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야 (왕상17:1~7)

조회 수 3358 추천 수 0 2010.06.07 15:43:08

길르앗 거주민 디셉 사람 엘리야가 아합에게 이르되, 내가 서서 섬기는 {주} 이스라엘의 하나님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노니 내 말이 있지 아니하면 이 몇 년 동안 이슬이나 비가 있지 아니하리라, 하니라. {주}의 말씀이 엘리야에게 임하니라, 이르시되,너는 여기를 떠나 동쪽으로 가서 요르단 앞 그릿 시냇가에 숨고 그 시냇물을 마시라. 내가 까마귀들에게 명령하여 거기서 너를 먹이게 하였느니라, 하시니라. 이에 그가 가서 {주}의 말씀대로 행하였으니 곧 그가 가서 요르단 앞 그릿 시내 곁에 거하였더라. 까마귀들이 아침에 빵과 고기를 그에게 가져오고 저녁에 빵과 고기를 가져왔으며 그가 그 시내의 물을 마셨는데 땅에 비가 내리지 아니하므로 얼마 뒤에 그 시내가 마르니라. (왕상17:1~7)

엘리야는 구약시대를 대표하는 대언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의 이름은『주(여호와)는 하나님이시다』라는 의미이며, 길르앗의 디셉 사람으로 북왕국 아합 왕과 아하시야 왕 시대에 걸쳐서 사역했습니다. 그는 아합 왕과 끝없이 대적하면서 살아계신 하나님의 모습을 가장 확실하게 보여주었던 대언자였습니다.

그의 사역의 시작은 아합 왕에게 경고를 하는 것으로 시작하였습니다. 그는 아합에게 수년동안 가뭄이 있게 될 것을 경고하면서 자신은 동쪽으로 가서 요르단 앞 그릿 시냇가에 숨고 그 시냇물마시고, 까마귀를 통하여 빵과 고기를 공급받고 생활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서 가뭄으로 인하여 물이 마르자 사르밧으로 내려가 과부의 집에 머물면서 가뭄이 끝날 때까지 머물게 되었습니다.

엘리야의 부르심은 처음부터 결코 편하거나 흥미로운 일은 아니었습니다. 그는 오히려 처음부터 목숨이 위태로운 상황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는 왕에게 경고를 함으로서 그의 몸을 피해야만 하는 상태가 되었고, 피해있는 동안에도 까마귀를 통해서 먹을 것을 공급받고, 가뭄 이후에는 결국 시냇물도 말라서 사르밧으로 내려가 가난한 과부의 집에 머무르는 신세가 되고 말았습니다. 그의 사역은 결코 호화스러운 것이 아니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엘리야가 베풍었던 농라운 능력과 기적들만을 기억합니다. 그렇습니다. 그는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놀라운 능력을 행했던 대언자였습니다. 그러나 그의 현실을 돌아보면 그가 결코 화려하거나 주변 사람들의 동경의 대상은 아니었습니다. 그는 도망자였고, 가난한 대언자에 불과한 자였습니다. 그러한 모습은 모든 사역자들이 반드시 명심해야 하는 부분입니다. 주님의 일을 한다는 것은 세상의 간점에서 볼 때 그리 매력적인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그것은 초라해 보일 수도 있는 것입니다.

사르밧으로 내려온 엘리야는 과부의 집으로 들어갑니다. 과부의 집에 도착한 엘리야는 빵을 기져오라고 명령하고, 과부는 자신과 아들이 마지막으로 먹고 죽으려 했던 방의 재료인 가루와 기름으로 엘리야를 대접합니다. 이일로 과부의 집은 주님께서 비를 땅 위에 내리는 날까지 그 통의 가루가 다하지 아니하고 그 병의 기름이 없어지지 않게 되는 놀라운 일이 일어나게 됩니다(왕상17:14). 여기서 끝이 아닙니다. 이일이 있고 난 후에 과부의 아들이 병으로 죽게 되는 일이 발생하게 되고, 엘리야는 그 아이 위에 몸을 세 번 펴서 엎드린 후 하나님께 기도하여 낫게 됩니다(왕상17:22). 이 일이 있은 후 과부는 “이제 당신은 하나님의 사람이시요, 당신의 입에 있는 {주}의 말씀은 진리인 줄 아나이다”(왕상17:24)라고 고백합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종을 통하여 많은 기적을 베풀어 주십니다. 그러나 그 기적의 목적은 단순히 전하는 자의 권위를 세우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 일들을 통하여 그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말씀이 진리라는 것을 일깨우려 하는데 목적이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그분의 말씀을 깨닫게 하는데 목적이 있다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눈 앞에 벌어지는 표적들에 관심을 갖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관심은 그분의 말씀을 바르게 알고 깨닫게 하려는데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만 합니다.

사르밧에서 3년을 지낸 후에 엘리야는 가뭄이 끝나게 될 것을 아합에게 말하기 위해 사마리야로 내려가는 궁내 대신 오바댜를 만나고 그에게 아합을 만날 것을 청합니다. 아합을 만난 엘리야는 바알과 아세라 신과의 대결을 갈멜산에서 갖기로 합니다. 결국 바알의 대언자 450명과 아세라 대언자 400명, 합이 850명의 대언자들과 불이 내려오기를 기도합니다. 그들은 기도에 응답이 없자 더 큰 소리로 부르짖고, 심지어 창과 칼로 자해하기도 했지만 결국 저녁 때까지 아무런 응답이 없었습니다.

이에 대응하는 엘리야는 주위의 모든 백성들을 모이게 하고 {주}의 이름으로 그 돌들로 제단을 쌓고 또 제단 주위에 이 세아 분량의 씨를 담을 만한 크기의 도랑을 만들며 또 나무를 정돈하고 소를 여러 조각으로 잘라 나무 위에 놓고 이르되, 통 넷에 물을 채워다가 태우는 희생물과 나무 위에 세 번에 걸쳐 부으라 하니 물이 제단 주위에 돌아가며 흐르게 되었고, 도랑에도 물을 가득 채웠습니다(왕상18:32~35). 그리고 기도하자 불이 내려와서 태우는 희생물과 나무와 돌들과 흙을 태우고 또 도랑의 물을 핥았고, 온 백성이 그것을 보고는 얼굴을 대고 엎드려 이르되, {주} 그분은 하나님이시로다(왕상18:39)라고 외쳤습니다. 엘리야는 백성들에게 바알과 아세라 대언자들을 죽이라고 명령하였고, 백성들을 그들을 기손 시내로 데려다가 모두 죽였습니다. 이 일이 있은 후 비가 내렸으며, 모든 것은 엘리야의 말대로 응답되었습니다.

이제 모든 것은 정상적으로 회복된 것처럼 생각되었습니다. 엘리야는 하나님의 놀라운 기적을 백성들에게 보였고, 누가보아도 완벽한 승리였습니다. 그러나 엘리야가 바알과 아세라 대언자를 죽였다는 소식을 들은 이세벨은 사람들 보내어 엘리야를 죽이려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엘리야는 또 다시 도망자가 되어 브엘세바로 내려가게 되었습니다(왕상 19:1-3). 그곳에서 다시 남쪽으로 하룻길을 걸어 로뎀나무가 있는 곳에서 엘리야는 통곡의 기도를 합니다. 그는 자신이 차라리 죽었으면 좋겠다는 기도를 하고 잠이 듭니다. 이후에 천사들이 와서 두 번에 걸쳐 잠든 엘리야를 깨우고 숯불에 구운 빵과 물을 먹고 마시게 합니다(왕상19:6,7). 다시 힘을 얻은 엘리야는 40일을 걸어서 호렙산의 한 동굴에 있으면서 자신만 남았다는 절망적인 기도를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스라엘 안에 칠천명을 남겨 두었다고 하십니다.

엘리야의 상태는 매우 절망적인 것처럼 보입니다. 그는 매우 외롭고 지쳐있는 상태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결코 그가 외롭지 않다고 하십니다. 한 때 승리가 그에게 순조로운 사역을 가져다 줄 것으로 생각했지만 그것은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를 더욱 위협하는 것이 되었습니다. 그는 모든 순간 최선을 다하여 사역을 하고 있지만 여전히 힘겹고 어려운 순간들을 걸어가고 있을 뿐입니다. 이것은 주님의 일을 맡은 자들이라면 누구나 감당해야만 하는 길입니다. 그는 이제 후계자를 세우라는 명령을 받습니다. 그는 열 두 겨리의 소로 밭을 갈고 있는 엘리사를 만나 자신의 겉옷을 던져 따라오게 하였고, 엘리사는 이후로 엘리야를 따라다니며 그의 수종을 들었습니다.

아합과의 악연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습니다. 나봇의 포도원을 탐했던 아합은 이세벨의 계략으로 결국 나봇을 죽이고 그의 포도원을 차지합니다. 이일 후에 엘리야는 아합과 그의 아내 이세벨이 그들이 행했던 대로 죽게 될 것을 예언(왕상 21:1-26)하게 되었고, 그대로 되었습니다. 비록 아합이 자신의 잘못을 뉘우침으로 재앙은 면했지만 결국 그의 아들의 시대에 그의 가족은 완전히 멸망하고 말았습니다.

아하시야 왕 때에도 그의 사역을 계속되었고(왕하1:1-4), 엘리사와 함께 사역을 계속했던 그는 마지막에 엘리사에게 구할 것을 말하라고 하였고, 엘리사는 “당신의 영이 두 배나 내 위에 있기를 원하나이다”(왕하2:9)라고 말하였고, 엘리야는 불 수레와 불 말들이 나타나 회오리 바람을 타고 하늘로 올라갑니다(왕하2:11). 그리고 엘리사는 엘리야의 겉옷을 취하고 그의 사역의 길을 걷습니다.

엘리야의 사역은 결코 쉽지 않은 것이었습니다. 오히려 많은 고통과 힘겨운 시간들을 보내야 했습니다. 그러나 그가 위대한 것은 어려움 속에서도 오직 하나님의 말씀을 담대히 전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위대한 주님의 종이 된다는 것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결코 사람들이 생각하는 세상의 기준에 있지 않습니다. 오직 하루하루를 얼마나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살아가고 있는가에 있습니다. 엘리야를 통하여 자신의 모습을 돌아보는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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