⑧ 초청을 하라

조회 수 3551 추천 수 0 2010.06.07 16:42:57

초청은 한다는 것은 일반적으로 설교하기 전에 설교의 내용으로의 초청과 설교를 마친 후, 구원과 헌신에의 초청으로 분류하여 설명할 수 있습니다. 이 초청은 설교자가 그날의 설교를 얼마나 효과적으로 마쳤는지를 결정하는 중요한 기준이 될 수 있습니다. 물론 이 초청을 형식을 거치지 않고 진행하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어떠한 형태이든지 초청은 필요합니다.

그날 진행될 설교에 초청하는 것은 예배의 진행과 함께 시작됩니다. 가령 찬송을 하고, 광고와 방문자들을 소개하고, 헌금을 하는 것과 같은 것들은 초청의 일부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한 것들은 설교가 시작되지는 않았지만 설교에 지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에 매우 지혜롭게 진행할 필요가 있는 것들입니다.

만일 설교로의 초청을 하면서 매끄럽지 못하고, 회중들의 마음을 불편하게 만드는 일이 발생된다면 설교의 진행은 혼란스러울 수 있습니다. 가령 찬송 인도자가 짧은 설교들을 지나치게 많이 한다든지, 광고를 하면서 심각한 문제들을 회중들에게 알리게 되면 회중들은 설교에 집중할 수 없게 될 것입니다. 예배에 앞서서 진행되어지는 모든 순서들은 설교에 초청하기 위해 준비될 수 있어야 합니다. 즉 설교에 집중할 수 있도록 순서를 만들고 진행할 필요가 있습니다.

설교가 끝나고 회중들을 초청하는 일도 중요한 일입니다. 전통적으로 근본주의 교회들은 구원초청을 했었는데, 오늘날에는 많이 사라진 것이 사실입니다. 그 이유는 구원초청을 위해서는 계속해서 설교를 듣고 회개하고 거듭난 회중들이 생겨야 하는데, 그러한 교회들을 찾아보기가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 교회 안에는 새로운 사람보다는 이미 구원받는 사람들이 설교를 듣고 있기 때문에 더 이상 구원 초청은 의미가 없습니다. 이러한 모습은 설교에도 많은 변화를 가져왔습니다. 설교자는 이미 거듭난 회중들을 대상으로 설교를 해야 하기 때문에 기초적인 구원설교보다는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삶을 강조하는 설교의 방식으로 바뀌어갔습니다. 그러한 과정에서 어느덧 구원초청은 교회에서 보기가 어려워지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어떠한 방식이든지 설교를 하고 난 후 초청은 필요합니다. 그날 전해진 설교의 내용을 듣고 회중들의 반응을 점검하는 중요한 시간이기 때문입니다. 비록 구원초청을 하기 어렵겠지만 설교를 듣고, 그 말씀에 순종하겠다는 마음을 표현하기 위해서 손을 들어 표현하거나 앞으로 나와서 무릎을 꿇고 기도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은 회중들로 하여금 더욱 헌신할 수 있도록 동기를 만들어 줄 것입니다.

현실적으로 초청을 자연스럽게 진행하는 교회는 많지 않습니다. 그리고 설교가 예배의 중심이 되는 교회도 점차 사라져 가는 추세입니다. 이미 음악이 예배를 주도하고, 회중들은 자신의 감정에 따라 예배를 평가합니다. 이 모든 것들이 사회적인 변화로 인한 것이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오히려 설교자들의 책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설교자들은 회중들로 하여금 더욱 더 헌신적인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해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