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가 베푸는 사랑(호세아3:1-5)

조회 수 3220 추천 수 0 2010.06.07 14:58:42

『그 때에 주께서 내게 이르시되, 다른 신들을 바라보고 포도주 병을 사랑하는 이스라엘 자손을 향하여 주가 베푸는 사랑에 따라 너는 또 가서 자기 친구에게 사랑 받는 여인 그러나 간음한 여인을 사랑하라, 하시니라. 이에 내가 은 열다섯 개와 보리 일 호멜과 보리 반 호멜로 나를 위하여 그녀를 사고 그녀에게 이르기를, 너는 많은 날 동안 나를 위하여 거하고 창녀 짓을 행하지 말며 다른 남자를 위하지 말라. 나도 너만을 위하리라, 하였으니 이는 이스라엘 자손이 많은 날 동안 왕도 없고 통치자도 없고 희생물도 없고 형상도 없고 에봇도 없고 드라빔도 없이 거하다가 그 후에 이스라엘 자손이 돌아와서 주 자기들의 하나님과 자기들의 왕 다윗을 찾고 마지막 날들에는 주와 그분의 선하심을 두려워할 것임이라.』(호세아 3:1-5)

 

호세아는 이미 용서받을 수 없는 죄의 상태에 있었던 고멜을 용서함으로 하나님의 사랑을 나타내고자 했습니다. 비록 죄인일지라도 돌아오기만 한다면 언제든지 용서하시겠다는 의지를 보여주고 계신 것입니다.

 

본장에서는 호세아가 돌이킬 수 없는 방탕에 빠져있는 고멜을 사랑함으로 값을 치루고 타인에게로부터 데려오는 장면을 통하여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심으로 값을 치르실 것에 대한 예언의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버리고 죄악의 날들을 보내다가 고통과 사망가운데 거하는 우리를 건지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발견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변함없는 사랑

 

『그 때에 주께서 내게 이르시되, 다른 신들을 바라보고 포도주 병을 사랑하는 이스라엘 자손을 향하여 주가 베푸는 사랑에 따라 너는 또 가서 자기 친구에게 사랑 받는 여인 그러나 간음한 여인을 사랑하라, 하시니라.』(1)

 

이스라엘이 다른 신을 섬기고 포도즙을 즐길지라도 저희를 사랑하신다고 말씀하시는 하나님을 통해서 언제나 변함없이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우상숭배와 방탕은 하나님의 분노를 사기에 충분했습니다. 아브라함 이후로 그들에 대한 사랑은 계속되어지고 있었지만 정작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 사랑을 알지 못하고 오히려 이방 신들을 따르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사랑은 계속되어졌습니다. 위기에 처한 그들이 다시 하나님께 돌아오기를 구할 때 언제나 받아주셨던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 중에 많은 사람들은 자신의 불순종이 하나님의 용서를 받을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또한 구원이 취소될 것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기도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가 심판에 이르기를 원치 않으시며, 또한 한 번 자녀로 입양된 자를 버리시지도 않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이 사실을 분명히 하시기 위해서 탕자의 비유를 통하여 확인해 주고 계십니다.

 

『더 이상 아버지의 아들이라 불릴 자격이 없나이다. 나를 품꾼의 하나로 삼아 주소서, 하리라, 하고 이에 일어나서 자기 아버지께로 돌아가니라. 그러나 그가 아직 멀리 떨어져 있을 때에 그의 아버지가 그를 보고 불쌍히 여겨 달려가 목을 껴안고 입을 맞추니 아들이 아버지께 이르되, 아버지, 내가 하늘을 거슬러 아버지의 눈앞에서 범죄하였사오매 더 이상 아버지의 아들이라 불릴 자격이 없나이다, 하나 아버지가 자기 종들에게 이르되, 가장 좋은 옷을 꺼내어 그에게 입히고 손에 반지를 끼우고 발에 신을 신기라. 그리고 살진 송아지를 끌어다가 잡으라. 우리가 먹고 즐기자. 이 내 아들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으며 잃어버렸다가 찾았노라, 하니 사람들이 즐거워하더라.』 (누가복음 15:19-24)

 

자녀 된 우리의 구원은 안전합니다. 그러나 우리의 구원이 안전하다고 해서 방종해도 된다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더욱 경건하고 순종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우리는 구원받는 사실에 만족하는 것이 아니라 더욱 큰 상급을 위해서 힘을 기울이는 성도의 모습으로 살아가야 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여기서 놓치지 말아야 할 사실이 또 하나 있습니다. 이미 결혼을 통해서 보여주었지만 호세아는 또 다시 방탕한 모습을 버리지 못하고 집을 나간 고멜을 데려오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순종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용서할 수 없는 한 여인을 계속해서 용서하도록 요구하고 계시는 하나님의 모습을 통하여 하나님은 이 시대의 백성들이 편견 없는 사랑으로 살아갈 것을 요구하고 계심을 알 수 있습니다.

 

사랑은 그 대상을 구분하지 않습니다. 어떤 이들은 "모든 사람을 용서할 수 있지만 저 사람만큼은 안 돼"라고 선언합니다. 그러나 주님은 그 대상이 아무리 원수와 같더라도 사랑할 것을 말씀하고 계십니다.

 

『그들이 말한바, 너는 네 이웃을 사랑하고 네 원수를 미워하라, 한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들을 사랑하며 너희를 저주하는 자들을 축복하고 너희를 미워하는 자들에게 선을 행하며 양심을 품고 너희를 대하며 핍박하는 자들을 위하여 기도하라. 그리하면 너희가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자녀가 되리니 이는 그분께서 자신의 해를 악한 자와 선한 자 위에 떠오르게 하시며 비를 의로운 자와 불의한 자 위에 내려 주시기 때문이라. 너희를 사랑하는 자들을 너희가 사랑하면 무슨 보상이 있겠느냐? 세리들도 그와 같이 하지 아니하느냐? 또 너희가 너희 형제에게만 문안하면 다른 사람들보다 낫게 행하는 것이 무엇이냐? 세리들도 그렇게 하지 아니하느냐? 그러므로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완전하신 것같이 너희도 완전하라.』(마태복음 5:43-47)

 

이 일에 대하여 모범적인 한 사람을 들자면 스데반을 들 수 있습니다. 그는 자신을 향해 돌을 든 자들을 향해 "주여 이 죄를 저들의 책임으로 돌리지 마옵소서"라고 말하며 죽어 갔습니다. (사도행전7:59,60) 그는 자신을 죽이려 했던 자들을 원수로 본 것이 아니라 구원의 대상으로 생각한 것입니다. 결국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들은 영혼들을 사랑한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가끔 착각을 하는 것은 하나님의 사랑과 영혼에 대한 사랑을 혼돈하고 있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의 사랑은 중요하며, 영혼들 즉 사람의 대한 사랑은 덜 중요한 것처럼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이는 매우 위험한 생각으로 역사상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말하는 자들에 의해 죽어간 사실과 무관하지 않습니다. 또한 진실한 그리스도인들이 죽음 앞에서도 저항하지 않았던 것은 자신들을 죽이려 하는 영혼들을 사랑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영혼들도 사랑합니다. 참된 그리스도인에게는 원수가 있을 수 없습니다. 즉 사랑하지 못할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값을 치루고 데려 옴

 

호세아는 고멜을 데려오기 위해 은 15개와 보리 1.5호멜을 지불했습니다. 은 15개는 15세겔에 해당되며, 보리 1.5호멜은 15에바로 역시 15세겔에 해당되는 액수입니다. 호세아가 고멜을 데려오기 위해 치룬 값은 모두 30세겔이었던 것입니다. 이것은 구약시대에 종 1명에 해당되는 금액이었습니다.

 

『만일 소가 남종이나 여종을 받으면 그 주인이 은 삼십 세겔을 그들의 주인에게 줄 것이요, 소는 돌로 쳐서 죽일지니라.』(출21:32)

 

호세아가 자신의 아내였음에도 불구하고 값을 지불하고 데려오는 장면은 매우 인상적입니다. 오늘날의 상황이었다면 아마도 세상 법정에서 서로 자신의 정당성을 주장하며 데려오거나 남겨두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호세아는 정당하게 값을 지불함으로서 그의 아내에 대한 소유를 분명하게 했습니다.

 

우리가 여기서 연관 지어 설명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 바로 예수님께서 우리의 죄 값을 지불하시기 위해 은 30에 팔리시고 십자가에 달리셨다는 사실입니다.

 

『그 때에 열둘 중에 하나인 가룟 유다라 하는 자가 수제사장들에게 가서 이르되, 내가 그를 너희에게 넘겨주면 얼마나 주려느냐? 하니 그들이 은 서른 개로 그와 언약을 맺거늘 그가 그 때부터 그분을 배반하여 넘겨줄 기회를 엿보더라.』(마태복음26:14-16)

 

예수님께서는 몸종 한 명의 몸값에 팔리셨습니다. 그리고 모든 인류의 죄 값을 대신 지불하셨습니다. 하나님의 권능과 권세로서 인류의 죄를 사하실 수도 있으셨지만 공의로우신 하나님께서는 값을 지불하심으로 완전히 자유롭게 하셨습니다. 더 이상 사탄이 죄의 문제로 인해 시비하지 못하도록 조치하신 것입니다.

 

이제 우리의 죄는 완전히 사해졌습니다. 우리가 생활 속에서 저지르는 죄로 인하여 아직도 죄의 상태에 머물러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주님은 이미 은 30에 팔리시고 십자가에 달려 죽으심으로 모든 죄의 문제를 해결하셨습니다. 이제 우리가 남은 일들이 있다면 이 사실을 믿고 주님을 영접하는 것입니다. 더 이상 죄 문제로 인해 방황하지 않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선하심을 두려워 할 것이라

 

『그 후에 이스라엘 자손이 돌아와서 주 자기들의 하나님과 자기들의 왕 다윗을 찾고 마지막 날들에는 주와 그분의 선하심을 두려워할 것임이라』(5)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다윗을 찾게 될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마지막 날에는 주와 그 분의 선하심을 두려워 할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기서의 다윗은 문자 적으로 볼 때 다윗의 왕국이 재건 될 것이라는 말로 이해될 수 있지만 사실은 그리스도를 섬기게 될 것이라는 사실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결국 그들이 하나님의 은총을 입게 될 때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회복시키셨을 때 가능할 것임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죄의 문제를 해결하시기 전까지는 죄의 문제로부터 누구도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그러나 이제 믿음아래 있는 모든 자에게는 은총이 함께 합니다. 그들은 매일 감격 속에서 살며, 더 이상 세상에 소망을 두지 않고 하나님의 나라를 바라보며 살아갑니다. 그들은 영광스러운 날들을 고대하며 언제나 행복을 꿈꿉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그 사랑은 우리의 상상을 초월합니다. 그 분은 자신의 목숨을 내어 주면서까지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호세아는 주님의 이러한 사랑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조건 없는 사랑, 무제한 적인 사랑 이러한 모습은 우리의 삶 속에서 찾아볼 수 없는 위대한 사랑이기도 합니다.

 

우리가 호세아를 보면서 또 한 가지 발견해야 하는 것은 우리 죄의 심각성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자녀 삼으셨습니다. 또한 장래에 그리스도의 신부로서 우리를 택하셨습니다. 우리를 부르신 것은 우리의 지혜와 능력이 아니라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아니 오히려 죄인이기 때문에 부르셨습니다. 그러나 부르심을 받은 우리는 계속해서 세상과 짝하고 음란한 삶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지금도 세상 속에서 방탕을 일삼으며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님은 여전히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그리고 정결한 신부가 되어주길 바라고 계십니다. 수없이 깨닫게 하시는 주님의 말씀에 대하여 귀를 열고 듣지 못한다면 우리는 장차 주님 앞에 벌거벗은 모습으로 부끄러움을 당하게 될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주님의 사랑을 받아들일 준비를 해야 합니다. 그리고 더욱 경건하고 능력 있는 삶을 살기 위해서 하루하루를 깨어 기도하며 주님의 말씀을 묵상하는 삶을 생활화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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