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께로 돌아가자(호세아6:1-3)

조회 수 4205 추천 수 0 2010.06.07 15:00:50

『오라, 우리가 주께로 돌아가자. 이는 그분께서 우리를 찢으셨으나 낫게 하실 것이요, 우리를 치셨으나 싸매어 주실 것임이라. 이틀 후면 그분께서 우리를 다시 살리시며 셋째 날에는 우리를 일으켜 세우시리니 우리가 그분의 눈앞에서 살리로다. 우리가 계속해서 주를 알고자 하면 그 때에 우리가 알게 되리라. 그분의 나아오심은 아침같이 예비되어 있나니 그분께서는 비같이 곧 땅에 내리는 늦은 비와 이른 비같이 우리에게 임하시리라.』(호세아 6:1-3)

 

호세아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께로 돌아갈 것을 강력하게 권고하고 있습니다. 비록 이스라엘 백성이 부패되고 배도의 길을 가고 있지만 여전히 주님은 그들을 사랑하고 계시며 그들이 돌아오기만을 기다리신다는 사실을 말해주고 계십니다. 또한 회개하고 돌아오는 백성에게는 은혜를 베풀어주실 것이라는 사실도 함께 말씀해 주고 계십니다.

 

주님의 치료하심

 

주님께서는 공의로우신 분이시기 까닭에 범죄 한 그들을 그냥 두실 수 없으십니다. 그들은 그 대가를 지불해야 하며 비참한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이 회개하고 돌아온다면 그들의 상처를 낫게 해 주실 것이라고 약속하십니다. 또한 싸매어 주실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죄인의 상태에 머물러 있는 한 우리의 인생은 상처투성이의 시한부 인생을 살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주님께로 돌아온다면 우리는 주님의 치료하심을 받게 될 것입니다.

 

주님은 우리를 치료하는데 머무르지 않습니다. 우리를 반드시 낫게 하실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를 일으켜 세우시고 걷게 하실 것입니다. 주님은 우리가 단순히 죄의 문제를 해결 받고 구원에 이르게 하시는데 그치지 않습니다. 그분은 우리가 죄로 인한 중병에서 일으키시는데 그치지 않고 우리로 하여금 구원의 기쁨과 감격을 누리게 하시고 또한 증거 하게 하십니다.

 

우리가 여기에서 볼 수 있는 중요한 사실은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에 대한 교훈이 담겨져 있다는 사실입니다. 첫째 날 예수님의 죽으심으로 모든 사람들의 죄가 치료를 받게 되었으며, 둘째 날 자는 자들을 일으켜 세우셨으며, 셋째 날 부활하심으로 제자들의 눈앞에 나타나심과 더불어 모든 믿는 자들로 하여금 새 생명을 얻도록 하셨던 것입니다. 즉 위의 본문은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에 관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주님은 죄로 인해 죽을 수밖에 없는 우리를 살리셨습니다...할렐루야.

 

그러나 무엇보다도 중요한 사실은 예수님께서 우리의 죄를 위해 죽으시고 부활하셨다는 사실이 아니라 그 사실을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사실을 알고 주님을 영접하는 일이 없다면 구원은 우리와 아무 상관이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계속해서 주를 알고자 하면 그 때에 우리가 알게 되리라"로 하는 말씀은 오늘날 성도들이 반드시 명심해야할 중요한 말씀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주님을 아는 일을 게을리 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에브라임과 유다의 변덕스러움

 

『오 에브라임아, 내가 네게 어떻게 하랴? 오 유다야, 내가 네게 어떻게 하랴? 이는 너희의 선함이 아침 구름 같고 사라지는 새벽 이슬 같기 때문이로다.』(4)

 

에브라임과 유다의 마음을 표현하기를 아침 구름과 이슬로 표현합니다. 아침 구름이 수시로 변하듯이 그들은 수시로 그들의 마음을 바꿔 변덕스러움을 보이고 있었습니다. 또한 이슬과 같이 쉬 사라짐으로 신앙이 있다가도 얼마가지 않아 하나님을 멀리하는 모습을 보입니다. 즉 그들은 상황에 따라 하나님을 잘 섬기는 듯하다가도 어느 순간 하나님이 없는 민족이 되고 마는 결과를 보이고 있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믿는 자들이 한결같이 확고부동한 믿음을 가지시기를 원하시고 계십니다. 그러나 실제로 이 시대의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믿음의 모양은 아침과 저녁의 신앙이 다른 형식적인 모습들입니다. 과연 식사를 할 때 기도하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자가 얼마나 될까요? 아침에 일어나 기도하면서 구했던 내용과 하루의 생활이 얼마나 일치할까요? 그리고 저녁에 하루의 일과를 반성하면서 하는 기도의 내용을 돌아보면서 반복적으로 죄된 삶을 살고 있지는 않는지요? 이러한 일들을 생각해보면 변덕스러운 에브라임과 유다 사람들의 신앙과 우리의 모습이 별로 다르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잘못된 생활의 태도 때문에 대언자들을 보내셔서 그들의 잘못됨을 지적하고 심판에 대한 경고를 주셨던 것입니다.(5) 오늘날도 주님은 복음 전도자를 통하여 이 시대의 잘 못된 믿음의 행위를 지적하고 그들에게 닥칠 심판을 경고하고 있습니다. 물론 일부 거짓 전도자들에 의해 영혼의 구원은 생각지 않고 육신의 안락에만 관심을 두고 죄의 문제는 접어둔 채 철학과 세상의 지혜로 가르치는 자들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이 시대에는 수많은 복음 전도자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해 가르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아 알아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

 

『이는 내가 긍휼을 원하고 희생물을 원치 아니하기 때문이니 하나님을 아는 것이 번제 헌물보다 나으니라.』(6)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결코 재물에 있지 않습니다. 만일 재물을 받으셨다면 재물의 가치가 아니라 그 안에 담겨져 있는 마음의 상태일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이삭을 제물로 드릴 때에 칭찬하셨던 것은 그의 믿음이었습니다. 오히려 좋은 제물로 하나님께 드리겠다고 말하는 사울의 제물은 받지 않으셨습니다. 그는 진실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사무엘이 이르되, 주께서 번제 헌물과 희생물을 주의 목소리에 순종하는 것보다 더 좋아하시겠나이까? 보소서, 순종이 희생 헌물보다 낫고 귀를 기울이는 것이 숫양의 기름보다 나으니 이는 거역하는 것은 마술 죄와 같고 완고한 것은 불법과 우상 숭배와 같기 때문이니이다. 왕이 주의 말씀을 버렸으므로 그분께서도 왕을 버려 왕이 되지 못하게 하셨나이다, 하더라.』(사무엘상 15:22,23)

 

아무리 많은 재물도 믿음 없이 드려진 것이라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습니다.(미6:6-8) 하나님이 중요하게 생각하시는 것은 형식적인 것에 있는 것이 아니라 마음을 담는데 있기 때문입니다.

 

믿음은 역사를 더해갈수록 오히려 형식적으로 변질되어지기 쉽습니다. 초기에 교회가 어려울 때는 모든 것을 서로 이해하며 나아가다가, 성장이 되고 규모가 커지게 되면서부터는 제도와 규칙이 그들을 통제하게 되고 자연스럽게 성도들은 그 틀 안에서 행동하게 되는 모습을 보이게 됩니다. 오늘날 한국 교회가 당면한 과제가 여기에 있습니다. 교단과 헌법이라는 굴레를 벗어나지 못하고 오히려 성경보다 권위를 두고, 심지어 성경을 무시하고 있는 모습을 보이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위험은 모든 성도들에게 해당된다는 사실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언제나 마음을 하나님 편에 두고 진리에서 벗어나지 않기 위해서 깨어 기도하는 자세를 가지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죄악의 실상들

 

주님은 또 다시 그들의 죄의 상태에 대하여 지적하고 있습니다.(7-9) 그들의 죄를 반복해서 지적하고 있는 것은 그들이 깨닫지 못한 이유도 있겠지만 우리가 경계해야할 죄에 대해 교훈하는데도 그 목적이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주님께서 반복하는 죄의 상태에는 어떠한 것이 있을까요?

 

주님이 경계하는 것 중 으뜸인 것은 역시 말씀에 대한 것입니다. 그들은 언약을 어기며, 속임수로 대적했다고 말합니다.(7) 오늘날에도 가장 위험스러운 전도자는 말씀을 변질시키는 자들일 것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있는 그대로 받지 않고 오히려 자신에게 유리한 몇 구절을 뽑아서 남을 가르치는 일들을 하는 자들입니다. 대표적으로 적극적 사고방식을 주장하는 이들이나, 오순절 운동하는 기복신앙 주의자들을 들 수 있을 것입니다. 말씀을 있는 그대로 가르치지 않는다면 그는 이미 하나님을 속이는 자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자들은 어느 세대를 막론하고 존재한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할 것입니다.

 

지도자의 부패는 사회를 어지럽게 만듭니다. 주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저지르는 죄악 가운데 지적하는 두 번째는 제사장들의 음탕한 행위들입니다.

 

『강도 떼가 사람을 기다리는 것같이 제사장들의 무리가 한 마음이 되어 길에서 살인을 행하니 이는 그들이 음탕한 짓을 행하기 때문이로다.』(9)

 

교회사를 볼 때도 우리는 이와 비슷한 형태가 지속되고 있음을 봅니다. 지도자의 부패는 단순히 그들만의 부패로 그치지 않습니다. 순진한 백성들을 선동하여 많은 진실한 그리스도인들을 죽이는 일들을 서슴지 않고 행하는 모습들을 볼 수 있습니다. 그 역사를 성경에서 명백하게 보여주는 것이 바로 예수님 당시의 지도자들입니다. 제사장, 서기관, 바리새인 등은 성경을 잘 알고 있었으며, 또한 백성들에게 예수님의 오심을 알리고 속박당하고 있는 백성들에게 구원의 기쁜 소식을 알려야 함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구원자이신 예수님을 모함하고, 심지어 죽이는 일을 행했던 것입니다. 이러한 행태는 로마 가톨릭에도 그대로 전수되어서 참된 그리스도인들을 모함하고, 죽이는 일들을 지속함으로서 그들의 자리를 굳게 지켜오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오늘에는 그러한 일이 없을까요? 오히려 더 심각한 상태에 있는 것이 오늘의 교회 지도자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들은 이미 음녀라고 일컬어지는 자들과 연계해서 진실한 그리스도인들을 부패케 하는 일을 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자신들의 의도가 통하지 않으면 각종 언론과 물리력을 이용하여 매장시키는 치밀함과 교활함을 보이고 있는 것입니다. 이제 그들은 그들의 계획에 따라 하나의 세계, 하나의 종교가 탄생이 되게 된다면 피의 살육을 서슴지 않고 행하게 될 것입니다. 이처럼 지도자가 깨어있지 않으면 결국 하나님을 떠나 사탄의 도구가 되어 함께 지옥 자식이 되는 결과를 피할 수 없을 것입니다.

 

주님께서 지적하는 또 하나의 죄 된 행위는 행음에 관한 것입니다. 한 민족이 행음을 행한다는 것은 그들 민족의 자주적인 것을 버리고 다른 것들을 받아들임을 의미합니다. 쉬운 예를 들자면 한국 민족의 가족 중심의 아름다운 전통을 버리고, 타민족의 좋지 못한 문화를 받아들임으로서 전통이 깨어져 가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가령 처녀의 순결을 생명같이 여겼던 전통을 버리고 순결을 하찮게 여기는 것이라든지, 여자가 결혼하면 평생을 남편에게 순종하는 문화를 버리고 언제든지 마음에 들지 않으면 이혼할 수 있다는 잘못된 문화를 받아들임으로서 이혼의 비율이 날로 증가되어 가는 것이라든지, 부모의 공경을 최고의 미덕으로 삼았던 민족이 핵가족을 시대의 흐름으로 인식하고 방치해 두는 것이라든지 하는 것은 타민족과의 행음의 결과가 가져다준 폐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에게 있어서 이 사실은 매우 중요합니다. 그들은 하나님에 의해 세워진 민족입니다. 그들이 행음했다는 것은 하나님이 주신 그들의 고유한 순결함을 잃어버리고 이방 문화와 연계하여 우상을 숭배하고 있다는데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들이 잘못된 문화를 시대의 흐름으로 인식하고 마구잡이로 받아들이고 있는 것과 같이 그들도 앞으로 그들에게 닥칠 엄청난 파장은 생각지 않은 채 받아들이고 있었던 것입니다. 깨어있어야 한다는 사실이 더욱 실감나지 않을 수 없는 대목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의 교회에 있어서도 예외는 아닙니다. 하나님은 지금까지 엄청난 핍박과 문화적인 소용돌이 속에서도 그분의 교회를 보존해 오셨습니다. 그러나 사탄은 지금도 여전히 순수한 교회를 파괴하는 일들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교회에 현대의 문화와 접목할 것을 요구합니다. 그래서 동성연애자들도 인정해 줄 것과, 여자 목사를 인정해야할 것과, 침례를 대신하여 세례를 줄 것과, 바알의 생일이지만 예수님의 생일로 지켜줄 것과, 사탄적인 음악을 교회에서 인정해 줄 것 등을 요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미 대다수의 교회는 이들과 함께 음행을 저지르고 있는 상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아니 우리조차도 많은 부분이 현대의 잘못된 것들을 수용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중요한 사실은 주께로 돌아오면 우리의 찢어지고 넘어진 우리를 치료하시고, 일으키시며, 살리신다고 하는 사실입니다. 이제 우리는 주님께로 돌아와야만 합니다. 우리가 주님께로 오는 것을 망설인다면 사탄은 더욱더 다가와 우리를 혼란스럽게 할 것입니다. 주님께로 돌아오는 자만이 희망이 있습니다. 이제 우리의 모든 죄악들을 주님께 내어놓고 주님 안에서 아름다운 삶을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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