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밤에 {주}의 말씀이 나단에게 임하니라. 이르시되, 가서 내 종 다윗에게 고하기를, {주}가 이같이 말하노라. 네가 나를 위해 내가 거할 집을 건축하겠느냐? 내가 이스라엘 자손을 이집트에서 데리고 올라온 때부터 심지어 이 날까지 아무 집에도 거하지 아니하고 장막과 성막 안에서 걸었나니 내가 온 이스라엘 자손과 함께 걸은 모든 곳에서 내가 내 백성 이스라엘을 먹이라고 명령한 이스라엘 지파들 가운데 어느 지파에게 이르기를, 너희가 어찌하여 나를 위해 백향목 집을 건축하지 아니하느냐, 하고 한 마디라도 말하였느냐? 그런즉 이제 너는 내 종 다윗에게 이같이 이르라. 만군의 {주}가 이같이 말하노라. 내가 너를 양 우리에서 곧 양들을 따르는 일에서 취하여 내 백성 즉 이스라엘을 다스릴 치리자로 삼았고 네가 어디를 가든지 내가 너와 함께하여 네 모든 원수를 네 눈앞에서 멸하였으며 땅에 있는 위대한 자들의 이름 같은 위대한 이름을 네게 만들어 주었노라. 또한 내가 내 백성 이스라엘을 위해 한 처소를 정하고 그들을 심으리니 이로써 그들이 자기 처소에 거하며 다시는 움직이지 아니하리라. 또 사악한 자손들이 다시는 예전과 같이 또 전에 내가 재판관들에게 명령하여 내 백성 이스라엘을 다스리게 하고 또 너로 하여금 네 모든 원수로부터 벗어나 안식하게 하던 때 이후와 같이 그들을 괴롭히지 못하리라. 또한 {주}가 네게 그가 너를 위해 집을 세우리라고 말하노라(사무엘하7:4-11).
다윗은 분명히 위대한 왕이었습니다. 그는 하나님뿐만 아니라 백성들에게도 매우 존경받는 왕이었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한 가지 사실은 그도 여전히 죄 가운데 놓여있는 사람이었다는 점입니다. 그가 하나님으로부터 수많은 기도의 응답을 받아 온 것이 사실이지만 어쩔 수 없이 죄를 짓고 있었고, 그때마다 하나님은 대언자를 보내어 그를 책망하고, 바로 잡아 주었습니다. 그 때 보내진 대언자가 바로 나단이었습니다.
나단이라는 이름의 뜻은 "양심" 혹은 "주는 자"입니다. 그는 다윗 시대에 궁중 대언자로서 하나님의 뜻을 가장 분명하게 전달했을 뿐만 아니라 때로는 죽음의 위험을 무릅쓰고 다윗으로 하여금 올바른 결단을 할 수 있도록 도왔던 자입니다. 그는 오늘날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자들이 어떠한 자세로 임해야 하는지를 보여주는 모범적인 대언자입니다.
1. 다윗의 성전건축 계획을 금지시킴(삼하7:4-17)
다윗은 주변 국가들을 점령하고 나라가 안정되자 성전건축에 대한 계획을 세웁니다. 그 이유는 자신이 백향목으로 만든 화려한 궁에서 생활하고 있는데(삼하 7:2), 하나님의 법궤는 여전히 장막, 즉 천막으로 지어진 건물 안에 모셔져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믿음의 사람으로서 다윗의 양심을 크게 상하게 만드는 일이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곁에서 언제나 피난처가 되셨던 그분에 대하여 온 힘을 다하여 영광스럽게 하고 싶었습니다.
이러한 생각에 대하여 나단의 생각도 같았습니다. 그도 역시 성전을 짓는 것이 옳은 결정이라고 생각을 하였고, “{주}께서 왕과 함께 계시오니 가셔서 왕의 마음속에 있는 바를 다 행하소서”(삼하 7:3)라고 권합니다.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그분께 영광을 돌릴 수 있는 일들은 당연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뜻밖에도 하나님께서는 나단을 통하여 그 모든 계획들을 중지할 것을 명령하십니다. 그는 또 다시 말하기 어려운 문제를 다윗에게 고해야만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성전건축보다 이스라엘 왕국의 번영을 원하셨고, 성전건축은 다윗의 아들 솔로몬을 통하여 완성될 것이라는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그 이유는 다윗이 피를 많이 흘렸고, 큰 싸움을 많이 하였기 때문에 중단시키신 것입니다(대상22:8). 대언자의 입장에서 왕의 뜻을 꺽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것이 객관적으로 지지를 받을 수 있는 것이라면 더욱 어려운 것입니다. 그러나 나단은 결국 하나님의 뜻을 전달하였고, 다윗은 그 뜻을 받아들여 성전건축을 자신의 아들인 솔로몬에게 위임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뜻과 계획을 바르게 전하려는 자와 그 말씀을 받아들이는 자의 자세가 어떠해야 하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만일 나단이 자신의 생각이나 신념들을 전하려 했다면 하나님의 뜻을 바르게 전달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생각을 뒤로 하고 오직 하나님의 말씀을 바르게 전하기 위해서 힘쓰고 있습니다. 그리고 다윗 역시 그의 뜻을 관철하기 보다는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 그분의 말씀을 따라서 순종하려는 마음을 가지고 있었기에 모든 것을 하나님의 계획대로 진행시킬 수 있었습니다.
2. 우리아의 아내를 간통 하였을 때 다윗을 꾸짖었다(삼하12:1-12).
다윗과 나단의 관계를 설명하는데 있어서 가장 돋보였던 장면은 역시 우리야의 아내였던 밧세바의 문제를 두고 벌어졌던 사건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다윗은 그의 생애에 매우 뼈아픈 경험을 하게 되는데 밧세바를 강간했던 사건입니다. 그는 거기서 멈추지 않고 밧세바의 남편이었던 우리야까지 계획적으로 죽이면서 살인까지 저지르는 만행을 저질렀던 자입니다. 그런 중에도 그는 죄책감 없이 시간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이 때 하나님께서는 나단을 통하여 그의 죄를 들추어내셨습니다.
한 마을에 많은 양떼를 가지고 있는 부자와 양 한 마리를 딸같이 기르는 가난한 사람이 살고 있었는데, 부잣집에 손님이 왔을때 가난한 사람의 양을 빼앗아다가 손님을 대접했다는 비유를 들며 다윗의 죄를 책망합니다. 나단의 책망은 어찌보면 왕에 대한 도전으로 받아들여질 수도 있는 것이었습니다. 질제로 이전에 많은 대언자들이 왕 앞에서 바른 말을 하였다가 죽은 일도 많았기 때문에 그의 선포는 목숨을 건 행동이었습니다. 오늘날 많은 전도자들이 사람들의 눈치를 보며 하나님의 뜻을 바르게 행하지 못하고 잇다는 현실을 생각하면 그의 행동은 너무도 모범적인 사역자의 모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그가 왕을 상대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한 사람의 왕이 어떠한 결단을 하는가에 따라 한 나라의 운명이 달라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나단이 다윗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바르게 전하고 그를 회개시켰던 것은 단순히 한 사람을 위한 것이 아니라 한 나라를 구해내는 일과 같은 것입니다. 결국 이 일 후에 다윗은 회개하였고,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뜻을 따라 이스라엘 왕국을 통치해 가셨습니다.
그러나 여기에서 더욱 주목받는 것은 다윗의 회개입니다. 그는 나단의 말을 들은 후 “내가 {주}께 죄를 지었노라”(삼하12:13)라고 고백합니다. 이후로 그는 침상이 마를 날이 없을 정도로 통곡하며 기도합니다. 그는 왕으로서 자신의 체면이나 영광을 뒤로하고 오히려 한 사람의 죄인으로서 하나님께 용서를 구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진정한 회개가 무엇인지를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이러한 회개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후손들이 서로에게 칼을 들이대는 상황을 막을 수는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죄에 대한 대가는 반드시 지불하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물론 신약 시대를 사는 그리스도인들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 대가를 지불해 주셨지만 죄에 대한 심판이 반드시 있게 될 것이라는 약속의 말씀은 여전히 살아있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3. 다윗의 후계자를 세움(대상22:9)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다윗의 뒤를 이은 솔로몬이 왕위를 물려받는데 아무런 문제가 없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사실은 솔로몬이 왕이 되는데는 많은 문제들을 안고 있었습니다. 그는 본처의 소생도 아니며, 위로는 형들이 있었고, 또한 당시 권력의 핵심부에 있었던 요압과 제사장 아비아달과 같은 자들이 아도니야를 추종하고 있었기 때문에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나단은 이 일을 알고 다윗에게 이 사실을 알리고 본래 약속했던 대로 솔로몬을 다윗의 뒤를 이어 왕으로 세우도록 하였습니다. 나단의 이러한 행동은 자칫 아도니야의 추종자들로부터 생명의 위협을 받을 수도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생명의 위협을 무릅쓰고 하나님과의 약속을 이행하도록 다윗을 일깨웠습니다. 결국 다윗은 솔로몬을 후계자로
삼고 제사장 사독과 다윗의 용사들이 호위하여 왕으로 세우도록 하였습니다(1:38-39). 우리가 여기서 알아야 하는 것은 나단이 솔로몬을 왕으로 세우는 것이 목적이 아닌 하나님과의 약속을 실행하도록 촉구했다는 사실에 더욱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맡은 자들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어떤 목적을 가지고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고자 하는 바를 바르게 전하는 것입니다. 만일 사람이 목적을 가지고 전하게 된다면 그것은 자칫 자신의 생각과 신념을 앞세우는 결과를 낳고 말 것입니다. 전하는 자는 자신의 생각을 뒤로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앞세울 수 있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그것이 때로는 생명을 위협할지라도 담대하게 전할 수 있어야 합니다.
나단은 다윗의 시대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대언자로서의 인생을 살았습니다. 그는 많은 시간동안 어려운 결단을 요구하는 상황에 처했지만 두려움 없이 하나님의 뜻을 전달했습니다. 그의 이러한 모습은 결국 이스라엘의 역사에서 가장 위대한 왕을 세울 수 있었습니다. 오늘날과 같이 변개되고 변질된 것들이 진실인 것처럼 활동하고 있는 이 시대에 오직 순수한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전하고자 힘썼던 나단의 모습을 돌아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