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명으로 말미암아(롬7:10-13)
10 생명에 이르게 할 그 계명이 내게 대하여 도리어 사망에 이르게 하는 것이 되었도다
11 죄가 기회를 타서 계명으로 말미암아 나를 속이고 그것으로 나를 죽였는지라
12 이로 보건대 율법은 거룩하고 계명도 거룩하고 의로우며 선하도다
13 그런즉 선한 것이 내게 사망이 되었느냐 그럴 수 없느니라 오직 죄가 죄로 드러나기 위하여 선한 그것으로 말미암아 나를 죽게 만들었으니 이는 계명으로 말미암아 죄로 심히 죄 되게 하려 함이라
바울은 유대인으로서 특별한 인생을 경험했던 자입니다. 그는 매우 열정적인 자였고, 유대사회에서 종교적으로 매우 큰 영향력을 가졌던 바리새인 중의 한 사람이었으며(행23:6), 또한 매우 엄격히 순종하며 살았던 자였습니다(행26:5). 그러나 그가 예수님을 만나 회심하기 전까지의 상황은 하나님과 대적하는 관계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는 예수 그리스도를 메시아로 인정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그리스도인들을 핍박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행9:1-2). 핍박을 하는 그의 모습은 스데반의 죽음 현장에서 가졌던 태도를 통해 잘 알 수 있습니다. 그는 스데반이 군중들에 의해 죽임을 당하는 순간 그 죽임 당함을 마땅히 여겼습니다(행8:1). 이후로서 그는 교회를 잔멸하고 각 집에 들어가 남녀를 끌어다가 옥에 넘기는 일을 하였습니다(행8:3). 여기서 중요한 사실은 그가 이 일을 행하면서 자신이 하나님을 위해 매우 의로운 일을 하고 있다고 믿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가 다메섹 도상에서 예수님을 만난 이후로(행9:1-19) 삶에 커다란 변화가 생기기 시작합니다. 자신의 삶이 결코 의로운 것이 아닐 뿐만이 아니라 그는 자신의 행동이 하나님을 대적하는 행위라는 것을 알게 되었던 것입니다. 본문은 바울의 이러한 심정을 잘 대변해 주는 말씀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는 “생명에 이르게 할 그 계명이 내게 대하여 도리어 사망에 이르게 하는 것이 되었도다”(10)라고 고백합니다. 계명, 즉 율법은 분명히 그들을 구원하고 생명을 얻게 하려는데 목적이 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율법을 무기로 하나님의 일을 대적하여 핍박하고 있었습니다. 심지어 그는 “죄가 기회를 타서 계명으로 말미암아 나를 속이고 그것으로 나를 죽였는지라”(11)라고 고백합니다. 그가 이처럼 하나님의 일을 그르쳤던 것은 계명, 즉 율법이 아니라 죄가 기회를 타서 율법을 이용하여 결국 그리스도인들을 핍박하는 도구로 사용하였음을 말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현상들은 모든 세대에 걸쳐서 있어왔던 일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선합니다. 거기에는 거짓이 없습니다. 그것은 영생을 얻기에 충분한 것이며, 그들을 생명의 길로 안내할 것입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그것을 악용하여 사람들을 속이고, 악한 길로 인도합니다. 수많은 이단들과 사이비 집단들을 보십시오. 그들도 한 손에는 성경을 들고 사람들을 정죄하고, 판단합니다. 그리고 마치 자신들이 가장 하나님의 뜻에 따라 사는 것처럼 말합니다. 바울의 모습이 바로 그러했습니다. 그는 어려서부터 율법을 알았고, 또한 그 말씀대로 평생을 살아왔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그의 행동은 결국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이었습니다. 우리가 말슴을 손에 들고 있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분의 뜻과 세상을 향한 목적이 무엇인지를 바르게 깨달아 아는 것이 더욱 중요합니다.
바울의 끊임없는 결론은 “율법은 거룩하고 계명도 거룩하고 의로우며 선하도다”(12)라는 그의 고백입니다. 그리고 그는 그것이 우리를 사망에 이르게 할 수 없는 것이라는 것을 명백하게 말하고 있습니다. 다만 그것은 죄를 드러내며, 나를 죽게 만들며, 죄로 심히 죄 되게 한다고 말합니다(13). 우리가 자신이 죄 가운데 있다는 것을 반드시 알아야 하는 이유가 어디 있는 것입니까? 그것은 우리가 스스로 의롭다 말하는 순간 그는 예수님과 전혀 관계가 없는 자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구원의 대상은 분명합니다.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불러 회개시키러 왔노라”(눅5:32). 바울이 이처럼 율법으로 말미암아 자신이 죄인이라는 사실에 대하여 강조하는 것도 사실 그 내용으로 보면 그가 스스로 구원의 대상이 되고 있다는 것을 간증하고 있는 것이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구원받을 대상은 오직 죄인이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구원은 도덕적으로 의로운 사람에게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죄인임을 인정하는 자에게 허락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