에서 심판 때에 안전한 집이 어떠한 집인가에 대한 설명을 들을 수 있습니다. 그것은 매우 단순하면서도 논쟁의 여지가 없는 것으로 이해될 수 있는 것이기도 하지만 사실 그 안에 숨겨져 있는 비밀은 진리에 대하여 엄청난 차이를 보이고 있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홍수가 집을 흔들지 못한 까닭이 무엇입니까? 하나의 성경은 반석 위에(upon a rock) 세웠기 때문이라고 말하고 있고, 또 다른 하나는 잘 지어진(well built) 건물이기 때문에 홍수, 즉 심판으로부터 안전할 수 있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어떤 것이 진실입니까? 물론 이 두 가지가 일반적인 육신의 관점으로 보면 전혀 문제가 없는 것입니다. 오히려 잘 지어진 건물이 홍수에 안전할 것이라는 점에 더 무게를 둘 수도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영적인 관점에서 보면 이 문제에 대한 답은 크게 달라질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반석은 곧 예수 그리스도를 의미하고 있는 단어이며, 잘 지어졌다는 것은 행위가 온전하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심판으로부터 안전할 수 있는 방법이 무엇입니까? 예수 그리스도입니까? 아니면 우리의 행위입니까? 물론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의 행위가 방종으로 흘러가도 괜찮다는 것을 말하려 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우리가 구원의 안전을 위해서는 그 답이 명백합니다. 그것은 바로 반석이신 예수 그리스도 위에 지어져야만 한다는 것입니다. 만일 아무리 거룩한 생애를 살아간다 할지라도 그가 예수 그리스도와 상관없이 그 일을 행하고 있다면 그는 사람들로부터 존경을 받을지언정 구원에 이를 수는 없는 것입니다.
현대의 많은 신학자들과 지식인들에 의해서 예수 그리스도가 없이도 선한 행위들에 의해서 구원을 받을 수 있다고 가르쳐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성경을 변개시켰던 무리들과 같은 생각을 가진 자들입니다. 그들은 지금도 예수 그리스도만이 유일한 구원자가 되신다는 사실에 대하여 부인하고 있는 자들입니다. 지금도 이 땅에 존재하고 있는 다양한 성경들에 의해서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질문을 받고 있습니다.
우리를 구원으로 인도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우리의 구원자 예수 그리스도입니까? 아니면 우리의 선한 행실입니까? 지금 우리가 들고 있는 성경은 어떤 것을 지지하고 있습니까? 우리가 구원에 안전에 이르기 위해서 이 질문에 대하여 올바른 대답을 해 줄 수 있는 성경이 우리의 손 안에 놓여 지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