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때에 이스라엘에는 왕이 없고 그 때에 단 족속의 지파는 자기들이 들어가 거할 수 있는 상속의 땅을 구하는 중이더니 이는 그들이 이스라엘 지파들 가운데서 그 때까지 자기들의 상속의 땅을 다 얻지 못하였음이었더라(1)
이스라엘은 가나안을 완전히 정복하기 전에 제비를 뽑아 땅을 분배하였습니다(수18:1-10). 비록 각 지파는 그 땅을 전쟁을 통하여 얻어야만 했지만 이미 하나님께서 약속한 땅이었기 때문에 이미 그들의 소유나 다름이 없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단 지파는 약속을 받은 지 오랜 시간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자신들의 땅을 갖지 못한 채 방황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고 그들은 자신들이 머물 땅을 찾아다니고 있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이 이미 그들에게 주신 약속의 땅을 얻지 못하고 방황하고 있는 것과 같이 그리스도인 가운데도 하나님께서 주신 안식과 복들을 누리지 못하고 오히려 방황하는 영혼들이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순간부터 상상할 수 없는 은혜와 복들을 약속하셨습니다. 우리는 그분이 약속하신 곳에서 머물러 누리기만 하면 행복한 삶은 보장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단 지파가 약속된 땅에 들어갈 수 없었던 것은 불순종과 불신앙에 있었습니다. 그들은 그 땅에서 살고 있는 가나안 사람과의 전쟁을 두려워했던 것입니다. 오히려 그들은 손쉬운 방법을 찾았고, 무사히 점령해서 살 수 있는 땅, 즉 미가의 땅을 차지했던 것입니다. 결국 가나안 사람과의 싸움을 두려워했던 단 족속은 동족 간에 피를 흘리는 결과를 낳게 되었습니다.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영적 전쟁을 필요로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비록 약속 된 땅이었지만 자신들의 기업을 얻기 위해서는 반드시 전쟁을 치러야만 했듯이 그리스도인들이 안식을 누리는 삶을 위해서는 죄와의 싸움을 결코 멈추어서는 안 됩니다. 죄와의 싸움을 중단하고 방황가운데 안식을 누리고자 한다면 그는 결국 모두에게 아픔이 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여기에서 또 한 가지 주목할 수 있는 것은 그들이 주의 이름으로 이 모든 일을 행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주의 이름으로 묻고, 대답하며, 행하자고 하는 결단을 합니다(5,6,10). 결국 주의 이름으로 말을 하면서 실상은 그들 자신의 의지대로 행하는 위선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이들은 비록 주님의 이름으로 행하지만 실상은 전혀 상관이 없는 자들입니다.
때때로 우리들은 주님의 일과는 전혀 상관없는 일조차도 주님의 이름으로 말하려 하는 자들을 볼 수 있습니다. 자신의 생각과 의지가 주님의 이름으로 행해진다면 이는 매우 가증한 행위가 될 것입니다. 실제로 우리의 생활 주변에는 이러한 자들이 많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뜻을 불순종하고 있는 자들의 대표적인 모습들이기도 합니다. 우리가운데 있는 위선적인 모습들을 몰아냅시다.