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But) 어떤 사람이 논쟁하려 할지라도 우리에게나 하나님의 교회들에는 이러한 풍습이 없느니라.
우리는 성경 안에서 접속사가 문장과 문장을 이해시키는데 매우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는 사실에 대하여 알 필요가 있습니다. 가령 “그러므로”와 같은 접속사는 내용의 결론을 나타내기 위한 단어이며, “그러나”와 같은 단어는 앞의 내용에 대하여 반전을 시도하는 단어라고 할 수 있는 구절입니다. 그렇지만 만일 그 단어 하나가 빠지게 된다면 내용이 완전히 달라질 수도 있습니다.
고린도전서 11장 3-15절까지의 내용은 일반적으로 여자의 머리를 덮는 것과 관련된 구절입니다. 일반적으로 알려진 교회 안에서 여자의 머리수건(veil)과 관련된 구절입니다. 오늘날 아직도 많은 교회들에서는 여자들이 머리수건을 쓰고 있습니다. 가령 카톨릭, 성공회, 동방정교회, 형제교회, 메노나이트와 같은 교회들은 그것은 당연한 성경의 가르침으로 믿고 실행하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물론 우리는 성경 안에서 단 한 단어를 없애버린다면 이것이 결코 성경적이지 않다는 사실에 대하여 결코 말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대부분 그들이 손에 들고 있는 성경 안에는 이 구절을 삭제하고 있다는 사실을 볼 수 있습니다.
<개역> 변론하려는 태도를 가진 자가 있을지라도 우리에게나 하나님의 모든 교회에는 이런 규례가 없느니라
개역성경 뿐만이 아니라 현대인의 영어 성경을 대표하는 NIV와 같은 성경들도 16절의 시작 부분에서 “그러나(But)"라는 구절을 삭제했습니다. 그들이 이 구절을 삭제한 이유는 매우 간단합니다. 그것은 그들의 전통을 버릴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미 카톨릭 교회를 포함한 이교의 영향을 받은 대부분의 교회들은 머리수건을 써왔습니다. 그렇지만 KJV성경은 이들의 풍습(custom)에 대하여 종지부를 찍습니다. 즉 어떤 사람들이 이 문제에 관하여 논쟁을 하려 할지라도 바울 자신을 포함한 하나님의 교회들에는 이러한 풍습이 없다는 것입니다.
어떤 이들은 바울이 머리수건에 관한 부분을 많은 구절에 걸쳐서 설명했다는 이유로 머리수건을 써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또 어떤 이들은 창조의 질서와 영적 질서를 운운하며 여자의 머리수건 문제를 말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바울이 말하고자 했던 것은 극히 내면적인 것이며, 오히려 이러한 문제가 논쟁의 대상이 되지 않기를 권면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한 구절의 단어가 실행에 있어서 많은 혼란을 가져다 줄 수 있습니다. 바울은 고린도전서 11장을 제외한 어느 곳에서도 여자가 머리수건을 쓰는 일에 대하여 언급한 적이 없습니다. 성경 안에는 얼굴을 덮는 것(veil)에 관하여 여러 구절들이 있지만 그것들은 여자들의 머리수건과는 전혀 관계가 없는 구절들입니다. 이 풍습은 당시 많은 이교 신전이 있었던 고린도 지역의 교회 안에 있었던 것이며, 바울은 성경을 통하여 분명하게 제시하고 있기를 하나님의 교회 안에서는 이러한 풍습이 있을 수 없다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러나(But)"라는 단어에 주의 하십시오. 지금도 여전히 성경의 변개를 통하여 전혀 복음과는 상관이 없는 교리와 실행을 요구하는 교회들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성경대로 믿는 그리스도인이라면 성경이 명백하게 제시하고 있는 침례와 주님의 만찬 외에는 어떠한 것도 교회 안에 규례와 전통으로 삼지 않는다는 것을 기억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