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하나님을 바랄지니라(호세아12:3-6)

조회 수 3009 추천 수 0 2010.06.07 15:05:07

『야곱이 모태에서 자기 형의 발뒤꿈치를 붙잡았고 또 자기 기운으로 하나님과 힘을 겨루되 참으로 그가 천사와 힘을 겨루어 이겼고 울며 그분께 간구하였으며 그분께서는 벧엘에서 그를 만나셨고 거기서 우리에게 말씀하셨나니 곧 주 만군의 하나님이시로다. 주는 그분을 기억하게 하는 이름이니라. 그러므로 너는 네 하나님께로 돌이켜서 긍휼과 공의를 지키며 계속해서 네 하나님을 바랄지니라.』(호세아 12:3-6)

 

이스라엘은 본래 보잘 것 없는 민족이었습니다. 그들이 이집트로 들어갈 때만 해도 야곱의 식구 70명에 불과했습니다. 이렇게 초라하기 짝이 없는 민족을 번성하게 하셔서 이제는 한 민족에 두 나라를 이룰 정도로 강대한 민족을 이루셨던 것입니다. 이것은 그들의 의지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며 오직 하나님께서 그들의 민족을 축복하신 결과입니다.

 

『에브라임이 바람을 먹으며 동풍을 따라가서 날마다 거짓과 황폐함을 더하여 아시리아 사람들과 언약을 맺고 기름을 이집트에 실어 보내는도다.』(1)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행동은 하나님을 의지하기보다는 오히려 주변의 강대국을 의지함으로서 바람을 먹으며, 동풍을 따라가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들이 바람을 먹는다는 말은 헛된 일만을 계획하고 있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며, 동풍을 따라간다는 것은 멸망을 향해 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들의 나라가 겉으로는 강대해져 가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져 감으로서 멸망을 목전에 두게 되는 결과를 낳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부족함을 가지고 하나님을 의지했을 때 가장 막강한 나라를 형성할 수 있었으며, 가장 안전한 상태에 거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부요함은 오히려 극심한 불안의 상태에 이르도록 만들었습니다.

 

『너희는 사람을 의지하지 말라. 그의 호흡은 코에 있나니 수에 칠 가치가 어디에 있느냐?』 (사2:22)

 

그리스도인들에게 있어서 육신의 부요함은 때때로 나태한 신앙을 가져다 줄 수 있습니다. 더 많은 유혹과 욕심이 그들을 잡아 끌 것이며, 혼란스럽게 할 것입니다. 그 까닭에 사도들은 모든 것을 버려두고 예수님의 뒤를 쫓았으며, 스스로 연약한 상태를 유지하려고 애를 쓰는 흔적도 보입니다. 바울과 같은 사도는 스스로 가진 지식, 명예, 권세 등 모든 것을 배설물로 여길 만큼 자신을 버리는 일에 집착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빌3:4-9).

 

참 그리스도인들은 그들의 부요함을 누리기 위하여 세상의 것들을 의지하지 않습니다. 우리의 주변에는 주님으로부터 받은 복을 유지하기 위해 세상과 타협하려는 어리석은 자들을 흔히 볼 수 있습니다. 그 대표적인 집단이 에큐메니칼을 추구하고 있는 단체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들은 어리석은 이스라엘 백성들과 같이 자신들이 지금의 자리를 유지하기 위해서 적당한 타협을 시도하고 있는 것입니다.

 

모든 교회의 역사가 그러하듯이 한국의 기독교 역사도 그야말로 순교의 역사라고 할 수 있습니다. 지금도 초기 순교자들의 자녀들이 곳곳에 흩어져 살면서 이 나라의 교회 역사를 주도해 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물질의 부요함과 더불어 이제 그들은 변해가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의 관심은 더 이상 복음에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안전을 위해서 가톨릭을 포함한 비 진리 단체와 연합을 시도하고 있으며, 오히려 자신들이 진리 안에서 온전함을 추구하는 교회들을 핍박하는 자리에 서서 열심을 다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처럼 부요함이 주님과 멀어지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음을 경계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부요하거나 가난하거나 변함없이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고 깨어있는 자세로 주님의 뜻을 알고 행할 수 있는 자리에 있어야 할 것입니다.

 

야곱이 주는 교훈

 

주님은 그들의 행위에 대하여 보응하실 것을 말씀하시면서(2) 야곱에 대하여 말씀하십니다. 그 까닭은 현재 이스라엘의 상태가 하나님의 은혜를 입기 전의 야곱의 상태와 너무나 닮았기 때문입니다. 이 말은 곧 이스라엘에게 아직도 돌아오기만 하면 구원에 이르게 하시겠다는 약속을 포함한 것입니다. 과연 이스라엘은 야곱의 어떠한 모습을 닮았을까요?

 

『야곱이 모태에서 자기 형의 발뒤꿈치를 붙잡았고』(3)

 

발뒤꿈치를 잡았다는 말은 히브리 말로 '아캅'이라고 하는데 이 말은 '속이다', '배반하다' 라는 뜻입니다. 실제로 야곱은 장자권을 빼앗는 장면과 에서를 대신하여 축복을 받는 장면을 통하여 그의 이름에 걸맞은 교활함과 속임수를 충분히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의 간교함은 후대 이스라엘의 역사에서도 그대로 드러나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겉으로는 하나님을 섬기는 듯 했지만 사실상 우상을 섬기는 이중적인 생활을 계속하고 있었습니다. 이 말은 그들이 하나님을 속이고 있다는 것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들의 이러한 행위에 대하여 결코 속으실 분이 아닙니다. 그분은 이미 그러한 그들의 행위를 질책하고 계시며, 급기야는 그들을 멸망시키시겠다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 가운데 많은 이들이 바로 이러한 문제에 직면해 있는 자들이 많이 있습니다. 교회들은 겉으로 순수한 복음을 말하면서 참 진리, 참 교회를 주장하지만 실상은 물질과 성도의 수, 그리고 목회자의 명예가 우선되어 움직이고, 성도들은 물질, 건강, 육신의 형통함에 매달리는 모습은 바로 속이는 자들의 모습이라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한 세상적인 것들이 이미 그들 가운데 우상으로 자리 잡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은 반드시 멸하실 것입니다.

 

『자기 기운으로 하나님과 힘을 겨루되 참으로 그가 천사와 힘을 겨루어 이겼고』 (3,4)

 

야곱이 주님과 그의 가족들을 속인 이후에는 하나님과 더불어 힘을 겨루어 이기는 놀라운 능력을 과시합니다. 이 말씀이 때로는 하나님께 갈급한 심정으로 기도하라는 말씀으로 우리에게 전해져서 많은 이들에게 은혜를 끼치기도 하지만 그가 아직도 육신적인, 즉 인간적인 힘으로 하나님과 겨루었다는 사실만을 생각한다면 그의 이러한 행동은 그리 권할 만한 방법은 아니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말씀이 조심스럽게 취급되는 이유는 이러한 육신적인 행위가 구원에 이를 수 있다는 잘 못된 진리에 오염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사실상 주님께서 이스라엘의 상태와 야곱을 비교한 이유는 야곱의 육신적인 행동을 지적하기 위한 것입니다. 그는 이미 이삭의 축복을 받은 상태였지만 아직도 육신적인 생각을 버리지 못하고 행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어떠한 이유로도 하나님 앞에 인간적인 방법을 가지고 성공적인 믿음의 삶을 살아갈 수는 없습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이 선택하신 백성임에도 불구하고 인간적인 방법을 버리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갈수록 인간적인 행동의 모습은 더욱 심해졌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자신들의 뜻대로 해줄 것을 요구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것은 교만의 또 다른 형태라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삶은 전적인 순종의 삶입니다. 그 이유는 우리가 그의 소유된 백성이기 때문입니다. 그 까닭에 우리는 그분을 주님(Lord)이라고 부릅니다. 우리의 요구사항은 대부분이 하나님의 뜻과는 거리가 먼 것들이기 때문에 우리의 요구를 집요하도록 구하는 것은 결국 하나님의 뜻을 바꾸어 보겠다는 의도로 볼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기도하실 때 자신의 뜻을 포기했고, 바울 역시 자신의 질병에 대한 치유의 기도도 포기하고 오히려 약한데서 더욱 강한 능력이 나옴을 믿고 그의 사역을 지속했던 것입니다.

 

우리는 열심 있는 기도나, 간구가 더욱 훌륭한 신앙으로 이끌 것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살아갑니다. 그러나 실제로 가장 훌륭한 그리스도인은 자신의 뜻을 포기하고 오직 그리스도의 말씀을 경청하며 순종하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기도가 무시될 수는 없지만 기도 양의 많고 적음에 관계없이 육신의 욕심들을 버리고 온전한 순종이 있는 그리스도인이야말로 진정한 그리스도인임을 언제나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야곱이 시리아 지방으로 도망하였으며 이스라엘이 한 아내를 얻기 위해 사람을 섬기고 한 아내를 얻기 위해 양을 지켰으며』(12)

 

야곱은 자신의 안전을 위하여 약속의 땅을 떠나 시리아(메소포타미아)로 떠났습니다. 그는 떠날만한 충분한 명분과 사연을 가지고 떠나지만 그가 이삭으로부터 축복을 받은 것을 생각한다면 사실은 그곳을 떠나서는 안 되는 상황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떠났고 시리아에서 아내를 얻기 위하여 종 생활을 하는 신세가 되었던 것입니다. 결국 그는 그곳에서 나그네 생활을 계속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을 떠나서는 결코 행복해 질 수 없습니다. 야곱이 그의 부모의 곁을 떠나서는 종의 신세가 되었듯이 하나님의 백성들이 세상에서 얻을 수 있는 자리는 종입니다. 결국 세상은 그를 이용할 것이며, 그가 속이는 것보다 더욱 많은 속임수로 그를 괴롭힐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있어서도 이 일은 매우 중요한 일이었습니다. 그들이 비록 연약했을 때에도 하나님과 더불어 함께 할 때에는 감히 그들을 당할 민족이 없을 정도로 강력하고 안전한 나라를 이어갔지만 하나님을 떠나서는 비록 강해진 것 같이 보였지만 오히려 약하고 굴복하며 이웃 나라에 뇌물을 바치는 초라한 신세로 전락하고 만 것입니다(1). 결국 그들에게 있어서 하나님이 없었을 때 종의 신세가 되고 말았던 것입니다.

 

과연 우리에게 있어서 '하나님이 없다면 어떤 상태일까?'를 생각한다면 사실 끔찍한 일입니다. 그 신분은 즉시 자녀의 신분에서 종의 신분으로 바뀌어 지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주님의 교회를 떠났을 때 우리에게 다가오는 것은 속이는 자들과 고통스럽게 하는 자들입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탕자의 비유(눅15:11-32)에서 보는 바와 같이 아버지의 품에 있던 아들이 그 곁을 떠나면 행복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지만 실상은 그를 비참하게 만들뿐이었습니다. 뱃속에서부터 교회를 출석해온 어떤 이들도 교회 밖으로 나가기만 하면 행복할 것으로 생각하는 이들도 있지만 막상 그들에게 닥치는 것들은 힘겨운 삶의 투쟁에 대한 것들입니다. 아들은 아버지 품에 돌아옴으로서 행복한 삶을 회복할 수 있었습니다.

 

네 하나님을 바랄지니라

 

『그러므로 너는 네 하나님께로 돌이켜서 긍휼과 공의를 지키며 계속해서 네 하나님을 바랄지니라.』(6)

 

비록 야곱의 생애가 하나님을 버린 것으로 보여 질 수 있었으나 하나님은 그를 버리지 않으시고 복 주셨던 것처럼 이스라엘에게도 복을 주시겠다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그러나 심각한 죄의 상태에 머물고 있는 그들을 그대로 받아들일 수는 없는 노릇이었기 때문에 그들로 하여금 하나님께로 돌이키라고 말씀하십니다. 죄인들이 가장 먼저 행해야 하는 것은 죄로부터 돌이키는 일이 될 것입니다.

 

그리고 긍휼과 공의를 지키라고 말씀하시는데 이는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대로 살아가라는 것입니다. 돌이킴으로 모든 것이 끝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가지 못한다면 아무런 의미도 없습니다. 그리고 계속해서 하나님을 바라라고 말합니다. 언제나 하나님과 더불어 살아야 한다는 점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상태는 우리의 상태를 대변해 줍니다. 그들은 죄인의 모습 그대로이며, 교만한 삶과 어리석음을 반복하고 있는 우리 생활을 그대로 드러내 줍니다. 사실상 그들에게 희망이 없듯이 우리에게도 희망이 없습니다. 이미 멸망을 결정하시듯 우리 또한 멸망을 결정하신 상태입니다. 끝없는 속임수와 인간적인 열심, 그리고 하나님을 떠나 사는 모습들은 우리를 더욱 곤혹스럽게 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주님은 우리를 돌아오는 자에게 구원을 약속하셨고 우리는 지금 그분과 더불어 살아가고 있습니다...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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