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리암(출15:20).

조회 수 1974 추천 수 0 2010.06.07 15:37:06

미리암은 아버지 아므람과 어머니 요게벳 사이에서 낳은 모세의 친 누이로서 그 이름의 의미는 “높이운 자”라는 뜻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녀는 모세가 하나님의 사람으로 성장하는데 있어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던 자입니다. 그녀는 하나님의 일꾼으로서 매우 훌륭하게 쓰임을 받기도 하였지만 경솔한 행동으로 인하여 훗날에는 오히려 사역으로부터 소외되어 쓸쓸하게 생을 마감했던 여인이기도 합니다. 우리가 미리암을 통하여 배울 수 있는 것이 있다면 지도자로서 바른 자세를 가진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고 그녀의 시행착오를 통해 배우는 것입니다.

예언자로서의 미리암

그녀는 이집트 왕 파라오가 히브리인 어린 아이를 죽이려 할 때에 어린 모세를 상자에 넣어 나일강 갈대 사이에 띄워 멀리서 지켜보며 그 생명이 구출되기를 바랐던 여인입니다. 미리암의 행동은 결코 염려하거나 가슴 아파하는 모습이 아닙니다. 오히려 갈대 상자에 담겨 강물을 따라 흘러가는 모세의 뒤를 따르면서 하나님의 구원의 손길을 바라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이집트의 공주 손에 어린 모세가 안겼을 때에 즉시로 달려가 자신의 어머니로 하여금 유모가 되게 함으로서 장차 위대한 지도자 모세의 길을 예비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러한 미리암의 모습은 예언자로서 손색이 없는 것입니다. 죽음의 강을 떠돌고 있는 모세를 바라보면서 소망을 바라보았던 그녀의 모습을 보면 십자가의 희생 앞에서 죽음으로 인하여 생명이 있게 됨을 말씀하고 있는 예수님의 모습을 떠올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것은 믿음 안에 사는 자만이 얻을 수 있는 것이기도 합니다. 예수님께서 죽음이 없이는 결코 생명도 있을 수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많은 제자들과 여인들이 예수님의 죽으심에 대하여 깊은 충격에 빠져 슬퍼하고 절망적인 모습을 보이면서 심지어 예수님의 곁을 떠나기도 했지만 그것은 사실 그들에게 가장 소망의 시간이었습니다.

참 된 그리스도인들은 절망 속에서 소망을 얻습니다. 세상의 사람들은 절망적인 상황을 만났을 때, 남의 탓을 하기도 하고, 심지어 자살하기도 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지만 믿음의 사람들은 오히려 더욱 힘을 내어 주님을 향한 찬양을 계속하게 될 것입니다. 빌립보 감옥에 갇혔던 바울과 실라를 보십시오. 그들은 억울한 누명을 쓰고, 온몸이 차꼬에 묶여 꼼짝할 수도 없는 상황이었지만 오히려 주님께 찬양을 드림으로서 옥문이 열리는 놀라운 기적을 만들어 낼 수 있었습니다(행16:19-40). 그들은 절망 가운데 사는 이들이 어떠한 자세를 가져야 하는지를 보여줍니다.

찬양인도자로서의 미리암

미리암의 사역을 대표하는 것이 있다면 찬양에 관한 것입니다. 그녀는 하나님을 찬양하는 일에 있어서 가장 앞장섰던 여인이기도 합니다. 그녀가 손에 작은 북을 잡고 찬양을 시작하려 할 때에 모든 여인들이 함께 나아오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출15:20). 또한 출애굽한 사실을 상기하면서 “너희는 [주]께 노래하라. 이는 그분께서 영화롭게 승리하셨음이요, 말과 거기 탄 자를 바다에 던지셨음이로다”(출15:21)라고 말하며 모든 이들을 향해 찬양할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그녀는 공식적으로 찬양인도자로서 세움을 받은 적은 없었지만 주님을 찬양하는 일에 앞장섰던 여인이었던 것입니다. 그녀의 찬양은 가식 없이 순수하게 가슴으로부터 나온 것입니다.

오늘날 많은 이들은 찬양을 만들어지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들은 좀 더 아름다운 곡을 연주하기 위해서 많은 연습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며, 보다 힘들고 어려운 곡일수록 주님께서 받으실만한 찬양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우리는 예배를 위해 찬양을 준비함에 있어서 많은 연습을 필요로 합니다. 그리고 성도들과 더불어 아름다운 찬양을 함께 나누는 것은 큰 행복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나 그 찬양이 결코 노동이 되거나 의무, 또는 억지로 하는 것이 되어서는 않된다는 것입니다. 찬양은 오히려 자연스러운 것이 되어야 하며, 기뻐함으로 자발적인 참여가 함께 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미리암의 찬양은 찬양의 모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물론 우리는 성경 안에서 많은 믿음의 사람들이 찬양하는 모습들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시편을 통해 보여준 다윗의 찬양은 그 누구보다도 감동적입니다. 그의 찬양이 아름다울 수 있는 이유는 그의 삶 속에서 느끼고 생각하는 것들을 노래하고 있다는 점 때문입니다. 그는 하나님을 향해 불평하기도 하며, 괴로워 신음하기도 하고, 원수들을 심판해달라고 요청하기도 하며, 행복에 겨워 찬양하기도 합니다. 그렇습니다. 찬양은 결코 만들어진 것을 노래하는 것이 아니라 내 마음을 주님께 보여드리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분을 노래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찬양이 마음으로부터 나와 주님을 기쁘시게 해 드릴 수 있어야만 할 것입니다.

경솔한 지도자로서의 미리암

우리는 성경 안에서 고개를 갸웃거릴만한 사건을 발견합니다. 그것은 모세가 이디오피아 여인과 결혼한 사실을 보고 미리암이 비방했다는 사실 때문에 그녀가 나병에 걸린 것입니다(민12:1-10). 모세의 결혼은 그의 누이 입장에서 보면 충분히 비방을 받을만한 것입니다. 그 이유는 모세가 이미 결혼을 했고, 자녀가 있었으며, 또한 이디오피아, 즉 이방여인과 굳이 결혼을 해야만 했느냐는 것입니다. 그녀는 충분히 바른 말을 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주님의 판단은 매우 다른 것이었습니다. 오히려 모세보다는 미리암을 심판하셨고, 그녀의 잘못을 지적하셨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녀가 무엇을 잘 못한 것입니까?

오늘날 많은 목회자들은 그녀의 행동을 문제 삼아서 자신들의 권위를 세우는데 이용합니다. 즉 목회자를 대적하면 저주를 받는다는 식으로 접근하려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러한 가르침은 매우 잘 못 이해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미리암의 잘 못은 모세를 대적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판단을 앞세웠던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즉 어떤 문제에 대한 옳고 그름의 문제가 주님께 있다는 사실을 망각하고, 그녀가 모세를 심판하는 결과를 가져왔던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사람들의 모든 생애에 대한 심판을 하실 수 있는 분은 오직 주님 밖에 없습니다. 만일 우리가 누군가를 정죄하고 판단하려한다면 그것은 주님의 권위를 넘어선 것입니다. 미리암의 대한 주님의 심판은 바로 이 문제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것이었습니다. 우리가 이웃에 대하여 선하게 대해야 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만일 누군가가 우리에게 대하여 원수와 같이 대한다 할지라도 그들에 대하여 분노하지 말아야 하는 이유도 바로 주님의 심판이 있기 때문입니다. 결코 누군가를 미워하는 어리석음을 버리십시오. 오직 사랑으로 모든 사람들을 대하는 지혜로운 그리스도인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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