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 지체를 의의 무기로 하나님께 드리라(롬6:12-14)
12 그러므로 너희는 죄가 너희 죽을 몸을 지배하지 못하게 하여 몸의 사욕에 순종하지 말고
13 또한 너희 지체를 불의의 무기로 죄에게 내주지 말고 오직 너희 자신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난 자 같이 하나님께 드리며 너희 지체를 의의 무기로 하나님께 드리라
14 죄가 너희를 주장하지 못하리니 이는 너희가 법 아래에 있지 아니하고 은혜 아래에 있음이라
바울은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이 의인의 신분을 얻게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우리의 몸이 “죽을 몸”이라는 사실에 대하여 분명하게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몸이 사욕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에 대해서도 분명하게 말하고 있습니다. 결국 우리의 몸은 이 땅에서 생명을 다하는 날까지 끊임없이 죄를 지으려는 속성을 가진 존재라는 것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 까닭에 바울은 당부하기를 죄가 몸을 지배하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가장 힘들어 하는 것은 그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구원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죄에서 자유롭지 못한 상태로 살아가고 있다는 점입니다. 바울은 그 이유가 바로 우리의 몸이 본질적으로 사욕이 가득한 존재이기 때문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동의하기 어렵겠지만 우리의 몸은 본질적으로 죄를 지으려는 속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 죄가 비단 도덕적인 범죄만을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을 대적하고, 또한 하나님께서 정하신 법을 벗어나려는 속성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세상을 사는 동안 수없이 많은 가책을 느끼며 살게 될 것이고, 자신의 죄에 대해서 자백하고 회개하는 일들을 끊임없이 반복하게 될 것입니다.
그렇다면 죄와 상관없이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은 없는 것입니까? 바울은 그 해답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너희 지체를 불의의 무기로 죄에게 내주지 말고 오직 너희 자신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난 자 같이 하나님께 드리며 너희 지체를 의의 무기로 하나님께 드리라”(13) 결국 우리 자신을 하나님께 드리라는 것입니다. 매우 단순하고 쉬운 답이지만 어찌보면 가장 어려운 답이기도 합니다. 많은 믿음의 사람들이 이 문제에 대한 답을 알았지만 실제로 온전히 드려지는 삶을 산 자는 그리 많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바울의 경우는 이러한 노력이 매우 돋보이는 사도이며, 전도자입니다. 그는 빌립보 성도들에게 고백하기를 자신의 가진 배경과 세상에서의 능력을 포함한 자랑할 만한 모든 것들에 대해서 스스로 배설물로 여겼습니다(빌3:5-9). 그는 자신을 온전히 버렸습니다. 갈라디아 성도들에게 했던 고백은 더욱 구체적입니다. 그는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갈2:20)라고 고백합니다.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이 신실한 삶을 위해 많은 노력을 합니다. 뿐만 아니라 교회에서도 다양한 프로그램을 통해서 신실한 삶을 살 수 있도록 다양한 훈련을 합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의 결론은 하나입니다. 그것은 자신을 온전히 주님을 드리는 것입니다. 나의 생각과 의지를 온전히 주님께 맡겨드리는 것입니다. 그러나 세상은 믿은 자들에게 그리 쉽게 그 자리를 내놓지 않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어려서부터 세상의 기준과 철학을 배워왔고, 성공의 기준과 삶의 지혜가 바로 자기 계발과 또한 명예를 얻는 일에 있다고 배워왔기 때문입니다. 물론 그 속에는 물질, 즉 돈도 포함이 됩니다. 예수님의 제자가 되겠다고 찾아왔던 부자 청년을 보십시오. 그는 예수님의 단 한 마디에 예수님의 제자가 되기를 포기하고 그분의 곁을 떠납니다. “네게 있는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나눠 주라”(눅18:22) 이 질문은 오늘 우리에게 주어진 질문입니다. 만일ㄹ 우리가 주님께 온전히 드린바 된다면 더 이상 죄가 우리를 주장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은혜 아래 살게 된다는 바울의 권면에 귀를 기울이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