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발과 아비가일(삼상25:1~13)

조회 수 3266 추천 수 0 2010.06.07 15:54:44

사무엘이 죽으매 온 이스라엘 사람이 함께 모여 그를 위해 애곡하며 라마에 있던 그의 집에 그를 묻으니 다윗이 일어나서 바란 광야로 내려가니라. 마온에 한 사람이 있었는데 그의 소유는 갈멜에 있었으며 그 사람이 심히 창대하여 양 삼천 마리와 염소 천 마리를 소유하였더라. 그가 갈멜에서 자기 양들의 털을 깎고 있었는데 이제 이 사람의 이름은 나발이요, 그의 아내의 이름은 아비가일이더라. 이 여인은 이해심도 많고 용모가 아름다우나 그 사람은 야비하고 행하는 일이 악하더라. 그는 갈렙의 집에 속하였더라. 다윗이 광야에서 나발이 자기 양들의 털을 깎는다는 것을 들으니라. 다윗이 청년 열 명을 보내며 그 청년들에게 이르되, 너희는 갈멜로 올라가서 나발에게 이르러 내 이름으로 그에게 문안하고 형통하게 사는 그 사람에게 이같이 말하기를, 네게 평강이 있으라. 네 집에도 평강이 있으라. 네게 있는 모든 것에도 평강이 있으라, 하라. 네게 양털 깎는 자들이 있다는 것을 이제 내가 들었노라. 이제 네 목자들이 우리와 함께 있었으나 우리가 그들을 해치지 아니하였고 그들이 갈멜에 있는 동안에 잃어버린 것이 그들에게 하나도 없었으니 네 청년들에게 물으면 그들이 네게 알려 주리라. 그런즉 이 청년들이 네 눈에 호의를 입게 하라. 우리가 좋은 날에 오느니라. 그런즉 네 손에 닿는 것이 무엇이든지 네 종들과 네 아들 다윗에게 주기를 원하노라, 하라. 다윗의 청년들이 가서 다윗의 이름으로 나발에게 그 모든 말대로 말하고 멈추니라. 나발이 다윗의 종들에게 응답하여 이르되, 다윗이 누구냐? 이새의 아들이 누구냐? 요즘 각각 자기 주인에게서 도망치는 종들이 많도다. 이러할진대 내가 내 빵과 물과 내 양털 깎는 자를 위하여 잡은 고기를 가져다가 어디로부터 왔는지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에게 주겠느냐? 하니라. 이에 다윗의 청년들이 자기들의 길을 돌이켜 다시 가서 돌아와 그 모든 말들을 그에게 고하매 다윗이 자기 사람들에게 이르되, 너희는 각각 자기 칼을 차라, 하니 그들이 각각 자기 칼을 차니라. 다윗도 자기 칼을 차고 거기서 사백 명가량은 다윗을 따라 올라가고 이백 명은 물건들 옆에 머무니라. (삼상25:1~13)

다윗의 시대에 나발이라는 인물은 야비하고 악한 자로 기록되어 있으며, 그에 반하여 부인이었던 아비가일은 이해심도 많고 용모가 아름다운 여인으로 소개되고 있습니다. 그것은 분명한 결론에 해당되는 이야기이지만 당시의 시대상을 들여다보고, 또한 현대인들의 생활상을 들여다보면 많은 사람들이 나발과 같은 인생을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그는 분명히 야비하고 악한 자이지만 당시의 상황으로 비춰볼 때 자신의 말과 행동이 결코 악하다고 생각하지 않고 있음이 분명해 보이기 때문입니다.

다윗은 사울로부터 쫓겨나서 이제는 광야에서 자신을 따르는 무리들과 더불어 유랑하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그를 따르는 무리들이야 다윗을 장차 하나님께서 그를 세우실 때 그들의 왕이 될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었겠지만, 대부분의 백성들은 사울을 배반하고, 원수가 되었을 것이라고 생각했음이 분명합니다. 왜냐하면 그 당시의 백성들은 다윗의 억울함을 기억하기보다는 그가 사울의 사위이지만 대적을 하는 자로 인식되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나발의 말에서 그 당시 백성들이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그는 다윗의 심부름으로 온 청년들에게 “다윗이 누구냐? 이새의 아들이 누구냐? 요즘 각각 자기 주인에게서 도망치는 종들이 많도다. 이러할진대 내가 내 빵과 물과 내 양털 깎는 자를 위하여 잡은 고기를 가져다가 어디로부터 왔는지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에게 주겠느냐?”라고 말하면서 다윗의 제안을 거절합니다. 우리가 여기에서 주목해야 하는 것은 과연 나발이 다윗을 알지 못하고 있었느냐는 사실입니다. 나발은 지금 거짓말을 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갈렙의 집에 속한, 즉 다윗과 같은 유다지파에 속한 자였기 때문입니다. 그는 실제로 사울보다는 다윗과 더욱 가까운 인척관계를 가지고 있는 자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다윗을 모른다고 거짓말을 하고 있습니다.

나발이 이처럼 다윗을 무시한 것은 지역적인 특징과도 깊은 관계가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가 지금 목축을 하고 있는 갈멜이라는 지역은 원래 사울이 아말렉을 물리치고 자신을 위해 기념비를 세웠던 지역으로 사울에게 매우 인지도가 높은 지역이었습니다. 그 까닭에 비록 다윗에 대하여 잘 알고는 있었지만 나발은 사울의 편에 서있었던 것입니다. 그는 어찌 보면 사울과의 신뢰관계를 지속하고 싶은 마음이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그의 행동은 다윗의 분노를 사게됩니다.

본래 양털을 깍는 날은 농부가 추수하는 날과 같아서 잔치를 합니다. 다윗은 이러한 상황을 알고 청년들을 보냈던 것인데, 나발은 거절했고, 다윗은 당장이라고 나발을 죽이려 합니다. 나발의 단순한 판단에 다윗은 분노하였고, 나발은 죽음의 위험에 놓이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이 사건을 통하여 배울 수 있는 것은 결코 나발의 어리석음 뿐만이 아니라 다윗의 분노에도 있습니다.

다윗은 이미 사울을 죽일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용서하고, 참았던 자입니다. 그러나 지금은 금방이라도 나발을 죽일 태세입니다. 그것은 아마도 자신을 받아들이지 않은 나발의 무례함 때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다윗도 나발이 결코 자신을 모르고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은 거절을 당하고 있습니다. 한 때는 이스라엘에서 가장 큰 인기가 있었던 자신이 지금은 무시를 당하고 있다는 사실이 너무도 억울했을 수도 있습니다. 그는 지금 무시당하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보면서 분노의 감정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나발의 모습만을 악하다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지금 분노로 가득한 다윗의 감정도 결코 의로운 것이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그는 지금 광야에서 지쳐있는 상태에 놓여 있습니다. 그리고 언젠가 하나님께서 자신을 일으켜 주기만을 기다리고 있지만 그 시기를 아무도 알 수 없는 상황입니다. 나발의 태도는 그를 격분하게 만들었습니다. 이미 지쳐있는 그로서는 더욱 참을 수 없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행동이 의로운 것인지, 아니면 악한 것인지를 판단하기에 앞서서 칼을 들고 나발을 죽이기 위해 달려가려 하고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깊은 침체에 빠져 있거나 지쳐 있을 때, 하나님의 뜻을 구하기보다는 오히려 자신의 감정을 따라 어리석은 행동을 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한 행동은 그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꾸어 놓은 경우가 허다합니다. 신실한 그리스도인이라면 어렵고 힘든 시간들을 보낼 때마다 더욱 침착하고 냉정하게 하나님의 뜻을 구할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결코 믿음의 사람들이 자신의 의지로 분별없는 삶을 살아가기를 원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다윗이 순간적으로 분노의 감정을 가질 때 위기의 순간을 맞는 것 같이 그리스도인들도 언제나 하나님 없는 생각과 행동을 하게 될 때에 믿음의 삶을 사는데 위기의 순간이 올 수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만 하겠습니다.

다윗의 제안을 거절한 나발은 철저히 하나님이 없는 사람들의 전형적인 모습을 보여줍니다. 그는 분명히 다윗이 전쟁에서 얼마나 공을 세웠으며, 심지어 갈렙의 집에 속한 유다지파로서 사무엘로부터 기름부음을 받았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윗이 사울의 대적이 되고 있다는 사실 때문에 제안을 거절합니다. 어찌 보면 한편으로는 나발의 모습이 세상적으로는 더욱 현명해 보일 수도 있습니다. 그가 만일 다윗을 받아들이게 된다면 사울로부터 핍박을 당하게 될 것은 분명하기 때문입니다. 그는 지역적으로나 현실적으로 다윗의 제안을 받아들이기가 쉽지는 않은 상태였습니다. 그는 다윗과 사울을 택해야 하는 시점에서 결국은 사울을 택했습니다. 그러나 그의 선택은 육신적으로는 탁월해 보일 수 있었겠지만 하나님 편에서 볼 때는 결코 현명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이미 하나님께서는 다윗의 편에서 일하시겠다는 사실을 백성들에게 보여주셨기 때문입니다. 다만 현재 다윗은 연단의 시간을 보내고 있을 뿐입니다.

우리가 세상에서 어떤 일에 대하여 결단해야 할 때 대부분은 현재의 상황만을 고려하여 결론을 내리려고 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대부분 실패하게 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일하시는 것은 우리의 생각과는 매우 다르기 때문입니다. 어떤 문제들에 대하여 결정하기 위해서는 먼저 하나님의 뜻을 먼저 알 수 있어야 합니다. 즉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마음으로 문제에 대한 답을 구할 수 있어야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세상적으로는 성공하지만 영적으로는 실패하게 되는 것을 봅니다. 그것은 우리의 눈에 보이는 것들이 전부일 것이라는 무지함 때문에 오는 결과입니다. 우리의 삶을 이끌어 가는 힘은 우리 자신에게서 오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아비가일을 통하여 다윗의 경솔한 판단을 막으십니다. 그녀는 다윗과 나발 사이에서 벌어지게 될 엄청난 일들을 목격하고는 자신이 앞장서서 이 일을 해결합니다. 그녀를 통하여 중보자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을 볼 수도 있으며, 또한 현명한 여인의 모습을 목격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그녀의 이름이 “나의 아버지는 기쁨이시다”라는 의미를 가지듯이 하나님께서는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언제나 화평하고, 기뻐하며, 행복한 삶을 누리시기를 원하신다는 사실을 기억해야만 하겠습니다.

결과적으로 다윗은 나발을 죽이겠다는 계획을 거두고, 나발은 사건의 전말을 듣고 열흘 후에 죽게 되고(삼상25:37-38), 아비가일은 다윗의 아내가 됩니다(삼상25:42).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다윗의 편에서 일하셨습니다. 그러나 다윗의 행동이 언제나 의로웠던 것만은 아닙니다. 때로는 그의 행동을 막으시기도 하셨고, 범죄 한 이 후에 깨닫게 하시기도 하셨습니다. 중요한 사실은 하나님께서 언제나 다윗과 함께 하시듯이 오늘날 그리스도인 된 우리의 삶 가운데서도 언제나 함께 하신다는 사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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