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례의 표를 받은 것(롬4:9-12)
9 그런즉 이 복이 할례자에게냐 혹은 무할례자에게도냐 무릇 우리가 말하기를 아브라함에게는 그 믿음이 의로 여겨졌다 하노라
10 그런즉 그것이 어떻게 여겨졌느냐 할례시냐 무할례시냐 할례시가 아니요 무할례시니라
11 그가 할례의 표를 받은 것은 무할례시에 믿음으로 된 의를 인친 것이니 이는 무할례자로서 믿는 모든 자의 조상이 되어 그들도 의로 여기심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12 또한 할례자의 조상이 되었나니 곧 할례 받을 자에게뿐 아니라 우리 조상 아브라함이 무할례시에 가졌던 믿음의 자취를 따르는 자들에게도 그러하니라
초대교회에서 할례의 문제는 매우 중요한 논쟁의 대상이었습니다. 초대교인들의 대부분은 유대인이었고 그들은 율법을 여전히 지키고 있었기 때문에 과연 율법을 계속 지켜야 하는지의 문제를 두고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실제로 유대인들 사이에 “모세의 법대로 할례를 받지 아니하면 능히 구원을 얻지 못한다”(행15:1)는 주장이 있었고, 바울과 바나바는 이 문제의 해결을 위해 예루살렘교회를 개최하고, 베드로의 주장으로 율법의 멍에를 이방인들에게 지우는 것이 부당하다고 주장하였으며(행15:10), 이 회의의 의장인 야고보는 “우상의 더러운 거소가 음행과 목매어 죽인 것과 피를 멀리하라”(행15:20)는 결론을 내림으로서 이방인들이 할례를 받아야 할 필요는 없는 것으로 결정하였습니다.
바울이 예루살렘을 직접 방문했던 당사자로서 할례 문제에 대한 결론을 내리는 것은 매우 당연합니다. 그는 할례의 시작이 되었던 아브라함을 예로 들며 할례의 목적과 의미가 무엇인지에 대하여 일깨우려 하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이 할례를 받았던 시점은 언제였습니까? 아니 아브라함이 의롭다고 인정을 받은 때가 할례를 받은 이후입니까? 아니면 할례를 받기 이전입니까?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의롭다 함을 얻은 이후 14년이 지나서 할례를 받았습니다(창15:1-6;17:9-27). 이는 곧 아브라함이 할례가 아니라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얻었다는 증거이기도 합니다.
사실 처음부터 하나님은 할례 의식 그 자체를 중요하게 여기셨다고 볼 수 없습니다. 율법이 주어진 이후 처음부터 하나님은 “마음에 할례를 행하라”(신10:16)고 말씀하셨을 뿐만 아니라 예레미야를 통해서도 “스스로 할례를 행하여 너희 마음 가죽을 베라”(렘4:4)고 말씀하신 바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처럼 할례가 주는 상징적 의미를 잊고 외적인 행위 자체가 자신들을 특별한 백성으로 여기신다고 믿고 그것을 전통으로, 또한 의롭게 만드는 수단으로 사용해 왔던 것입니다. 그러한 관습, 즉 오랜 고정관념들은 그들을 지배해 왔고, 복음이 들어 온 이후에도 이러한 의식이 그들의 마음 안에서 떠나질 않았습니다. 심지어 이방인 문회의 중심이라고 할 수 있었던 로마에 있는 그리스도인들조차도 할례의 문제를 두고 고민을 하고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이 할례의 문제는 오늘날 세례의 문제와 연관하여 설명할 수 있는 것이기도 합니다. 어떤 이들은 세례를 받아야 구원을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는 곧 할례라는 의식 자체가 그들의 구원을 확실하게 만들어 줄 수 있다고 믿는 것과 같습니다. 물론 오늘날 예수 그리스도를 개인의 구주로 영접한 자들은 세례를 받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스스로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표로 할례를 받는 것과 같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가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증거로 세례를 받는 것은 매우 당연한 것이기 때문입니다(벧전3:21). 그러나 우리가 반드시 기억해야 하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세례, 그 자체가 구원의 증거가 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자신이 구원받은 사실에 대한 간증의 행위로서 행해지는 의식이라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믿는 자들에게 중요한 것은 마음으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처음부터 하나님께서 요구하신 것이기도 합니다. 종교적 사고를 지닌 자들은 의식과 행위를 통해서 자신들의 믿음을 확인시키려 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우리가 의롭다고 인정을 받는데 있어서 반드시 필요한 조건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오히려 일부 그릇된 사람들은 이것들을 이용하여 사람들을 정죄하는 수단으로 사용하기도 합니다. 구약의 할례나 신약의 세례는 매우 중요한 의식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 의식을 행하기 전에 먼저 우리의 마음으로부터 할례나 세례가 행해져야 한다는 사실을 언제나 기억해야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