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드로가 부인하여 이르되, 나는 네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지도 못하고 깨닫지도 못하겠노라, 하며 나와서 현관으로 들어가니 수탉이 울더라(마가복음14:68)
베드로가 부인하여 가로되 나는 네 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지도 못하고 깨닫지도 못하겠노라 하며 앞뜰로 나갈새(개역)
수탉이 곧 두번째로 울더라. 이에 베드로가 예수님께서 자기에게 하신 말씀 곧 수탉이 두 번 울기 전에 네가 나를 세 번 부인하리라 하신 말씀을 기억하고 이것을 생각하며 슬프게 우니라(막14:72)
성경이 정확해야 한다는 사실에 대하여는 지나치도록 강조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완전하신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정확성과 아울러 중요한 것이 있다면 선명성입니다. 성경이 그리스도인들의 눈에 선명하게 드러나지 않는다면 그들은 많은 혼란을 감수하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우리는 오늘날 많은 종류의 성경들이 진리를 드러내기 보다는 오히려 많은 혼란과 분열을 일으키고 있다는 사실에 대하여 잘 알고 있습니다. 또한 진리의 능력을 약화시키기 위해서 교묘한 방법으로 성경구절들을 삭제하고 변개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는 점에 대해서도 우려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에 이르렀습니다. 베드로와 관련된 이 구절은 많은 생각을 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베드로에게 “수탉이 두 번 울기 전에 네가 나를 세 번 부인하리라”는 말씀을 주셨습니다. 우리는 수탉이 두 번 울었다는 사실을 발견할 수는 있지만 첫 번째로 울었던 장면을 발견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이 구절은 개역성경에서 삭제되어진 구절이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은 이렇게 주장할지도 모릅니다. 그 한 구절 빠져 있는 것은 그토록 중요한 것인가요? 저의 대답은 이렇습니다. 예! 그 구절은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진리에 이르는데 매우 중요한 가르침을 포함하고 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첫 번째 닭 울음소리는 베드로가 처음 주님을 부인했을 때 들려진 것이었습니다. 당연히 베드로는 이 닭 울음소리를 듣고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을 기억해야만 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계속해서 두 차례나 더 예수님을 부인했고, 결국 세 번에 걸친 부인 뒤에 들려진 닭 울음소리에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을 기억하고 슬프게 울었다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닭 울음소리는 주님의 말씀을 깨닫도록 하는 일종의 표적과도 같은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이것을 전혀 눈치 채지 못했던 것입니다.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의 모습을 보십시오. 그들의 삶 속에서 주님은 수많은 표적들을 통하여 그분의 살아계심과 능력을 보이십니다. 물론 이러한 것들은 속이는 자들이 각종 속임수와 마귀들의 영을 힘입어 드러내는 표적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은 이미 자연계시를 통하여, 아니면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을 통하여 나타나는 어려가지 특별한 역사들을 통하여 사람들 앞에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시고 계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이 완성되어져 감을 보여주고 계십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수없이 보여 지는 표적들에도 불구하고 깨닫지 못하고 계속해서 주님을 부인하고 자신의 목숨을 유지하게에 급급 하는 것이 오늘의 현상입니다.
베드로 역시 자신의 부인 뒤에 울려지는 닭 울음소리를 듣지 못하고 계속해서 주님을 부인합니다. 그것은 단순히 자신의 목숨을 유지하기 위한 몸부림과도 같은 것이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목숨을 위하여 그토록 분명하게 들었던 주님의 말씀을 기억하지 못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결국 그는 세 번의 부인 뒤에 있었던 닭 울음소리를 들은 후에야 자신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오늘 우리들의 생애는 어떻습니까? 주님께서 지속적으로 죄를 깨닫게 하고 죄의 자리로부터 나오도록 수많은 표적들을 보여주고 계심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자신의 안전을 위해서 살고 있지는 않습니까? 주님은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이 주님의 말씀을 기울이고, 오직 그분의 뜻을 따라 살기를 원하시고 계시며, 혹 죄에 자리에 머물러 있다고 할지라도 그곳으로부터 나오게 하시기 위해 수많은 표적들을 보여주실 것입니다. 베드로가 첫 번째 주님을 부인한 뒤에 울었던 닭 울음소리를 들어보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