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별된 음식(레위기 11:1-8)|

조회 수 3241 추천 수 0 2010.06.07 15:17:13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구별된 삶을 살아야 한다는 점을 분명히 하셨습니다. 거룩하고 속된 것을 분별하고 부정하고 정한 것을 분별하여 규례를 정해서 지키도록 하셨습니다(레 10:10,11). 그래서 하나님은 먹을 수 있는 음식과 먹을 수 없는 음식을 구별하셔서 그들의 거룩성을 유지하도록 했습니다.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이 자칫 이 말씀을 문자 그대로 받아들여 금지된 음식을 먹지 않는 것으로만 이해하려고 한다면 가장 중요한 진리의 숨은 뜻을 놓치는 결과를 가져오게 될 것입니다. 과연 금지된 음식을 통해서 하나님은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에게 어떠한 말씀을 하고자 하시는지를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새김질하는 것이나 굽이 갈라진 짐승(11:3)

짐승가운데 먹을 수 있는 것은 새김질하는 것이나 굽이 갈라진 짐승에 한해서 입니다. 둘 중 하나라도 거스리게 된다면 먹을 수 없습니다. 구체적으로 산토끼, 약대(낙타), 토끼, 돼지 등이 있습니다. 그들은 쪽발이면 새김질을 하지 않거나 새김질을 하면 쪽발이 아닙니다. 이러한 음식은 먹지 말도록 말씀하고 있습니다. 왜 새김질이나 쪽발(굽이 갈라진 발)을 한 짐승만을 먹도록 했을까?

새김질을 하는 짐승은 모든 음식물을 일단 모두 소화시킨다는 특징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는 곧 모든 말씀에 순종하는 자가 하나님 나라에 합당한 자임을 가르쳐 주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인에게는 오직 '예'만 있다고 권면합니다(고후 1:18). 우리 가운데 전해지는 말씀을 순종하고 따르는 자만이 새김질하는 성도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만일 말씀을 받지 않고 오히려 쏟아내고 다시 먹으려고 한다면 이는 곧 토했던 것을 다시 먹는 '개'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벧후 2:22).

말씀은 우리의 삶에서 버릴 것이 전혀 없습니다. 아무리 많은 말씀이 전파된다 할지라도 새김질하는 짐승이 많은 음식물을 저장해 놓고 계속 소화시키고 있듯이 새김질하는 성도는 모두 소화할 수 있습니다. 또한 저장해 놓지 않은 짐승이 배고파 울부짖듯이 말씀에 굶주린 것을 견디지 못해 울부짖을 줄 알며 때와 장소에 관계없이 항상 양식을 찾아 먹어야 합니다. 그리고 말씀의 되새김질을 계속해야 합니다.

또한 먹을 수 있는 또한 종류의 짐승은 굽이 갈라진 짐승입니다. 이는 구별된 성도의 삶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세상과 분리된 삶을 말합니다. 예수님은 청지기의 비유를 통해 하인이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다는 점을 분명히 하셨습니다(눅 16:1-13). 사도 바울 역시 구분된 삶에 대해 강조합니다.

"너희는 믿지 않는 자들과 짝이 맞지 않는 멍에를 함께 메지 말라 의와 불의가 어찌 사귀겠으며 빛과 어둠이 어찌 친교를 나누겠으며 그리스도와 벨리알이 어찌 일치하겠으며 빛과 어둠이 어찌 친교를 나누겠으며 하나님의 성전과 우상들이 어찌 조화를 이루겠느냐......그러므로 너희는 그들 가운데서 나와 스스로 분리하고 부정한 것을 만지지 말라....."(고후 6:14-18).

그리스도인의 구별된 삶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습니다. 이 땅에도 무수히 많은 그리스도인이 있지만 드러나지 않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세상 사람들과 똑같이 죄를 짓고, 물질을 쫓아 살며, 명예, 권세, 지식, 정욕을 찾아 전혀 구별되지 못한 삶을 살고 있는 것이 오늘날 성도들의 모습입니다. 우리는 분명히 이 땅으로부터 구별된 삶을 살아야 합니다. 소망을 하늘에 두며 자신을 희생할 줄 알고, 이웃을 돌아보는 넉넉함이 드러나야 합니다. 구별되지 않은 성도는 하나님나라에 합당치 않은 자임을 기억하는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지느러미와 비늘이 있는 물고기(11:9)

지느러미와 비늘이 있는 물고기의 특징은 맑은 물을 따라 올라간다는 것입니다. 그들의 거슬러 올라가는 모습은 매우 치열합니다. 험한 계곡이나 폭포를 거슬러 올라가는 모습은 감동적이기까지 합니다. 그래서 낚시꾼들은 그물이나 낚시 바늘을 올라오는 물고기를 겨냥해서 설치하는 것을 종종 보게 됩니다.

거슬러 가는 물고기에게 반드시 필요한 것이 바로 지느러미와 비늘입니다. 성도는 맑은 물 즉 하나님의 거룩함을 닮아가기 위해서 영적 지느러미와 비늘을 가려야만 합니다. 또한 끊임없이 전진하는 물고기와 같이 머무르지 않고 계속해서 영적 성숙에 이르도록 도전해야 합니다. 지느러미는 물고기가 거슬러 올라갈 수 있는 힘입니다. 흐르는 물보다 강한 힘을 가지지 못하면 쓸려 내려가 결국에는 오염된 물에서 살 수 없게 됩니다. 우리의 영적 삶도 세상을 이길 힘이 필요합니다. 그 능력은 '우리가 할 수 있다'는 자기 최면이 담긴 자신감이 아니라 오직 주님이 주시는 능력으로만 가능합니다(행 1:8).

산과 계곡에서 흐르는 물이 넓은 바다로 향해 흐르듯이 세상은 그리스도인들의 삶을 사망으로 흐르도록 유혹합니다. 우리가 머무르는 동안 점차 사망의 바다를 향해 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영적 지느러미인 성결의 능력으로 세상을 헤쳐 나가 믿음의 정상에 이를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바울은 이 일에 모범적입니다. 그는 세상을 헤치고 믿음의 산을 정복한 후 상을 받을 것을 회상하며 말합니다.

"이는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음이라 이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왕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심판자께서 그 날에 그것을 내게 주실 것이며 내게만 아니라 그분의 나타나심을 사랑하는 모든 자들에게도 주시리라"(딤후 4:7,8)

그리스도인들의 도전하는 자세는 계속되어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성령의 능력을 가진 증거입니다. 물고기가 전진하는데 필요한 또 한가지는 비늘입니다. 물이 흘러 내려오면서 흙, 돌, 모래 등과 함께 쓸려 내려옵니다. 물고기가 거슬러 올라가는데 물살보다 더욱 무서운 것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온 몸에 상처를 내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그 때문에 물고기에는 그들의 피부를 보호하기 위해서 비늘이 필요한 것입니다. 비늘은 거슬러 올라가는데 상처를 막아 줍니다.

그리스도인들이 믿음의 산을 오르는 데는 많은 장애물이 있습니다. 때로는 생명을 위협 당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그들은 무장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바울은 마귀의 궤계를 대적하기 위해서 전신갑주를 입으라고 권면합니다(엡 6:11). 그리스도인이 부딪힐 수밖에 없는 악의 세력과 맞서 싸우면서 전진하기 위해 준비되어야 할 비늘 곧 전신갑주를 반드시 갖추어야 합니다.

"그런즉 서서 진리로 너희 허리를 동여매고 의의 흉갑을 입고 화평의 복음을 예비한 것으로 신을 신고 모든 것 위에 믿음의 방패를 취하며 이것으로 능히 저 사악한 자의 모든 불화살을 끄고 구원의 투구와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취하라"(엡 6;14-17)

비늘이 없는 물고기는 산을 오를 수 없습니다. 혹 오른다 해도 수많은 상처로 인해 죽음을 면할 수 없습니다. 그리스도인 된 우리들이 진리로 무장되지 않은 채로 세상에서 믿음으로 살아간다고 한다면 오히려 낭패를 보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세상을 거슬러 올라가 거룩한 삶으로 인도 받기 위해서는 반드시 준비가 있어야 합니다. 세상은 호락호락하지 않습니다. 거친 물살을 거슬러 올라가는 물고기처럼 믿음의 정상을 향해 올라가기 위해서 진리의 말씀으로 무장된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아가시길 바랍니다.

육식성, 야행성, 날지 못하는 새는 먹지 말라(레 11:13-19)

독수리, 솔개, 매, 까마귀 등은 육식성 새들입니다. 그들은 시체나 약한 짐승을 표적으로 삼고 이리저리 다니면서 먹을 것을 찾아다닙니다. 그들의 특징은 육식만을 즐겨 먹는다는 것입니다. 이 새들을 먹지 말라고 하는 것은 영적으로 깊은 의미를 갖습니다. 세상에서 육신의 양식을 구하는 자가 하나님 나라에 합당치 않음을 말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경건한 그리스도인은 결코 육신의 양식을 추구하지 않습니다. 오직 하나님 나라와 의를 구하며 살아갑니다(마 6;33).

사도 바울이 자기의 가진 명예, 지식, 물질 등 모든 것을 버릴 수 있었던 것은(빌 3:5-9) 바로 이러한 이유에서였습니다. 우리가 육신 안에서 살수록 하나님의 나라는 멀어집니다. 오직 하나님의 나라와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에서 자라 가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바른 자세입니다. 올빼미, 부엉이, 박쥐 등은 야행성 새들입니다. 그들은 어둠을 좋아하고 빛을 기피하는 새들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은 빛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빛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런즉 우리가 그분에게서 듣고 너희에게 밝히 드러내는 소식이 이것이니 곧 하나님은 빛이시오 그분께는 어둠이 전혀 없다는 것이라 만일 우리가 하나님과 사귄다 말하고 어둠 가운데서 걸으면 거짓말을 하고 진리를 행하지 아니함이거니와 만일 그분께서 빛 가운데 계신 것같이 우리가 빛 가운데 걸으면 우리가 서로 사귐이 있고 그분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라"(요일 1:5-7)

항상 죄와 상관하고, 은밀한 것을 좋아하는 자들이 어둠 속에 사는 자들의 특징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삶이 죄와 상관없고, 투명한 삶을 살기를 원하십니다. 어둠 속에서는 자신의 추함을 발견할 수 없습니다. 빛 아래 조명되었을 때에 더러움을 발견하고 씻어낼 수 있습니다. 우리가 주님을 떠나서는 우리 안에 더러운 것들을 찾아낼 방법이 없습니다. 오직 그리스도 안에서 더러움을 발견하고 또한 예수님으로 더불어 깨끗함을 입어야 할 것입니다.

타조와 같은 새들은 날개는 있으나 날지 않는 새들입니다. 이는 위선적인 삶을 사는 자의 모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이라는 이름은 가졌으나 전혀 그리스도인다운 삶을 살지 못하는 자들입니다(계 3:1)

날개가 있다면 하늘을 날아야 합니다. 그러나 날지 않고 이 땅에 머물러 있다면 그는 자신의 본분을 잊은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은 하나님 나라의 백성입니다. 그들은 하나님 나라의 일들을 위해서 살아갑니다. 그러나 이 땅의 일들에만 관심을 두고, 생각 또한 이 땅에만 두고 있다면 그는 이미 자신의 존재 의미를 잃어버린 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 나라의 백성은 그 나라의 백성답게 살아야 합니다. 더구나 하나님의 자녀라고 불리는 우리는 그 분의 자녀답게 살아야 합니다.

위의 새들을 통해서 부분적으로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의 삶을 비교해 조명하였습니다. 전체적으로 먹을 수 없는 새들은 맹조류, 홀로 있는 새, 비정상적 환경에 처한 새, 불결한 새들입니다. 하나님은 보다 완전한 삶을 요구하고있습니다. 세상에서의 삶을 보다 건전하고 아름답고 거룩한 삶이 될 수 있도록 성령의 인도를 받으시기 바랍니다.

날개가 있고 네 발로 기어 다니는 곤충은 먹지 말라 (레 11;20-23)

새들 역시 날개가 있으되 날지 못하는 새는 먹지 말도록 했습니다. 곤충 역시 날개가 있으되 날지 못하는 모든 곤충을 먹지 말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새나 곤충 모두를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세상에 마음을 두고 사는 자들은 하나님 나라에 합당치 않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러나 곤충 중에서 메뚜기, 베짱이, 귀뚜라미, 팥종이 종류와 같이 뛰는 다리가 있어 땅에서 뛰는 것은 먹을 수 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는 진리에 대한 그리스도인들의 자세가 어떠해야 하는가를 말해주는 것입니다. 곤충들이 뛰는 이유는 생명에 위협을 당하거나 좋지 못한 환경에 있을 때입니다. 또한 한 곳에 오래 머물지 않는 그들만의 독특한 특성을 가지고 있기도 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육신의 몸을 입고 있는 이상 이 땅에 머물 수밖에 없습니다. 그 까닭에 그리스도인으로서 영적 생명에 중대한 위협을 받기도 하며, 좋지 못한 환경에 처하기도 하고, 육신의 평안함에 머물고자 하는 유혹을 받기도 합니다. 참된 그리스도인들은 이 일 앞에서 메뚜기가 뛰듯이 지혜롭게 벗어나는 모습을 보여 줍니다. 하나님의 뜻에 어긋나는 것을 부정하며 사는 자세를 언제나 유지하고 죄의 유혹에 넘어가지 않습니다. 죄로부터 빠져 나오는 것이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자세입니다.

"또 내가 들으니 하늘로부터 또 다른 음성이 나서 이르되 내 백성아 그녀에게서 나와 그녀의 죄들에 참여하는 자가 되지 말고 그녀가 받을 재앙들을 받지 말라"(계 18:4)

땅에 기는 것은 부정하다(레 11:29,30)

족제비나 쥐는 재빠른 동물입니다. 약삭빠르고, 더러운 것을 좋아하기도 합니다. 하나님은 결코 땅에 의지해서 다니는 자들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환경에 따라 이리 저리 다니는 것 또한 좋아하지 않습니다. 족제비나 쥐와 같이 어두운데 숨어서 지내는 백성들 또한 좋아하지 않습니다. 삶을 백성 앞에 드러내고 보다 경건하고, 아름다운 삶을 살기를 원하십니다.

도마뱀은 그 꼬리를 아무리 잘라내도 다시 생긴다는 특징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는 삶 속에서 죄의 모양을 잘라내도 계속해서 죄를 지으며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입니다. 특히 그리스도인 된 자들이 나쁜 습관이 있을 때 고치려고 아무리 애써도 계속해서 행하는 모습을 봅니다. 이는 성령께 맡기지 못했을 때 일어나는 모습입니다. 성령의 사람은 결코 죄악을 반복하지 않습니다.

칠면석척(카멜레온)은 환경에 따라 색깔이 변합니다. 아마도 현대인들의 전형적인 삶의 모습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교회 안에서는 경건한 성도이면서, 세상에서는 죄에 물든 삶을 사는 사람들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그 색깔을 분명히 해야 합니다. 사회의 부조리 뒤에는 언제나 자칭 그리스도인이라 말하는 자들이 숨어 있음을 보게 됩니다. 그리스도인은 죄가 있는 곳에 머물러 있는 법이 없습니다. 오히려 그 색깔이 너무도 분명해서 있을 수 가 없습니다. 보다 분명한 그리스도인의 모습으로 세상을 살아가야 합니다.

결론적으로 하나님은 세상의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구별된 삶을 살기를 원하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미 우리가 세상에서 조심해야 할 것과 취해야 할 것에 대해 살펴보았습니다. 부디 참된 그리스도인으로서 이 땅에서 승리함으로 하나님 나라의 영광에 동참할 수 있는 성도가 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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