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로보암(왕상11:26~40)

조회 수 3216 추천 수 0 2010.06.07 15:40:44

솔로몬의 신하로서 스레다의 에브랏 사람인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이 또한 손을 들어 왕을 대적하였는데 그의 어머니의 이름은 스루아요, 그녀는 과부 여인이더라. 그가 손을 들어 왕을 대적한 까닭은 이러하니라. 솔로몬이 밀로를 건축하고 자기 아버지 다윗의 도시의 무너진 곳을 보수하였는데 그때에 이 사람 여로보암은 강한 용사더라. 이 청년이 부지런한 것을 솔로몬이 보고 그를 치리자로 삼아 요셉의 집 책무를 맡게 하였더라. 여로보암이 예루살렘에서 나가던 그때에 실로 사람 대언자 아히야가 길에서 그를 만났는데 아히야는 새 의복을 입었고 그 두 사람만 들에 있었더라. 아히야가 자기 위에 걸친 그 새 옷을 잡아 열두 조각으로 찢고 여로보암에게 이르되, 너는 열 조각을 취하라. {주} 곧 이스라엘의 하나님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느니라. 보라, 내가 왕국을 솔로몬의 손에서 빼앗아 찢어서 열 지파를 네게 주리라. (다만 그는 내 종 다윗을 위하여 그리고 이스라엘의 모든 지파 중에서 내가 택한 도시 예루살렘을 위하여 한 지파를 소유하리니) 이는 그들이 나를 버리고 시돈 사람들의 여신 아스다롯과 모압 족속의 신 그모스와 암몬 자손의 신 밀곰에게 경배하며 그의 아버지 다윗이 행한 것 같이 하지 아니하여 내 길들로 걷지 아니하고 내 눈에 올바른 일을 행하지 아니하며 내 법규와 내 법도를 지키지 아니하였기 때문이니라. 그러나 내가 택한 내 종 다윗이 내 명령과 내 법규를 지켰으므로 내가 그를 위하여 솔로몬의 생전에는 온 왕국을 그의 손에서 빼앗지 아니하고 그가 통치자가 되게 하려니와 내가 그의 아들의 손에서 왕국을 빼앗아 네게 주되 열 지파를 줄 것이요, 그의 아들에게는 내가 한 지파를 주어 내가 나를 위해 내 이름을 두려고 택한 도시 예루살렘에서 내 종 다윗에게 한 등불이 항상 내 앞에 있게 하리라. 내가 너를 취하리니 너는 네 혼이 원하는 모든 것에 따라 통치하여 이스라엘을 다스릴 왕이 될 것이로되 네가 만일 내가 네게 명령하는 모든 것에 귀를 기울이고 내 길들로 걸으며 내 눈앞에서 올바른 일을 행하여 내 종 다윗이 행한 것 같이 내 법규와 내 명령을 지키면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내가 다윗을 위하여 행한 것 같이 너를 위하여 견고한 집을 세우고 이스라엘을 네게 주리라. 내가 이것으로 인해 다윗의 씨를 괴롭게 할 터이나 영원토록 하지는 아니하리라, 하니라. 이러므로 솔로몬이 여로보암을 죽이려 하매 여로보암이 일어나 이집트로 도망하여 이집트 왕 시삭에게 이르러 솔로몬이 죽을 때까지 이집트에 있었더라. (왕상11:26~40)

여로보암이라는 이름의 뜻은 “백성이 많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의 이름에 걸맞게 그는 솔로몬 이후에 북쪽 이스라엘의 열 지파를 통치하는 왕이 되었습니다. 그는 에브라임 족속 스레다의 에브랏 사람인 느밧의 아들로서 솔로몬이 밀로를 건축하고 자기 아버지 다윗의 도시의 무너진 곳을 보수할 때 감독의 일을 맡았던 자입니다. 그는 매우 부지런한 자로서 솔로몬으로부터도 대단한 신임을 얻었던 자였습니다. 그러나 대언자 아히야를 만난 이후로 그의 인생은 놀라운 변화를 겪게 됩니다. 아히야는 그에게 열 지파를 소유하게 될 것이라는 예언을 했기 때문입니다. 이 말은 들은 솔로몬은 결국 여로보암을 죽이기로 결심하고, 여로보암은 이집트로 도망하여 솔로몬이 죽을 때까지 망명생활을 계속하고 있었습니다.

여로보암은 매우 성실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의 근면함은 왕을 포함하여 주변의 모든 사람들로부터도 인정을 받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의 계획 앞에서 평범하지 않은 인생을 경험해야만 했습니다. 그가 아히야로부터 예언의 말을 듣게 되었을 때 결국 그를 신뢰했던 솔로몬으로부터 생명의 위협을 받을 수밖에 없었고, 오랜 시간동안 은둔생활을 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어찌보면 이 모든 시련의 세월들은 그가 왕이 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절차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개인의 구주로 영접하기 전의 시간들과 이후의 시간들을 비교해보신 적이 있습니까? 우리는 자신의 의지와는 관계없이 힘겨운 시간들을 경험하고 있다는 사실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거듭난 그리스도인들을 죄와 싸워야 하고, 아직도 남아 있는 자신안의 정욕들을 몰아내기 위해 힘겨운 줄다리기를 계속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세상에서 정직하게 하나님의 말씀대로 산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오히려 우리가 소유하고 있었던 많은 것들을 잃을 수도 있습니다. 세상은 우리에게 대하여 적대적인 관계를 가지고 대할 것이며, 우리는 세상과 방어와 공격을 계속하면서 때로는 지치고, 때로는 깊은 침체 속에서 헤어나지 못합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이 있고 난 후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평범하지 않은 인생을 경험합니다. 모세는 광야에서 40년을 있어야 했고, 다윗도 사울을 피해 광야를 헤메고 다녔습니다. 엘리야도 아합의 눈을 피해 도망 다녔으며, 신약시대의 바울 역시 언제나 죽음의 위협을 느끼며 살아야만 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사람으로서 살아간다는 것은 결코 평범하지 않은 인생을 선택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우리를 행복하게 만들 수 있는 것은 장차 다가 올 세상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곳에서 우리는 이곳에서 당하는 모든 수고들에 대하여 충분하고 넉넉한 보상을 받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솔로몬이 죽은 후 여로보암은 다시 이스라엘로 돌아옵니다. 그리고 솔로몬의 아들 르호보암이 왕위에 오르게 되자 여로보암과 이스라엘 사람들은 지금까지 수많은 건축물들을 세우기 위해 수고했던 모든 멍에들로부터 짐을 벗게 해 달라고 요청합니다. 그러나 르호보암은 그들의 요구를 거절합니다. 그는 아버지 솔로몬 왕이 있었을 때의 신하였던 원로(노인)들의 권면을 무시하고 자신과 함께 자란 친구들의 말을 듣고 아버지보다 더욱 강력한 정치를 하겠다는 의사를 내보였습니다. 결국 이 일로 인하여 여로보암은 북쪽 열 지파의 지지를 받아 왕위에 오르고 나라는 두 개로 나누어지는 결과를 가져왔습니다(왕상12:1-20). 이 모든 일들이 르호보암의 어리석음으로부터 시작된 것이었지만 결국 하나님의 계획 속에 진행되고 있는 일이었습니다.

여로보암은 백성들로부터 지지를 얻었습니다. 그리고 그의 지도력은 분명히 이스라엘 백성에게는 매우 희망적인 것으로 보였습니다. 그는 백성들에게 지금까지의 모든 짐을 벗고, 행복하게 살도록 하는데 힘을 기울였을 것입니다. 그는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을 가졌지만 한 가지 해결할 수 없는 과제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것은 성전이 자신의 통치권 밖인 예루살렘이 있었다는 점입니다. 이것은 결국 많은 백성들에게 신앙적인 혼란을 가져다 줄 수밖에 없는 문제였습니다. 그는 극단의 방법을 동원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는 하나님 대신 금송아지 두 개를 만들어 하나는 북방 단에 두고, 다른 하나는 남쪽 벧엘에 두어 더 이상 예루살렘 성전을 가지 못하게 하고, 신앙적으로도 완전한 분리를 하게 되는 결과를 낳았습니다.

이 일은 결국 북쪽 이스라엘에게 있어서 최악의 결과를 가져다 주었습니다. 여로보암 자신이 하나님을 배반하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백성들로 하여금 우상을 섬기게 되는 엄청난 죄의 결과를 가져다 주었기 때문입니다(왕상12:25-33). 이 일의 결과는 매우 참혹한 것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여로보암의 아들 아비야를 죽이셨고, 그가 22년을 재위하다가 그의 아들 아담이 왕이 되었으나 그는 재위 2년만에 죽는 동시에 그의 왕조는 완전히 망하고 말았습니다(왕상14:17-20,15:25-28). 그는 화려하게 시작했으나, 마지막은 매우 비참하게 끝을 맺고 말았습니다.

여로보암은 분명히 유능한 지도자였습니다. 그는 백성들에게 신뢰를 얻을만한 충분한 자질을 가지고 있는 자였습니다. 그러나 그의 능력에도 불구하고 그는 이스라엘 역사상 가장 불행한 역사를 만드는 장본인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는 나라를 분리시키고, 우상을 섬기도록 독려했으며(참고로 북쪽 이스라엘의 왕은 단 한 명도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왕이 나오지 않음), 결국에는 민족이 완전히 소멸되어 이스라엘의 역사에서 완전히 사라져버리는 결과를 안겨다 주었습니다.

유능한 지도자의 기준이 무엇입니까? 많은 사람들은 해박한 지식과 분석력, 그리고 그것을 실천할 수 있는 지혜, 사람들을 품는 인격, 그리고 추진력과 같은 것들을 말합니다. 그것은 세상의 기준을 볼 때 옳은 답입니다. 그러나 최소한 그리스도인의 눈으로 볼 때 그 답은 결코 옳지 않습니다. 모든 것을 다 갖추어도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마음을 갖지 못한 자라면 지도자로서 자질이 없는 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성경의 모든 지도자들이 고백하는 한 가지는 자신이 부족한 자라는 사실입니다. 그들은 실제로도 부족한 자들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에게 있었던 공통점은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있었다는 점입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것은 그리스도인들에게 있어서 가장 기본적인 자세이면서, 성공적인 삶을 사는 방법입니다. 하나님은 그들의 삶을 보호해 주실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 주변에 있는 모든 사람들을 풍성하게 만들어 줄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어떤 모습으로 하나님을 바라보고 있습니까? 우리의 시선을 언제나 하나님께 고정시키고, 그분을 두려워하고, 그분 안에서 그분의 명령을 들으며, 죄와 싸워 이기는 삶을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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