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모로 사람을 취하지 아니하심이라(롬2:9-11)
9 악을 행하는 각 사람의 영에는 환난과 곤고가 있으리니 먼저는 유대인에게요 그리고 헬라인에게며
10 선을 행하는 각 사람에게는 영광과 존귀와 평강이 있으리니 먼저는 유대인에게요 그리고 헬라인에게라
11 이는 하나님께서 외모로 사람을 취하지 아니하심이라
외모로 사람을 보시지 않는다는 하나님의 마음은 다윗을 통해 이미 말씀하신 바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사울 왕을 버리기로 작정하셨고, 그를 대신할 지도자를 찾기 위해 사무엘이 이새의 집을 방문했을 때 “그의 용모와 키를 보지 말라 내가 이미 그를 버렸노라 내가 보는 것은 사람과 같지 아니하니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삼상16:7)고 말씀하십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관심은 오직 그의 중심, 즉 마음에 있습니다. 그것은 그리스도인들에게 주어진 명령이기도 합니다. 예수님은 “외모로 판단하지 말고 공의롭게 판단하라”(요7:24)고 말씀하신 바가 있습니다. 이는 곧 하나님도 외모로 사람을 판단하시지 않지만 그리스도인들도 외모로 사람을 판단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는 것이기도 합니다.
바울을 환난과 곤고가 있게 될 자에 대하여 “악을 행하는 각 사람의 영”이라는 표현을 사용하였습니다. 이 말씀을 그대로 받아들이게 된다면 마치 사람의 영이 환난과 곤고를 당하게 되는 것처럼 들릴 수도 있습니다. KJV는 이 표현을 분명하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every soul of man” 각 사람의 혼 즉 마음을 말하는 것입니다. 물론 대다수의 많은 이들이 영과 혼을 분리해서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논쟁을 떠나서 바울이 말하고자 하는 것은 악을 행하는 자는 환난과 곤고의 상태에 이르게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바울은 악을 행하는 자와 선을 행하는 자를 비교하면서 악을 행하는 자에게는 환난과 곤고가, 선을 행하는 자에게는 영광과 존귀와 평강이 있게 될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어떤 이들은 여기서 말하는 선과 악이 영적인 것이라고 이해합니다. 그래서 이는 믿는 자와 믿지 않는 자로 구분하려 합니다. 그러나 이 글의 수신자가 로마에 있는 성도들에게 쓰였다는 사실을 기억해야만 합니다. 디시 말하면 이 말씀은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주어진 것입니다. 어떤 이들은 자신이 믿음을 가졌다는 이유로 스스로 의미이라고 자부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매우 위험한 생각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거듭난 것으로 그쳐서는 안 됩니다. 그들을 선을 행할 필요가 잇는 자들입니다.
유대인들은 선민의식 속에 사로잡혀 있었던 자들입니다. 그들은 스스로 자신들이 하나님의 특별한 은총 속에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 까닭에 그들은 이방인들과는 다르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러한 생각에 대해서 바울은 분명하게 선포하고 있습니다. 선과 악을 행하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을 구분하지 않고 그들이 행한 대로 보응을 받게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지금도 여전히 유대인들은 자신들이 선민일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뿐만 아니라 그리스도인들조차도 유대인들은 특별한 민족일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까닭에 장차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과 관련하여 유대인들을 통해 그 표적을 보여주실 것이라고 확신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최소한 바울의 가르침을 통해서 알 수 있는 것은 하나님께서 유대인과 헬라인(이방인)을 구분하지 않을 것이며, 또한 그들을 특별한 민족으로 취급하시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다만 유대인들이 먼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으며, 나중에 헬라인(이방인)이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하나님의 분노와 진노를 피할 수 있는 것이 아니며, 또한 영광과 존귀와 편강을 얻는데 장애물이 되는 것도 아닙니다.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그들의 행한대로 장차 보응을 받게 될 것입니다. 그것은 성경이 말하는 분명한 원칙입니다.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둘 것입니다(갈6:7). 만일 이 원칙을 인정하지 않는 자는 스스로 속이는 자들이라고 경고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차별이 없으신 분입니다. 오직 그들의 외모를 보지 않으시고 오직 행한대로 심판하시는 하나님의 속성을 이해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