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자는 일차적으로 자신이 전하고자 하는 내용들을 충분하게 해석하고 준비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러나 더욱 중요한 것은 그것을 듣는 자들이 어떠한 반응을 보일 것인가에 있기 때문에 전하는 자는 당연히 듣는 자들의 상태를 충분히 파악해 둘 필요가 있습니다. 어떤 이들은 자신이 준비한 말씀은 하나님의 말씀에서 벗어난 것이 없기 때문에 아무 상관이 없다고 생각해서 전하기도 하지만 그 일로 실족하는 예가 적지 않기 때문에 듣는 자들, 즉 회중들의 대해서도 알아야만 합니다. 다시 말해서 설교자는 성경말씀 못지않게 말씀을 듣는 회중들에 대해서도 해석할 필요가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설교를 준비함에 있어서 설교가 차지하는 비중이 예배의 한 부분인지, 아니면 예배가 설교를 위해 마련된 것인지에 대한 인식에 따라 설교의 형태도 크게 달라질 수 있습니다. 가령 가톨릭 예배의 형태를 따른 교회들은 자연스럽게 설교의 비중이 높지 않을 것입니다. 그래서 설교가 간결하고 단순한 내용으로 전달될 수밖에 없습니다. 반면 초대교회의 설교 형식을 따른 교회들은 의식들은 최대한 줄이고 대부분의 시간을 설교하는데 할애할 것입니다. 이러한 방식들은 전하는 자나 듣는 자들에게 다양한 반응들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설교를 의식 가운데 한 부분이라고 생각한다면 선포의 기능이 강조될 수밖에 없습니다. 이러한 설교는 회중들로 하여금 충분한 이해나 해석을 제공할 수 없기 때문에 이해가 부족한 자들에게 자칫 실족하게 만드는 원인이 되기도 합니다. 또한 설교자가 매우 권위적으로 보이기 때문에 오해를 낳기도 합니다. 반면 설교 중심의 예배에서 선포를 하게 된다면 회중들을 충분히 이해시킬 수는 있지만 설교자의 능력에 따라서 다소 지루해 질 수도 있기 때문에 잘 준비해야만 합니다.
결국 교회 안에서 설교를 하게 될 때에 어떤 방식이 옳은가에 대한 논쟁을 하는 것은 그리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설교자의 능력과 회중들의 환경을 고려해서 적절한 방식으로 정하는 것이 최상의 방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