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이 넘어짐으로(롬11:11-12)
11 그러므로 내가 말하노니 그들이 넘어지기까지 실족하였느냐 그럴 수 없느니라 그들이 넘어짐으로 구원이 이방인에게 이르러 이스라엘로 시기나게 함이니라
12 그들의 넘어짐이 세상의 풍성함이 되며 그들의 실패가 이방인의 풍성함이 되거든 하물며 그들의 충만함이리요
바울은 앞서 이스라엘의 완악함에 대하여 끊임없이 지적하였습니다. 그리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사랑하고 있다는 사실에 대하여 강조하고 있습니다. 이제는 화제를 바꾸어서 과연 그들의 넘어짐이 어떠한 결과를 가져왔는지에 관하여 말하고 있습니다. 그들의 넘어짐은 이방인의 구원을 안겨 주었습니다. 그들이 복음을 거절함으로 이방인에게 구원이 돌아가게 된 것입니다. 바울은 유대인들을 향해 “하나님의 말씀을 마땅히 먼저 너희에게 전할 것이로되 너희가 그것을 버리고 영생을 얻기에 합당하지 않은 자로 자처하기로 우리가 이방인에게로 향하노라”(행13:46)고 말함으로 이미 그 당위성을 설명한 바가 있습니다. 이제 이스라엘과 이방인의 장벽은 없어졌고, 복음은 민족의 차원을 넘어 모든 백성들에게 전해지게 되는 계기가 만들어 지게 된 것입니다.
바울은 이러한 이방인의 구원이 이스라엘로 하여금 시기나게 하려 하는데 있다고 말합니다. 시기나게 한다는 의미는 이스라엘이 자극을 받아 회개하고 믿음 안으로 돌아올 수 있게 하려는 의미를 포함합니다. 이는 이방인의 구원을 통해 유대인들이 질투함으로 하나님께 돌아오도록 하겠다는 하나님의 계획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포기하시지 않으셨으며, 오히려 그들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이스라엘과 이방인의 벽을 무너뜨리고 모든 민족이 구원에 이르도록 하셨습니다.
그들이 넘어짐으로 세상은 풍성하게 되었습니다. 이스라엘이 복음을 거부함으로 오히려 이방인, 모든 민족이 복음을 접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습니다. 풍성함이 되었다는 것은 곧 이방인의 구원을 통하여 천국 백성의 수가 증가되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만일 그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받아들였다면 복음은 아브라함으로부터 이어지는 그들 민족을 벗어날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이 결국 받아들이지 않음으로 복음은 마치 알을 깨고 나오는 것과 같이 이스라엘 민족을 벗어나 온 인류로 향할 수 잇게 되었습니다.
바울은 이스라엘의 실패가 이방인의 풍성함이 된다고 말합니다. 여기서 실패는 헬라어로 “혀테마”(ἥττημα)인데 이는 전투할 때의 패배와 같은 의미를 갖습니다. 즉 이스라엘은 그들이 소유하고 있었던 하나님의 나라를 잃게 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실패가 오히려 모든 민족이 풍성함을 얻게 되는 놀라운 일들이 복음으로 인하여 펼쳐지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이처럼 실패를 통해 더욱 놀라운 구원 사역을 펼치십니다. 가령 초대교회의 성도들이 땅 끝까지 복음을 전하라는 명령을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예루살렘을 벗어나지 않으려하자 하나님은 그들을 핍박하게 하심으로 그들을 흩으시고, 모든 민족들이 복음을 듣게 하셨습니다. 바로 로마서를 수신하고 있는 자들도 그들 중 일부라고 할 수 있습니다. 만일 그들이 핍박을 당하고 심지어 죽임을 당하는 일이 없었다면 그들이 복음을 들을 기회를 얻을 수 없었을 수도 있습니다. 이처럼 우리에게 당하는 넘어짐과 실패가 때로는 더욱 풍성하게 만들어 줄 수도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바울이 여기서 말하고자 하는 것은 단순히 이스라엘이 넘어짐으로 세상이 풍성하게 되었다는 것이 아닙니다. 바울의 결론은 “하물며 그들의 충만함이리요”(12)라는 말에 있습니다. 이는 곧 이스라엘이 복음을 받아들이게 될 것이고, 또한 영적으로 회복될 것이며, 구원받은 자의 수가 충만하게 될 것임을 말합니다. 비록 이스라엘의 실패로 이방인들이 구원의 풍성함을 누릴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되었지만 하나님은 여전히 이스라엘이 돌아오기를 바라고 계시며, 그들이 돌아오게 된다면 더욱 풍성해질 것이라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여전히 유대인들을 포함한 모든 민족들을 사랑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