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나와 함께 갇힌 아리스다고와 바나바의 생질 마가와 (이 마가에 대하여 너희가 명을 받았으매 그가 이르거든 영접하라)
11 유스도라 하는 예수도 너희에게 문안하느니라 그들은 할례파이나 이들만은 하나님의 나라를 위하여 함께 역사하는 자들이니 이런 사람들이 나의 위로가 되었느니라
바울의 동역자 가운데는 다양한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조용하고 묵묵히 그의 사역을 도왔던 자들이 있었고, 또한 매우 큰 소란이 있었지만 끝까지 남아서 동역을 했었던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아리스다고는 데살로니가 출신의 마케도니아 사람으로 바울이 매우 힘들었던 시기마다 늘 곁에 있었던 자였습니다(행19:29,20:4,27:2). 그의 행적에 관하여는 많은 기록이 남아있지는 않지만 분명한 것은 바울이 로마의 감옥에 있을 때 함께 갇혀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는 바울의 동역자로서 묵묵히 그의 곁을 지키고 있었던 매우 신실한 종의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아리스다고에게 필요했던 것은 뛰어난 능력과 업적이 필요하지 않았습니다. 오직 그는 바울의 곁에 있는 것만으로도 바울에게 있어서 매우 위로가 되었던 자였습니다.
아리스다고와 함께 갇힌 자되었던 바나바의 누이의 아들 마가에 관하여는 특별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는 바나바와 바울이 안디옥 교회로부터 첫 번째 전도여행을 할 때 동행했던 자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중간에 이탈을 하게 되었고, 그 일로 인하여 두 번째 전도여행에는 바나바와 바울이 갈라서게 되는 원인을 제공했던 자였습니다(행15:37-39). 이는 바울에게 있어서 매우 좋지 못한 기억을 가져다주었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사실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울의 사역이 끝날 무렵까지 마가는 그에게 있어서 매우 중요한 동역자로 남아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는 바울과 함께 감옥에 갇히기도 했을 뿐만 아니라 바울의 마지막 옥중서신이라고 할 수 있는 디모데후서에서는 “네가 올 때에 마가를 데리고 오라 그가 나의 일에 유익하니라”(딤후4:11)고 말함으로서 마가가 그에게 얼마나 필요한 자인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바울과 함께 갇혀 있었던 또 한사람은 유스도인데, 그에 대하여는 예루살렘 교회에서 가룟 유다를 대신할 제자를 뽑았을 때의 유스도인지(행1:23), 아니면 고린도 지방에서 하나님의 경배하던 유스도인지(행18:7), 혹 이 둘이 동일 인물인지, 확실하게 알 수는 없지만 분명한 것은 그가 바울의 동역자로서 함께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위의 세 인물에 대하여 바울은 “그들은 할례파”라고 소개합니다. 바울은 이방인을 위한 사역을 했던 자로서 이방인들에게 할례를 요구할 수 없음을 가르쳤습니다. 그는 할례가 유대인들에게는 중요한 것일 수도 있겠지만 구원을 얻는데 크게 중요한 것이 아님을 말했습니다. 그가 강조하고자 했던 것은 육체적 할례가 아닌 마음의 할례였습니다(롬2:29).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할례자들에 속한 자들과 함께 동역하고 있었고, 그들에 대하여 “이들만은 하나님의 나라를 위하여 함께 역사하는 자들”이라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이는 곧 교리가 서로 다른 자들과 동역하는 모습으로 보여 질 수 있습니다. 이러한 모습은 바울의 사역에서 매우 자연스러운 모습입니다. 왜냐하면 바울은 어떠한 상황이든지 복음이 전해지는 것으로 만족했던 자였기 때문입니다.
바울이 함께 갇힌 자 되었던 이 세 사람에 대하여 “이런 사람들이 나의 위로가 되었느니라”고 말합니다. 그들의 처지는 언제나 같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복음에 대한 열정이 식지 않고, 끊임없이 성도들에게 서신을 통해서나, 아니면 권면을 통해서 복음을 전할 수 있었던 것은 그들 곁에 이처럼 동역자들이 함께 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좋은 동역자는 지친 사역자에게 힘을 가져다 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