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뉘어진 마음(호세아10:1-3)

조회 수 2868 추천 수 0 2010.06.07 15:03:41

『이스라엘은 텅 빈 포도나무요, 자기를 위하여 열매를 맺는 나무로다. 자기 열매가 많은즉 그가 제단들을 많게 하였으며 자기 땅이 좋은즉 그들이 좋은 형상들을 만들었도다. 그들의 마음이 나뉘었으니 이제 그들이 잘못한 자로 드러나리라. 그분께서 그들의 제단들을 파괴하시고 그들의 형상들을 못쓰게 하시리니 이는 그들이 이제 이르기를, 우리가 주를 두려워하지 아니하였으므로 우리에게 왕이 없거니와 왕이 우리에게 무엇을 하리요? 할 것임이니라.』(호세아10:1-3)

 

본문의 내용은 이스라엘의 현재의 상황을 잘 나타내 주고 있는 구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호세아는 그들의 상황을 텅 빈 포도나무에 비유하고 있습니다. 전통적으로 이스라엘은 포도나무에 비교되어지곤 하였습니다. 그들은 현재 텅 빈 상태입니다. 그러나 전혀 열매가 없는 것은 아닙니다. 그들은 주님과는 관계없는 자기 열매를 맺고 있는 것입니다. 그들은 열매를 거두어 우상에게 바치는 일을 행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상대적으로 하나님께는 전혀 드리지 않는 어리석음을 반복하고 있었습니다.

 

호세아는 그들의 상태가 마음이 나뉘어졌다고 대언하고 있습니다. 즉 이 말은 그들이 바알과 하나님 사이에서 갈등하고 있음을 말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지금 이스라엘 백성들은 두 마음을 가지고 하나님과 바알을 동시에 섬기고 있는 어리석음을 반복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 이유로 그들은 하나님의 징계를 피할 수 없게 될 것입니다.

 

『같은 입에서 찬송과 저주가 나니, 내 형제들아, 이런 것들이 결코 그래서는 아니 되느니라. 어찌 샘이 같은 곳에서 단물과 쓴물을 내겠느냐?』(야고보서3:10,11)

 

두 마음을 가지는 것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오히려 교회 안에서는 이러한 자들이 더욱 위험한 교리로 우리에게 다가옵니다. 세상은 지속적으로 교회에 대하여 타협을 요구합니다. 그들의 정치, 경제, 문화와 적절히 혼합하여 안정된 교회가 되도록 요구합니다. 그러나 지금까지 그 유혹에 넘어간 자들이 온전한 교회로 서 있는 경우는 교회사를 통해 전혀 찾아볼 수 없습니다. 오히려 교회의 타락과 부패를 부추기며, 전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과는 관계없는 세력으로 남아있는 것이 고작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에 대하여 참고 기다리듯이 그들의 부패된 상황에 대하여 즉시 심판하시지 않고 회개하고 돌아오기를 참고 기다리고 계십니다. 그러나 마지막에 가서는 심판을 면할 수 없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악한 자들에 대하여 심판하시겠다는 것은 하나님의 약속이기도 하기 때문입니다(벧후2:9-11). 지혜로운 그리스도인이라면 세상가의 타협을 거절하고 오직 신실한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삶을 설계하는 모습을 가져야만 할 것입니다.

 

『주께서는 자신의 약속에 대하여 어떤 사람들이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같이 더디신 것이 아니며 오직 우리를 향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하지 않고 모두 회개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베드로후서3:9)

 

두 가지 큰 죄의 결과

 

하나님은 믿는 자들이 이 땅에서 행한 삶의 결실에 따라 상급을 주십니다. 이러한 원칙은 믿지 않는 자들에게도 동일하게 적용이 됨을 이스라엘 백성들을 통해 보여주고 계십니다. 호세아가 그들의 죄를 지적하고 있는 두 가지 큰 죄 중에 첫 번째는 우상숭배에 관한 것이었습니다(6). 그들은 벧아웬의 송아지를 섬기고 있었습니다(5). 그러나 그 송아지는 아시리아로 옮겨져서 야렙왕을 위한 예물이 되어 그들의 수치가 될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결국 하나님은 그들이 섬기던 금송아지를 빼앗기게 되고, 수치를 당하게 됩니다. 그들이 금송아지를 빼앗겼다는 것은 결국 그들이 섬기던 우상을 빼앗긴 것이므로 가져다주는 것은 좌절과 아픔일 것입니다. 이는 비단 우리에게 있어서 단순한 형상의 의미를 넘어서 이해되어야 할 부분입니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예수 그리스도 이외에 다른 것들과 병행하여 섬기는 일들을 우리는 종종 목격하게 됩니다. 주님은 이스라엘을 통해 그들에게 분명하게 경고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들이 섬기는 것이 물질이나 명예, 권세나 지식 등 무엇이든지 간에 그들이 우상과 같이 여기는 것들을 통하여 오히려 수치를 당하게 되는 결과를 가져다주게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들이 한 동안은 육신적으로 풍성한 결실을 맺음으로 인하여 기뻐 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의 마지막은 언제나 비참하게 끝나게 될 것입니다. 그들이 지금까지 의지하던 것을 모두 잃게 됨으로서 그 아픔은 더욱 크게 될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행하고 있는 또 다른 큰 죄는 다윗의 왕조를 배반했었다는 것입니다. 북쪽 이스라엘은 에브라임 지파였던 여로보암이 반역을 해서 일으켜진 나라입니다. 그들도 하나님의 백성임에는 틀림이 없지만 하나님이 세우시지 않은 왕조는 수많은 반역과 피로 얼룩진 역사를 거듭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결국 이스라엘 백성이 지도자로 여겼던 사마리아 왕은 하나님께 인정받지 못한 상태에서 물 위의 거품같이 끊어지는 결과를 낳았던 것입니다(8).

 

하나님이 세우시지 않으면 어떠한 것도 유지되어 지는 법이 없습니다. 우리의 삶의 실패의 원인을 되짚어 보면 결국 하나님이 없는 삶을 설계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북쪽 이스라엘에 비하여 남쪽 유다가 그들의 부패한 역사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도우심을 얻을 수 있었던 또 하나의 이유는 하나님이 세우신 왕조를 유지하는데 있었다고 할 수 있었습니다. 결국 이 왕조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혈통을 통해 나셨습니다(마1장).

 

우리가 인생을 계획해 감에 있어서 하나님이 있는 삶과 없는 삶의 극명한 차이를 이스라엘의 역사를 통해 볼 수 있습니다. 에브라임은 언제나 최고라는 자부심을 가졌던 자들이었습니다. 실제로 여호수아가 에브라임 지파라는 사실만으로도 그 자부심을 가지기에 충분했습니다. 그들은 북쪽 이스라엘을 형성하는 과정에서도 10개의 지파를 하나로 엮어내는데 성공할 정도로 영향력이 있는 지파였습니다. 이에 반해 유다 지파는 비록 다윗을 통해 왕조가 시작되었지만 베냐민 지파를 제외한 나머지 지파로부터 외면을 당했습니다. 이러한 측면에서만 본다면 북쪽 이스라엘은 유다보다도 더 뛰어난 나라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중요한 한 가지 사실은 북쪽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버리고 시작되었지만 예루살렘 성전이 있었던 유다는 비록 많은 배도의 물결이 그들을 덮쳐 왔지만 여전히 하나님을 곁에 두고 생활했었던 것입니다. 결국 세월의 흐름과 더불어 그들은 상반된 결과를 가져올 수 있었습니다. 북쪽 이스라엘은 완전히 망하게 되었고, 남쪽 유다는 성전을 그들의 유일한 희망으로 삼고 바벨론에 의해 멸망한 이후에도 성전에 대한 열망을 잃지 않음으로서 하나님의 보호를 받는 족속이 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지혜로운 것들을 부끄럽게 하시려고 세상의 어리석은 것들을 택하시고 하나님께서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시려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시며 하나님께서 있는 것들을 쓸모 없게 하시려고 세상의 천한 것들과 멸시받는 것들을 택하시고 참으로 없는 것들을 택하셨나니 이것은 어떤 육체도 하나님의 눈앞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고린도전서1:27-29)

 

성공적인 삶의 보장은 결코 세상 지혜의 뛰어남에 있지 않습니다. 오히려 어리석은 자들에게 주님은 함께 하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이 어리석음은 결코 주 안에서 무지함을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가 세상의 것에 대하여 하나님보다 자신을 드러내려 한다면 이것이 바로 자신의 지혜를 드러내는 행위일 것입니다. 비록 세상 적으로는 부족할지라도 하나님이 언제나 우리와 함께 하심을 믿고 의지하며 사는 방법이 최상의 지혜임을 깨달아 삶을 지속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길들인 암송아지

 

『에브라임은 마치 길들인 암송아지 같아서 곡식 밟기를 좋아하나 내가 그 아름다운 목 위로 넘어갔도다. 이제 내가 에브라임에게 사람을 태우리니 유다는 밭을 갈고 야곱은 흙덩어리를 부수리라.』(11)

 

에브라임에 대하여 표현하기를 길들인 암송아지와 같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지금까지 많은 은혜를 베풀고 계셨음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회개하지 않는 그들에게 이제는 사람을 태우는, 즉 멍에를 지우시겠다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이제 그들은 아시리아에 의해 멸망을 당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우리의 부족함과 연약함에도 불구하고 사랑하십니다. 죽을 수밖에 없는 죄인인 상태에서도 멸망시키지 아니하시고 참고 계십니다. 오히려 우리의 삶을 살찌우시고, 더욱 풍성한 삶을 살 수 있도록 은혜를 베풀어주십니다. 우리가 아직도 세상과 주님을 동시에 섬기는 이중적인 삶을 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지켜보고 계십니다. 그러나 아직도 많은 성도들은 자신들이 저지르고 있는 죄에 대하여 무감각해져 감으로 하나님과 점점 멀어져 가고 있습니다.

 

자신의 죄에 대하여 심각함을 알지 못하는 자들은 결국 종의 멍에를 쓰게 될 것입니다. 그들 자신이 의지했던 것들로부터 무거운 짐을 떠안게 될 것입니다. 북쪽 이스라엘 사람들이 의지했던 아시리아에게 종의 신세가 된 것 같이 우리가 의지하는 돈, 명예, 권세, 지식을 의지했던 자들은 결국 그것들의 종이 될 것입니다. 만일 사람을 의지했다면 당연히 그의 종의 신세가 되고 말 것입니다. 우리의 주인은 오직 하나님 한 분뿐임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세상의 누구도 우리의 주인이 될 수 없음을 확고히 하시기 바랍니다.

 

지금이 곧 주를 찾을 때

 

『너희는 너희 자신을 위하여 의를 심고 긍휼로 거두며 너희의 묵은 땅을 부술지니 이는 지금이 곧 주를 찾을 때이기 때문이라. 마침내 그분께서 오사 의를 비같이 너희에게 내리시리라.』(12)

 

주님은 이스라엘의 상태에 대하여 묵은 땅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땅이 묵었다고 하는 것은 오래도록 개간하지 않았음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부패와 타락의 원인은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행하지 않으려는데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지속적으로 그들이 변화된 삶을 살도록 요구하고 계셨지만 그들은 항상 제자리에 머물러 있었고, 과거의 일에만 집착하는 경향을 보이기도 하였습니다.

 

결국 하나님은 그들의 마음에 묵은 상태를 개간하도록 요구하십니다. 그들의 마음을 갈아 업고, 부수어서 옥토의 상태로 만들라고 하십니다. 그러한 상태에서 주를 찾게 된다면 의를 비같이 내리시겠다고 말씀해 주십니다. 만일 묵은 땅, 즉 단단한 땅이 그대로 있다면 아무리 비가 내린다 할지라도 흡수할 수 없을 것입니다. 주님은 그들에게 또 다시 은혜를 베푸시기 위해서 은혜를 받을 준비를 하라고 요구하고 계신 것입니다. 이는 다시 말하면 주님께서 은혜를 주시고자 하여도 그들이 받을 수 없음을 말해주는 것이기도 합니다.

 

『자기 육신을 위하여 심는 자는 육신으로부터 썩은 것을 거두되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존하는 생명을 거두리라. 우리가 잘 행하다가 지치지 말지니 이는 우리가 낙심하지 아니하면 정하신 때에 거둘 것임이라.』(갈라디아서6:8,9)

 

우리는 우리의 묵은 마음의 밭을 개간하여 성령을 위하여 심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이미 주님은 우리 안에 있는 모든 고정 관념과 율법적인 것, 그리고 세상적인 모든 관습을 깨뜨리고 완전히 부수어서 회개함으로 주님께 나아오는 순간부터 풍성한 열매를 맺게 해 주실 것이라고 약속하고 계십니다. 만일 우리의 세상의 묵은 마음의 상태를 그대로 가지고 주님께 나온다면 우리는 주님이 주시는 은혜를 경험할 수 있는 기회를 상실하게 될 것입니다.

 

또한 우리가 여전히 회개하지 않는다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전쟁을 통하여 산산조각이 나고(14), 나라와 완전히 끊어지듯이(15) 우리의 삶도 완전한 파국을 맞게 될 것입니다. 아직 멸망을 당하지 않았다는 것은 아직도 회개할 기회를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 까닭에 주님은 이스라엘 백성에게도 여전히 회개할 기회를 주고 계십니다(12).

 

『이는 그분께서 이르시되, 받을 만한 때에 내가 네 말을 들었고 구원의 날에 내가 너를 도왔도다, 하셨으니, 보라, 지금이 받아 주시는 때요, 보라, 지금이 구원의 날이로다.』(고린도후서6:2)

 

우리는 아직도 회개할 기회를 갖고 있는 상태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만일 우리의 회개가 지체되고 멸망의 날을 맞게 된다면 비참한 신세를 면할 수 없을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회개하지 않음으로 나라가 끝을 맺었듯이 세상도 끝나게 될 것입니다. 만일 우리 가운데 아직도 우리의 자아를 깨뜨리고, 회개함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지 않은 자가 있다면 바로 지금이 기회임을 알고 주님께 나아오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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