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에 의존하는 사람들의 특징은 아마도 자신들에게 행운이 있기를 소망하는 자들일 것입니다. 그 까닭에 그들은 보다 신비스러운 일들을 찾아다니며, 또한 자신 앞에 기적을 보여주는 자들이 능력 있는 자들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이러한 현상들은 사람들이 살아가는 세상에서 어쩔 수 없는 것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성경은 많은 부분에 있어서 사람들에게 기복신앙을 요구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원칙은 언제나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갈6:7)는 것입니다. 이 원칙에 대하여 성경은 분명하게 설명하기를 “자기의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진 것을 거두고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리라”(갈6:8)고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에 우리가 반드시 더하여 생각해야 하는 것이 바로 어떠한 것을 얻기 위해서는 반드시 대가를 치러야만 한다는 것입니다.
처음 사람이었던 아담은 죄로 인한 허물을 덮기 위해서 동물(양)의 희생이 필요하였습니다(창3:21). 만일 그가 동물의 희생이 없었다면 여전히 무화과 나뭇잎으로 죄로 인한 자신의 부끄러움을 감추려했을 것입니다. 어떠한 일이든 충분한 대가를 치르지 않는다면 얻을 수 없습니다.
아브라함은 반드시 값을 치러야 한다는 것을 몸소 보여주었던 자입니다. 그는 자신의 아내 사라가 죽었을 때에 무덤이 필요했습니다. 그 때에 헷의 아들들, 즉 헷의 자손들이 무덤으로 막벨라 굴을 제공해 주겠다고 합니다. 그들의 제안은 아브라함에게 있어서 매우 고마우면서도 감사한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그들의 제안을 거절하고, 오히려 막벨라 굴의 값을 묻고 그들이 말한 대로 은 사백세겔을 달아서 줍니다(창23:1-20). 이후로 이 무덤은 아브라함의 무덤이 되었고, 계속해서 이스라엘은 그 땅의 주인으로서 당당하게 권리를 주장할 수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값을 치렀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값을 치르는 것이 중요한 이유는 바로 예수님께서 가룟 유다에 의해 은 서른 개의 값을 치르고 대제사장들에게 팔리셨기 때문입니다(마26:14~16). 예수님은 하나님이십니다. 그와 동시에 모든 사람의 죄를 대신하여 오신 어린양이기도 합니다(요1:29). 만일 예수님께서 스스로 십자가에 달리시고, 피 흘려 죽으셨다면 그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예수님께서는 제사장에 의해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하고 제 삼일에 다시 살아나셔야만 합니다(마16:21). 이는 누군가가 값을 지불하고 어린양 되신 예수님을 사서, 희생제물로 드려야 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 일을 위해서 가룟 유다는 예수님을 팔기 위한 거래를 하였고, 제사장은 유다에게 은 삼십을 지불하고 예수님을 희생제물로 샀던 것입니다.
값을 지불하지 않는 모든 것은 진정한 가치를 갖지 못합니다. 즉 진정한 주인이 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그것을 얻는다 할지라도 그 정당성을 인정받을 수 없다는 것을 말합니다. 세상에서 거저 얻으려거나, 기복신앙으로 자신을 단순한 종교인으로 만드는 어리석음을 범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모든 것을 값을 치러야 한다는 사실을 반드시 기억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